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시대적 배경 및 베네딕트의 생애
1. 시대적 배경
2. 베네딕트의 생애
Ⅱ. 베네딕트의 수도규칙
1. 수도규칙의 구조와 특징들
2. 베네딕트의 규칙서와 스승의 규칙서의 관계
Ⅲ. 수도규칙의 내용
Ⅳ. 감상 및 평가
1. 시대적 배경
2. 베네딕트의 생애
Ⅱ. 베네딕트의 수도규칙
1. 수도규칙의 구조와 특징들
2. 베네딕트의 규칙서와 스승의 규칙서의 관계
Ⅲ. 수도규칙의 내용
Ⅳ. 감상 및 평가
본문내용
엇을 명령했을 경우에는 예외이지만, [11] 그럴 경우에도 최대한의 신중함과 가장 적당한 절제로 이를 행할 것이다.
수도규칙 제43장 <<하느님의 일이나 식사에 늦게 오는 사람들에 대하여>>
[1]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를 듣거든 즉시 손에 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고 가장 빠르게 달려올 것이나, [2] 신중하게 하여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낫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4] 만일 누가 <야간기도>의 시편 제94편의 <영광송>을 (외운) 후에 오거든 ─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시편을 길게 끌면 서 아주 천천히 외우기를 원하는 바이지만 ─ 공동 기도석에 있는 자기 자리에 서지 말고, [5] 맨 마지막 자리에 서거나 혹은 이런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아빠스가 자기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별도로 마련한 자리에 서 있게 하였다가, [6] 하느님의 일이 끝난 후에 공적(公的)으로 보속하도록 할 것이다. [7] 그들이 끝자리나 따로 정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이유는, 모든 이들이 보게 하여 자기의 수치심 때문에 고치게 하기 위함이다. [8] 만일 그들을 성당 밖에 머물게 하면 누워 자거나, 밖에 앉아 잡담을 일삼거나 사악한 (악마)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기 때문에, [9]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기도) 전체를 잃지 않게 하고 앞으로 고치게 할 것이다.
[10] 낮시간 시간경들에 있어서는, 계응송과 그 후에 외우는 첫째 시편의 <영광송>까지 하느님의 일에 오지 못하는 사람은, 위에 말한 규정대로, 끝자리에 서게 할 것이며, [11] 아빠스가 용서하여 허락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속을 다할 때까지 시편을 외우는 (형제들의) 공동 기도석에 감히 함께하지 못하며, [12] 이런 경우에도 잘못한 자는 이에 대해 보속을 해야 한다.
[13] 식사시간에는 모든 이들이 다 같이 계응송을 외우며, 기도하고 다 함께 식탁에 앉아야 한다. 누가 만일 계응송 전까지 오지 못하면, [14] 자기의 게으름 때문이나 악습으로 인해 대오지 못한 사람을 두 번까지는 책벌할 것이다. [15] 만일 그 다음에도 고치지 않거든 공동 식탁에 참여하기를 허락하지 말고, [16] 모든 이의 공동 (식탁)에서 격리시켜 혼자 식사하게 할 것이며, 보속하고 고칠 때까지 자기 몫의 술도 주지 말 것이다.
[17] 식사 후에 외우는 계응송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벌을 줄 것이다.
[18] 아무도 규정된 시간 전이나 후에 무엇을 감히 먹거나 마시지 말 것이다. [19] 또한 장상이 무엇을 주는데도 받기를 거절한 사람은, 합당한 고침이 있을 때까지 앞서 거절했던 것이나 또는 다른 것을 원할 때에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Ⅳ. 감상 및 평가
어느 시대에나 선망의 대상이며 모범이 되는 인물들은 존재 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기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서 언제나 영성을 추구하며 성화의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다.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고 지표가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삶을 어떻게 어떤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정하고 그것을 다르기 위해 노력한다. 성경속에서 그분의 영성을 추구하며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피며 그분의 모습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좌절도 맛보며 힘듦의 깊은 고뇌속에도 빠져 볼 것이다. 삶의 현장과 내가 살아야 할 지향점이 너무나 골이 깊어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삶의 무너짐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실 수도규칙을 접하며 규칙서의 내용들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의 깊은 좌절과 고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지키기 힘든,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기해 하는 내용들이었다.
많은 그리스챤들이 말씀의 실천과 행함을 놓치는 가운데 수도규칙이 나에게 던져준 내용들은 그리고 베네딕트의 삶의 내용들은 깊은 좌절을 느끼게 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도전과 새로운 결단의 마음을 던져 주었다. 영적인 거룩함들을 추구하며 영적 분별력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의 진정한 목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말 이 시대의 많은 영적 리더자들이 영적 거룩함의 회복과 함께 설교와 삶의 현장속에서의 행함이 일치하여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수도규칙 제43장 <<하느님의 일이나 식사에 늦게 오는 사람들에 대하여>>
[1]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를 듣거든 즉시 손에 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고 가장 빠르게 달려올 것이나, [2] 신중하게 하여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낫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4] 만일 누가 <야간기도>의 시편 제94편의 <영광송>을 (외운) 후에 오거든 ─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시편을 길게 끌면 서 아주 천천히 외우기를 원하는 바이지만 ─ 공동 기도석에 있는 자기 자리에 서지 말고, [5] 맨 마지막 자리에 서거나 혹은 이런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아빠스가 자기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별도로 마련한 자리에 서 있게 하였다가, [6] 하느님의 일이 끝난 후에 공적(公的)으로 보속하도록 할 것이다. [7] 그들이 끝자리나 따로 정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이유는, 모든 이들이 보게 하여 자기의 수치심 때문에 고치게 하기 위함이다. [8] 만일 그들을 성당 밖에 머물게 하면 누워 자거나, 밖에 앉아 잡담을 일삼거나 사악한 (악마)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기 때문에, [9]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기도) 전체를 잃지 않게 하고 앞으로 고치게 할 것이다.
[10] 낮시간 시간경들에 있어서는, 계응송과 그 후에 외우는 첫째 시편의 <영광송>까지 하느님의 일에 오지 못하는 사람은, 위에 말한 규정대로, 끝자리에 서게 할 것이며, [11] 아빠스가 용서하여 허락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속을 다할 때까지 시편을 외우는 (형제들의) 공동 기도석에 감히 함께하지 못하며, [12] 이런 경우에도 잘못한 자는 이에 대해 보속을 해야 한다.
[13] 식사시간에는 모든 이들이 다 같이 계응송을 외우며, 기도하고 다 함께 식탁에 앉아야 한다. 누가 만일 계응송 전까지 오지 못하면, [14] 자기의 게으름 때문이나 악습으로 인해 대오지 못한 사람을 두 번까지는 책벌할 것이다. [15] 만일 그 다음에도 고치지 않거든 공동 식탁에 참여하기를 허락하지 말고, [16] 모든 이의 공동 (식탁)에서 격리시켜 혼자 식사하게 할 것이며, 보속하고 고칠 때까지 자기 몫의 술도 주지 말 것이다.
[17] 식사 후에 외우는 계응송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벌을 줄 것이다.
[18] 아무도 규정된 시간 전이나 후에 무엇을 감히 먹거나 마시지 말 것이다. [19] 또한 장상이 무엇을 주는데도 받기를 거절한 사람은, 합당한 고침이 있을 때까지 앞서 거절했던 것이나 또는 다른 것을 원할 때에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Ⅳ. 감상 및 평가
어느 시대에나 선망의 대상이며 모범이 되는 인물들은 존재 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기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서 언제나 영성을 추구하며 성화의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다.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고 지표가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삶을 어떻게 어떤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정하고 그것을 다르기 위해 노력한다. 성경속에서 그분의 영성을 추구하며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피며 그분의 모습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좌절도 맛보며 힘듦의 깊은 고뇌속에도 빠져 볼 것이다. 삶의 현장과 내가 살아야 할 지향점이 너무나 골이 깊어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삶의 무너짐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사실 수도규칙을 접하며 규칙서의 내용들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번의 깊은 좌절과 고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지키기 힘든,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기해 하는 내용들이었다.
많은 그리스챤들이 말씀의 실천과 행함을 놓치는 가운데 수도규칙이 나에게 던져준 내용들은 그리고 베네딕트의 삶의 내용들은 깊은 좌절을 느끼게 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도전과 새로운 결단의 마음을 던져 주었다. 영적인 거룩함들을 추구하며 영적 분별력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의 진정한 목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말 이 시대의 많은 영적 리더자들이 영적 거룩함의 회복과 함께 설교와 삶의 현장속에서의 행함이 일치하여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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