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원산 총 파업의 발단
2. 원산 노동자 파업의 전개
3. 파업의 절정, 전면전으로
4. 파업의 불꽃이 사그라져 가다
5. 원산 총파업의 결과와 의의
참고문헌
2. 원산 노동자 파업의 전개
3. 파업의 절정, 전면전으로
4. 파업의 불꽃이 사그라져 가다
5. 원산 총파업의 결과와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점은 사회 각 계급의 편성과 배치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민족이라는 범주 안에 해소시켜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운동에 대한 계급적 시각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피상적으로 사실들을 이해한 결과 사실의 인식과 해석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왜곡이 종종 나타난다.
북한의 연구로는 윤형빈의 논문을 비롯하여 조선 근대 혁명 운동사 등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어왔다. 북한의 연구를 대표하는 윤형빈은 20년대 후반기에 일정한 투쟁 경험의 축적을 통하여 단련된 노동 대중이 가중하는 일제의 약탈과 폭압 앞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진출을 지향하던 시기에 노동자 농민의 대중적 혁명적 진출의 선구로서 총파업을 파악한다.
노동 계급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의 차원에서 그는 조선 각 계층의 인민은 반일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의 지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노동자 계급은 거꾸로 이들 대중들을 지도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주나 예속 자본가, 친일 분자를 제외한 농민, 소부르주아지, 양심적인 민속 부르주아지 등의 광범위한 인민 대중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지도 아래 반일 민족 통일 전선의 조직과 전개를 위한 객관적 조건을 성숙시켜갔다는 것이다.
강력한 반일 정치 투쟁의 조직과 전개, 보다 적극적인 투쟁 형태로의 이행, 광범한 반일 민족 통일 전선의 형성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실현 등 총파업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이후 동만 지역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반일 통일 전선과 당 창건을 목표로 한 무장 투쟁을 통해서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위에서 이철악이 총파업을 계기로 급진적인 민족 부르주아지 내재는 일부 소부르주아지가 민족 해방 투쟁에서 지도적 지위를 상실하고 그 대열에서 탈락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대조를 이룬다. 현실의 노동 대중에 대한 공식화 내지는 이상화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역사 인식이다.
마지막으로 전후 일본에서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기로 하자. 단편적인 언급은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총파업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고바야시와 가나모리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고바야시의 연구는 기본 골격과 문제의식을 북한의 윤형빈의 글에 크게 의존하면서 총파업에 대한 북한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의 글은 60년대 중반 북한의 사회주의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그룹의 평가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가나모리의 연구는 고바야시보다 10여 년 이후에 나온 것이다. 그의 연구의 특성은 총파업을 1927년 6월의 파업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계기적으로 파악한다는 점, 이 두 파업과 1928년 10월 영흥 총파업을 지역적으로 연관 지어 설명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의 견해는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보편성을 특수성의 범주로 해소시켜버렸다는 점과 아울러 20년대 후반 이후의 산별 노조 운동에 대한 평가 등에서 이글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가나모리의 연구는 역사적 인식과 사실의 해석에서 오류와 왜곡이 잇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절들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몇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다. 이는 비단 그에 한정되지 않고 일본인 연구자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편견이다. 가나모리는 총파업이 시작될 당시에 일제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노련에 대한 탄압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중열의 글에서 보듯이 일제는 원산 상의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처음부터 노련 박멸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 아래 파업의 발발과 함께 일제는 인근의 결찰은 물론 보병대까지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원산의 전시가가 계엄 상태와 같은 공포 분위기였다는 것은 당시의 신문이 보도하는 대로이다. 이러한 상태를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총파업에서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는 통설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즉 당시의 노동총동맹이나 신간회 혹은 그 지방 조직들은 무론이고 지역의 노동연합회에서조차도 자금 모집이나 동정 파업 등의 지원은 전혀 없었으며 또 이러한 지원은 당시 조직의 본질적 한계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지원이 적었던 것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는 오히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먼저 그는 지역적 노동연합에 의한 조직이 식민지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적합한 운동 형태라고 보기 때문에 총파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노동자들에 의한 지원이 없었던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왜 당시의 운동자들이 원산 노련의 지도부를 개량주의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파업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다. 아울러 그는 식민 통치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성격과 그것이 전국적인 범위에 걸쳐 산간벽지에까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었던 식민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지원의 부족을 조직의 내재적 한계로 치부해버리고 그것이 본격적 형태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중요한 요인인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금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보인 열렬한 성원과 원조들은 고려하지 않고 식민지와는 또 다른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본의 노동자나 중국 영사의 단편적 몇몇 지원 사실들을 오히려 높게 평가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기본 속성에 대한 안이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민족적 편견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대한 노동 운동을 겪은 민족의 자손으로써, 적어도 원산총파업이 무엇인지, 어떤 유형의 노동운동인지, 왜 원산 총 파업이 의미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경일, 『일제하 노동운동사』, 창작과 비평사, 1992
이만열,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와 전망』, 문학예술사, 1985
노동자대학 교재편찬위원회, 『일하며 배우는 노동운동사』, 백산서당, 1990
『한국사(14) 식민지시기의 사회경제(2)』, 한길사, 1994
김경일, 『한국 근대 노동사와 노동 운동』, 문학과 지성사, 2004
북한의 연구로는 윤형빈의 논문을 비롯하여 조선 근대 혁명 운동사 등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어왔다. 북한의 연구를 대표하는 윤형빈은 20년대 후반기에 일정한 투쟁 경험의 축적을 통하여 단련된 노동 대중이 가중하는 일제의 약탈과 폭압 앞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진출을 지향하던 시기에 노동자 농민의 대중적 혁명적 진출의 선구로서 총파업을 파악한다.
노동 계급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의 차원에서 그는 조선 각 계층의 인민은 반일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의 지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노동자 계급은 거꾸로 이들 대중들을 지도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주나 예속 자본가, 친일 분자를 제외한 농민, 소부르주아지, 양심적인 민속 부르주아지 등의 광범위한 인민 대중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지도 아래 반일 민족 통일 전선의 조직과 전개를 위한 객관적 조건을 성숙시켜갔다는 것이다.
강력한 반일 정치 투쟁의 조직과 전개, 보다 적극적인 투쟁 형태로의 이행, 광범한 반일 민족 통일 전선의 형성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실현 등 총파업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이후 동만 지역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반일 통일 전선과 당 창건을 목표로 한 무장 투쟁을 통해서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위에서 이철악이 총파업을 계기로 급진적인 민족 부르주아지 내재는 일부 소부르주아지가 민족 해방 투쟁에서 지도적 지위를 상실하고 그 대열에서 탈락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대조를 이룬다. 현실의 노동 대중에 대한 공식화 내지는 이상화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역사 인식이다.
마지막으로 전후 일본에서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기로 하자. 단편적인 언급은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총파업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고바야시와 가나모리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고바야시의 연구는 기본 골격과 문제의식을 북한의 윤형빈의 글에 크게 의존하면서 총파업에 대한 북한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의 글은 60년대 중반 북한의 사회주의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그룹의 평가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가나모리의 연구는 고바야시보다 10여 년 이후에 나온 것이다. 그의 연구의 특성은 총파업을 1927년 6월의 파업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계기적으로 파악한다는 점, 이 두 파업과 1928년 10월 영흥 총파업을 지역적으로 연관 지어 설명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의 견해는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보편성을 특수성의 범주로 해소시켜버렸다는 점과 아울러 20년대 후반 이후의 산별 노조 운동에 대한 평가 등에서 이글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가나모리의 연구는 역사적 인식과 사실의 해석에서 오류와 왜곡이 잇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절들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몇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다. 이는 비단 그에 한정되지 않고 일본인 연구자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편견이다. 가나모리는 총파업이 시작될 당시에 일제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노련에 대한 탄압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중열의 글에서 보듯이 일제는 원산 상의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처음부터 노련 박멸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 아래 파업의 발발과 함께 일제는 인근의 결찰은 물론 보병대까지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원산의 전시가가 계엄 상태와 같은 공포 분위기였다는 것은 당시의 신문이 보도하는 대로이다. 이러한 상태를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총파업에서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는 통설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즉 당시의 노동총동맹이나 신간회 혹은 그 지방 조직들은 무론이고 지역의 노동연합회에서조차도 자금 모집이나 동정 파업 등의 지원은 전혀 없었으며 또 이러한 지원은 당시 조직의 본질적 한계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지원이 적었던 것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는 오히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먼저 그는 지역적 노동연합에 의한 조직이 식민지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적합한 운동 형태라고 보기 때문에 총파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노동자들에 의한 지원이 없었던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왜 당시의 운동자들이 원산 노련의 지도부를 개량주의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파업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다. 아울러 그는 식민 통치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성격과 그것이 전국적인 범위에 걸쳐 산간벽지에까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었던 식민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지원의 부족을 조직의 내재적 한계로 치부해버리고 그것이 본격적 형태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중요한 요인인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금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보인 열렬한 성원과 원조들은 고려하지 않고 식민지와는 또 다른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본의 노동자나 중국 영사의 단편적 몇몇 지원 사실들을 오히려 높게 평가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기본 속성에 대한 안이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민족적 편견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대한 노동 운동을 겪은 민족의 자손으로써, 적어도 원산총파업이 무엇인지, 어떤 유형의 노동운동인지, 왜 원산 총 파업이 의미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경일, 『일제하 노동운동사』, 창작과 비평사, 1992
이만열,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와 전망』, 문학예술사, 1985
노동자대학 교재편찬위원회, 『일하며 배우는 노동운동사』, 백산서당, 1990
『한국사(14) 식민지시기의 사회경제(2)』, 한길사, 1994
김경일, 『한국 근대 노동사와 노동 운동』, 문학과 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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