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87년 이후 정치경제적 상황과 세계화 담론의 등장
1) 노태우 정권의 ‘통치성의 위기’와 3당 합당
2) 문민정부와 세계화 시대
2. 자유주의 세력 집권 10년의 실상
1) 김대중 정권의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
2) IMF 극복방안
3)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재평가
4) 노무현의 집권 성공: 자유주의 세력의 정권 재창출
5) 신자유주의 10년 무엇을 남겼는가
1) 노태우 정권의 ‘통치성의 위기’와 3당 합당
2) 문민정부와 세계화 시대
2. 자유주의 세력 집권 10년의 실상
1) 김대중 정권의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
2) IMF 극복방안
3)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재평가
4) 노무현의 집권 성공: 자유주의 세력의 정권 재창출
5) 신자유주의 10년 무엇을 남겼는가
본문내용
. 서민과 중산층 모두의 요구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세운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 물류중심국가-한미FTA-자본시장통합법 등으로 금융 자본을 위한 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했다. 한편으론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겠다면서, 경제성장과 개방을 통한 해결을 주장한다. 이미 IMF외환위기 이후 남한 사회의 체질을 바꾸어 놓은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를 통해 금융 시장의 내용을 확대한다.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금융 시장에서 이윤추구를 위해 활용된다. 자본시장 통합법은 은행, 보험, 증권시장으로 나뉘었던 시장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모든 거래 업무가 가능한 금융투자기관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법안으로, 한미FTA 추진과 맞물려 국내 경제/금융 환경을 변모시키는 계획이다. 이러한 작업은 또 다시 노동시장 유연화를 동반하는데, 비정규직 확대를 제도화하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통과시켜 노동유연화의 법과 제도적 틀을 일단락 짓는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진보와 개혁’으로 포장된 노무현 정권의 의해 벼랑으로 내몰렸다.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시행한 것도 노무현 정권 때였다. 미국과의 관계를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노무현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자마자 지지를 표명한다.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국익의 논리’로 묵살하면서 2004년 자이툰 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파병을 연장하였다. 자주적인 한미동맹을 운운하며 전 세계 ‘주둔미군 재편계획’인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승인하여 대추리 마을에 군대와 경찰을 투입했다.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열망은 노무현 정권이 동원한 군대에 무참히 짓밟혔다.
더 이상 노동자-민중은 노무현 정권을 ‘진보, 개혁’이라 여기지 않았다. 전쟁에 참여하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탄시키면서 보수세력과 힘을 합친 노무현 정부를 믿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최소한 유지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확산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고, 보수 세력과의 변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필요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와 ‘진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쇼’가 그의 통치 전략으로 이어진다. 진보/개혁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자유주의자들은 무능력할뿐더러 전혀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는 냉담하게 돌아섰고, 대표 선출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환멸/허무함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말기 ‘놈현스럽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조롱으로까지 이어진다.
5) 신자유주의 10년 무엇을 남겼는가
87년 민주화 투쟁의 맥을 잘라버리고, 민중들에게 등을 돌려 민주주의를 빼앗아 간 신자유주의 정권들은 모두 실패했다. 김영삼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무능한 좌파정부’ 실정 탓이 아니었다. 금융 중심의 자본 축적구조 형성, 노동권에 대한 탄압,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정책과 사회적 보호 장치의 해체가 만든 결과였다. 이미 금융세계화 체제에 깊숙이 편입된 남한에서 지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상황에서 출현한 위기 극복 전략이다. 특히 IMF 이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10년은 ‘민주화’를 수렴하면서 최대 수혜를 본 자유주의 세력들의 본질적인 무능과 기만이 드러난 시기였다. 하기에 보수 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시행한 것도 노무현 정권 때였다. 미국과의 관계를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노무현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자마자 지지를 표명한다.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국익의 논리’로 묵살하면서 2004년 자이툰 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파병을 연장하였다. 자주적인 한미동맹을 운운하며 전 세계 ‘주둔미군 재편계획’인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승인하여 대추리 마을에 군대와 경찰을 투입했다.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열망은 노무현 정권이 동원한 군대에 무참히 짓밟혔다.
더 이상 노동자-민중은 노무현 정권을 ‘진보, 개혁’이라 여기지 않았다. 전쟁에 참여하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탄시키면서 보수세력과 힘을 합친 노무현 정부를 믿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최소한 유지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확산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고, 보수 세력과의 변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필요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와 ‘진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쇼’가 그의 통치 전략으로 이어진다. 진보/개혁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자유주의자들은 무능력할뿐더러 전혀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는 냉담하게 돌아섰고, 대표 선출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환멸/허무함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말기 ‘놈현스럽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조롱으로까지 이어진다.
5) 신자유주의 10년 무엇을 남겼는가
87년 민주화 투쟁의 맥을 잘라버리고, 민중들에게 등을 돌려 민주주의를 빼앗아 간 신자유주의 정권들은 모두 실패했다. 김영삼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무능한 좌파정부’ 실정 탓이 아니었다. 금융 중심의 자본 축적구조 형성, 노동권에 대한 탄압,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정책과 사회적 보호 장치의 해체가 만든 결과였다. 이미 금융세계화 체제에 깊숙이 편입된 남한에서 지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상황에서 출현한 위기 극복 전략이다. 특히 IMF 이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10년은 ‘민주화’를 수렴하면서 최대 수혜를 본 자유주의 세력들의 본질적인 무능과 기만이 드러난 시기였다. 하기에 보수 세력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잃어버린 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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