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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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신이 없는 세속
2. 무신론자의 ‘종교’에서 필요한 것들
3. 온고지신(溫故知新)

본문내용

이 화려하고 훌륭한 건축을 지향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눈길이 머무른 모든 것을 인식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268) 즉, 주변의 시각적 구조물들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신론자의 건축물에는 신이 없어야 한다. 그 대신 “영혼의 안위를 위한 핵심적인 미덕을 장려”하는 요소들로 차 있어야 한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첫째는 ‘관점의 신전’이다. 인간 중심과 자기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유도하는 신전이다. 종교 건축물은 압도적인 크기와 조명, 재료 등은 인간의 왜소함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신과의 비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스스로 왜소하다는 느끼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관점의 신전’에서 느끼는 왜소함은 기쁨과 지혜이다. 이처럼 ‘관점의 시전’은 “우주의 규모와 나이와 복잡성에 대해서 우리를 깨우치는 것이 목적이다.”(278)
둘째는 ‘반성의 신전’이다. ‘반성의 신전’은 인간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인이 제거된 공간이며, 혼자라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장소에서 우리는 “평소에는 마치 수줍은 사슴처럼 가끔 우연히 우리의 산만해진 정신과 마주칠 뿐인 귀한 통찰”(282)이라는 손님을 기다린다.
셋째는 ‘수호신의 신전’이다. 기독교 이전에는 토착 종교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는 ‘수호신’의 신전들이 많았다. 기독교도 수호신의 전통을 흡수했는데, ‘신전’과 ‘영(靈)’의 개념을 ‘성묘(聖廟)’, ‘성인(聖人)’라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수호신’ 또는 ‘성인’을 통해 중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묘’에 도착한 중세 기독교인들은 성인의 신체 일부분을 형상화한 밀랍 모형을 구입하거나, 성인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 등을 구입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성묘’를 찾는 먼 여정을 떠나야 했다. 이 여정은 인간에게 중요한 내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된다. 어쩌면 이 여정을 통해서 중세 기독교인들은 내적 자아를 성숙시키고, 세속적인 욕망들을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호신의 신전’으로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오락이나 휴식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실존적 치유의 수단”(291)이 된다.
제9장은 앞의 장들에서 다루었던 것과는 다른 건축물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종교 건축이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인간적 감정과 추상적 주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건축의 시각적 화려함이 문제가 아니며 그 형태나 규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수호신의 신전’으로의 여행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9. 제도
18세기 종교에 대한 공격은 책이라는 인쇄물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책으로 사상을 전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종교가 미술, 건축, 학교 등의 제도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식을 정교하게 침투시킨 것과 비교된다. 저자는 “기업들이 우리의 외적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현재 적용되는 힘과 기술 모두를 이용하여, 우리의 내적 자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세속적 실체를”(297)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종교 제도에 관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종교를 부양하는 제도는 규모의 중요성과 “돈과 지능과 지위를 적절하게 모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해관계의 중요성”을 알려 준다. 제도는 “자기보다 더 크고 더 영속적인 구조 속에 쌓여 잇는 자원과 영예를 이용할” 있게 해 준다. 또한 제도는 “공통된 시각적 어휘를 통해서 그 구성원의 노력을 통합하는 능력”(301)이 있다. 제도는 ‘브랜드 확장’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에 침투한다.
기업의 브랜드는 “특정한 가치에 관한 대중의 신뢰를 확보하는 동시에 통일성과 품질에 대한 약속을 확인시킨다.”(302)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여러 가지 상징들은 브랜드로 기능한다. 이전 시대에는 종교는 인간의 본질적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브랜드였지만 현대 사회에는 공산품과 관련된 브랜드만 넘칠 뿐이다. 굳이 찾자면 가톨릭의 고백성사가 있다. 한편, “브랜딩의 적은 공간적 다양성”(302)이기에 가톨릭에서는 예배에 대한 기준을 각 지역에 전파해서 통일되도록 했다. 이에 비해 세속에서의 심리 치료는 이러한 기준이 없이 진행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제도’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제도는 종교가 선교를 위해 이용하는 조직이나 수단과 방법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제도는 인간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감정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보호하기 위해서이다.”(315)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공동체, 동정, 연민, 감사, 초월과 같은 개념이 필요하다. 제도는 이것을 일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준다. 하지만 이 제도는 종교의 방법을 사용하지만 “종교를 대신하여 일류의 필요에 부응하는”(326)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제도는 “영혼을 돌보는 데에 관심이 있는 개인들의 분산된 노력을 한 곳에 모아서”(328) 보호해 주기도 한다.
3. 온고지신(溫故知新)
‘새로운 것’을 전통에서 찾는 것은 일종이 모순이다. 종교는 종교 이전의 개인 및 사회 윤리와 같은 본질적 가치로 보강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 기반이 붕괴된 이유를 종교의 쇠퇴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이런 주장 역시 종교적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과거에는 ‘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본질적 가치’가 종교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윤리적 기반이 사라진 사회에서 윤리는 ‘새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이미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것’은 현대인의 영혼에 실용적 가치가 있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에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또 다른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 이후 종교는 영혼의 필요를 막대한 돈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콩트는 이것을 ‘인류의 종교’라고 불렀다. 이것은 “근대적 인간 특유의 정서적이 지적 요구”에 맞춰 전통 속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찾아내서 이용한 것이다. 동양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전통과 일맥상통한다.
  • 가격3,3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3.09.25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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