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십국, 요, 송, 금, 원의 복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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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대십국, 요, 송, 금, 원의 복식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오대십국. 요(916-1125). 송. 금(1115-1234). 원(1206-1368) 역사적 배경

Ⅱ. 복식정책, 복식개요. 복식특징

Ⅲ. 포의 특징

본문내용

명미, 몽고복식, 서울, 경춘사, 1992, p303> 또 하나의 보편적인 양식은 소(小)소매, 좌임, 교령 단, 상의에 하의로 장군을 착용하고, 그 위에 반수의 허리길이 대금과를 착용하는 것이다. 특이(特異)한 것은 군을 상의위에 둘러 입는 방식을 채택(採擇)한 것이다. 건국 초에 몽고 전통복식을 주로 하였으나 후에 한민족의 영향을 받아 한족의 복장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 몽고인 들은 한족 전통의 깃옷 복장이 습관이 되지 않아 종종 왼쪽의 옷섶을 여는 한족 옷을 입었으나 머리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의 통치시대에는 한족들 받아들여 한족의 특색을 살린 두건을 쓰고 여자도 여전히 한족의 치마를 입었다.
원의 몽고족은 다양한 종족과 함께 고유한 복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국 민속의상의 기본적 특색은 칼라모양, 상의의 트임 및 치마 양쪽단의 슬릿이라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유행에 따라 높이, 위치, 길이 등이 변한다. 여밈은 사선이나 앞 중심 여밈이고 끈은 매듭지어 만든 특이한 단추를 사용하여 남(男), 녀(女) 같이 입었으며, 겨울에는 솜을 두어 누벼 입기도 하였다.<중국 및 몽고제국의 포제와 민족복에 나타난 “깃”에 관한 연구, 13세기중심으로, 세중대 학교, 김은주 ,복식, 19호.1992.11.p239> 문양에서는 원조는 송시대의 용문이 더욱 세밀하고 구체화되었고, 오조의용이 등장하였으며, 보주가 나타났다. 원나라는 몽골계 의복인 질손(姪孫)을 주고 입게 되었다. 몽고족은 북방의 유목민족으로 그들의 복식은 한족과 많은 차이가 있다. 몽고 여자들의 복식은 남성의 복식과 서로 비슷하나 색상은 조금 다르다. 몽고의 귀부인들은 한 종류의 특별한 예관을 만들고 “고고관” 이라 하였는데 모든 관은 높고 길이 매우 특이하다.
중국 왕조의 통치와 시대별로 복식정책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중국 역대 한족 및 이민족 왕조의 통치에서 유교사상, 화이사상, 민족정체성의 개념을 복식과 관련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고대의상은 도포형태로 넓은 소매에 다른 색의 단을 붙였다. 여임은 좌임으로 허리띠로 묶어 고정시켰다. 당송 시기는 단령()이 중국 상하의 상복으로 습용(襲用) 되었다.
결론적으로 송대는 유목민족이 정비(鼎沸)된 시기라서 정치적으로 집권이 결핍(缺乏)되어 유명무실(有名無實)하고, 복잡하고, 기능이 중복되고, 변화가 무상한 것이 이 시기 정치제도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시기 복식의 제도는 이러한 정치제도의 영향을 받았다.<중국고대 의정사(진한-양송)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이태재, 2005년, p120> 송대의 미학은 대단히 이성적인 특성을 지녔다. 즉, 당대의 화려한 색채의 반동으로, 단아하고 고요한 기풍을 유지했다. 때문에 복식 역시 간단, 소박, 청결,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면서 지나치게 호화로운 것을 반대하였다. 또한, 송대는 복제의 복고를 주장하며 “요순의 규범을 회복하고, 하상의 예를 종합 한다”라는 복제개혁을 추구했다.< 중국문화의 이해, 대한교과서(주) 도서개발부, 이수웅, 김경일저, p187>
Ⅲ. 포의 특징
오대십국. 송은 한족 왕조지만 요(916-1125), 금(1115-1234), 원(1206-1368) 3조(朝)는 모두 북방(北方)의 소수민족(少數民族) 정권이고 송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복식은 몸에 꽉 끼는 파오가 복식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원대(1279-1368)에는 포가 몽고족 관료(官僚)의 의복이었고 몽골계 의복인 질손을 주고 입었다. 유목민족의 몽고족은 한족보다 경제문화의 발전이 낙후되어 의관 복식도 간소하였다. 무력(武力)으로 중원(中原)에 점거(占據)하는 몽고사람은 생활습관에서 한족의 영향을 점차 많이 받아 복식도 점점 발전하고, 제도도 나날이 완비되어 갔다. 특히, 원대 부녀자의 주로복식은 포(袍)이었다. 포는 한족 사람들이 입던 도복(道服)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한족사람들은 "大衣" 아니면"衫" 이라고 하였다. 이런 종류의 장포(長袍)는 보통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 교령()과 이민족의 복장(풍습)이었으며, 소매나 깃·하파(下) 등에 의복의 가선을 두른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한족 복식이랑 비슷하다. 원의 귀족부녀자의 복식 양식은 헐렁헐렁하고 땅에 끌리기까지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행할 때는 두 명의 하녀가 뒤에서 포를 받쳐 들었다. 그리고 소매의 양식도 헐렁헐렁했지만, 소맷부리부분은 좁았다.
1>원령결과포 : 길이는 일반적으로 150-160cm 정도이며, 소매길이는 110-120cm, 특징은 좌임, 원령, 좁은 소매, 트임 등이다. 결과포의 가장 큰 특징은 트임으로써 포의 뒤쪽 하단의 중간, 양 다리사이에 트임을 준 것이다. 이런 종류의 결과포의 방식은 북조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주로 말을 타기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요대 견직물 포의 도안과 재단, 자오펑, 중국실크박물관 부관장> 장포의 앞면(面)깃은 우측을 향해 놓인 것과 좌측을 향해 놓인 양편으로 되어있으며 좌측을 향한 것이 밖으로 여며져 외(外)깃이라 하고 우측은 안으로 여며져 안깃이라 한다. 이것이 곧 좌임이다. 2>원령개차포: 일반적으로 양측면에서 트임을 준 포는 개차 포라고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트임의 길이는 80cm 정도 이다. 3>교령관파포 : 이것은 좌임의 교령이며, 그 외금과 안금은 모두 사직령 이다. 그 하단은 결과도 개차도 아니며 다만 분명한 것은 특히 크다는 것이다. 간칭하여 교령포라고 부를 수 있다.장수, 교령, 블개차. 4>교령결과포 : 장수, 교령, 결과,즉 결과포 중 교령을 사용한 것으로 기타다른 부분은 모두 원령결과포와 같다. 5>단수결과포: 단수의 소매길이는 보통 80-100cm로 직물 두폭의 너비이며, 소매넓이는 약 30-35cm 이다. 좌임교령으로 아랫단 뒷면에 트임이 있는 결과포 이다.<요대 견직물 포의 도안과 재단, 자오펑, 중국실크박물관 부관장pp49-53>
이시기의 대표적인 통치계층 관복과 서민계층 복식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그 속에 내재된 통합의 상징적인 면을 통해 민족용합 과정을 연구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이 시기의 다양한 바탕직물을 의복의 재료로 사용한 포의 형태 변화를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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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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