목차
1. 연구의 범위와 목적
2. 변사와 관객 사이: 변사의 등장과 그 역할
3. 1920․30년대 극장 풍경: 유희공간에서 ‘종족공간’까지
4. ‘토-키-’의 등장과 서상호의 죽음: 그 많던 변사들은 어디로 갔나?
5. 소결
2. 변사와 관객 사이: 변사의 등장과 그 역할
3. 1920․30년대 극장 풍경: 유희공간에서 ‘종족공간’까지
4. ‘토-키-’의 등장과 서상호의 죽음: 그 많던 변사들은 어디로 갔나?
5. 소결
본문내용
재현하는 변사극 등을 하며 지방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 김화진, 앞의 글, pp. 186-189. 김영무 앞의 글, pp. 18-21.
5. 소결
변사는 조선에 영화가 수입되면서부터 관객들에게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직업인으로 등장했다. 변사의 등장은 조선영화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으며 이들은 낯선 문화의 매개자이자 관객과 함께 영화 관람의 참여자로서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존재다. 영화가 대중을 위한 오락거리로 인식되면서 변사는 한국 영화사에서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변수로서 스타의 위치를 처음으로 차지하게 되었고, 변사의 연행을 통한 발언이 가지는 위력은 언론의 역할까지 넘보는 것으로 발전된다. 일본의 식민지에 대한 영화 정책이 영화 제작, 배급 뿐 아니라 임검석을 통해 상영 환경까지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은 변사의 연행이 가지는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한 우려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실제 연행 중에 정치적인 입장을 피력하여 구속된 변사들에 대한 기록은 그 같은 일본정부의 감시체계가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변사들이 그와 같은 정치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외화를 소개하기 위한 1차적인 능력으로 요구되었던 번역능력 이외에도, 변사라는 용어 의미가 내포하는 유창함을 포괄하는 언어능력, 해외 문물과 전통사회 사이의 접합점을 이루는 타 문화에 대한 이해 등, 당시의 변사 중 일부는 상당한 교육수준의 인텔리였음을 추론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이는 변사가 영화의 텍스트나 내용에 대한 고려 없이, 즉흥적으로 내용을 가감하여 텍스트를 왜곡하거나, 영화를 개인의 연행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부정적인 인식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마련한다.
전문직종으로서 영화산업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던 변사의 생명은,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사에서 나타나는 서술처럼 유성영화의 유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영화제작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오히려 꺼져가던 변사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오랜 식민지 생활과 전쟁으로 인하여 지방 극장이 유성영화의 상영을 위해 사운드시스템을 설치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변사는 유성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무성으로 상영하고 연행을 더하는 토키 연행이라는 변종을 파생시키며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유성영화의 본격적인 제작과 관객의 기호 변화, 텔레비전의 보급은 유일한 서구 문물 및 풍경에 대한 통로이면서 대중오락이었던 무성영화의 절대적인 위치를 붕괴시켰으며, 극장 시설이 없는 지방을 전전하며 이어지던 변사의 연행도 마침내 소멸하게 된다. 비록 변사는 사라졌지만 그들을 식민의 유산이나 과도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등장, 대중적인 인기, 쇠퇴, 소멸이라는 과정 자체가 한국 영화사, 한국의 대중문화를 고스라니 반영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유산이기 때문이다. 잊어버리거나, 간신히 기억해 온 그들은 다시 불러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김수남, 「조선무성성영화 변사의 기능적 고찰과 미학 연구」, 영화연구 24, 2004, pp 7-40.
김영무 편, 『무성영화시절의 스타들과 유명변사 해설 모음집』, 서울: 창작마을, 2003
박은경, 「단성사 100년 비화 1」, 신동아 2001년 5월호,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5/nd2001050510.html
신명직,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현실문화연구, 2003.
이영일, 『한국영화전사』(개정판), 소도, 2001.
옥미나, 「변사의 매개적 위상 및 의미에 관한 연구 : 한국 영화사에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중앙대 석사논문, 2003.
이화진, 「소리의 복제와 구연공간의 재편성」, 현대문학의 연구 25, 2005, pp 165-197.
조희문, 「무성영화의 해설자 변사 연구」, 영화연구 13, 1997, pp 182-217.
-----, 「영화의 대중화와 辯士의 역할 연구」, 디자인연구 6, 1998, pp 227-247.
EBS, 「잊혀져 가는 것들 - 마지막 변사」2001년 7월 18일,
http://www.ebs.co.kr/Contents/VODList1.asp?progcd=0000285&category=A02B06C03D01E00&pcode=H%2C11&s_keyword=%BA%AF%BB%E7#none
최영철, 「일제 식민치하의 영화정책」, 『한국학논집』11호, 1987, p. 223-256.
) 김화진, 앞의 글, pp. 186-189. 김영무 앞의 글, pp. 18-21.
5. 소결
변사는 조선에 영화가 수입되면서부터 관객들에게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직업인으로 등장했다. 변사의 등장은 조선영화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으며 이들은 낯선 문화의 매개자이자 관객과 함께 영화 관람의 참여자로서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존재다. 영화가 대중을 위한 오락거리로 인식되면서 변사는 한국 영화사에서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변수로서 스타의 위치를 처음으로 차지하게 되었고, 변사의 연행을 통한 발언이 가지는 위력은 언론의 역할까지 넘보는 것으로 발전된다. 일본의 식민지에 대한 영화 정책이 영화 제작, 배급 뿐 아니라 임검석을 통해 상영 환경까지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은 변사의 연행이 가지는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한 우려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실제 연행 중에 정치적인 입장을 피력하여 구속된 변사들에 대한 기록은 그 같은 일본정부의 감시체계가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변사들이 그와 같은 정치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외화를 소개하기 위한 1차적인 능력으로 요구되었던 번역능력 이외에도, 변사라는 용어 의미가 내포하는 유창함을 포괄하는 언어능력, 해외 문물과 전통사회 사이의 접합점을 이루는 타 문화에 대한 이해 등, 당시의 변사 중 일부는 상당한 교육수준의 인텔리였음을 추론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이는 변사가 영화의 텍스트나 내용에 대한 고려 없이, 즉흥적으로 내용을 가감하여 텍스트를 왜곡하거나, 영화를 개인의 연행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부정적인 인식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마련한다.
전문직종으로서 영화산업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던 변사의 생명은,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사에서 나타나는 서술처럼 유성영화의 유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영화제작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오히려 꺼져가던 변사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오랜 식민지 생활과 전쟁으로 인하여 지방 극장이 유성영화의 상영을 위해 사운드시스템을 설치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변사는 유성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무성으로 상영하고 연행을 더하는 토키 연행이라는 변종을 파생시키며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유성영화의 본격적인 제작과 관객의 기호 변화, 텔레비전의 보급은 유일한 서구 문물 및 풍경에 대한 통로이면서 대중오락이었던 무성영화의 절대적인 위치를 붕괴시켰으며, 극장 시설이 없는 지방을 전전하며 이어지던 변사의 연행도 마침내 소멸하게 된다. 비록 변사는 사라졌지만 그들을 식민의 유산이나 과도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등장, 대중적인 인기, 쇠퇴, 소멸이라는 과정 자체가 한국 영화사, 한국의 대중문화를 고스라니 반영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유산이기 때문이다. 잊어버리거나, 간신히 기억해 온 그들은 다시 불러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김수남, 「조선무성성영화 변사의 기능적 고찰과 미학 연구」, 영화연구 24, 2004, pp 7-40.
김영무 편, 『무성영화시절의 스타들과 유명변사 해설 모음집』, 서울: 창작마을, 2003
박은경, 「단성사 100년 비화 1」, 신동아 200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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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소리의 복제와 구연공간의 재편성」, 현대문학의 연구 25, 2005, pp 165-197.
조희문, 「무성영화의 해설자 변사 연구」, 영화연구 13, 1997, pp 182-217.
-----, 「영화의 대중화와 辯士의 역할 연구」, 디자인연구 6, 1998, pp 227-247.
EBS, 「잊혀져 가는 것들 - 마지막 변사」2001년 7월 18일,
http://www.ebs.co.kr/Contents/VODList1.asp?progcd=0000285&category=A02B06C03D01E00&pcode=H%2C11&s_keyword=%BA%AF%BB%E7#none
최영철, 「일제 식민치하의 영화정책」, 『한국학논집』11호, 1987, p. 22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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