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조선시대 집의 특성
1-1)음양오행과 풍수지리설,내외법,가대제한 등
1-2)양반집의 가옥 구조
2)조선시대 집의 분류
2-1) 재료별 분류 --- 초가집 너와집 귀틀집 등
2-2) 지방별 분류 --- 북부 남부 지방 여러형
3)조선시대 정원
3-1) <소쇄원>
1-1)음양오행과 풍수지리설,내외법,가대제한 등
1-2)양반집의 가옥 구조
2)조선시대 집의 분류
2-1) 재료별 분류 --- 초가집 너와집 귀틀집 등
2-2) 지방별 분류 --- 북부 남부 지방 여러형
3)조선시대 정원
3-1) <소쇄원>
본문내용
많이 지어졌다. 다섯 칸 집- 툇마루, 부엌이 가운데, 양쪽에 큰방과 건넌방, 지붕은 마름모 매기 기법과 일자매기 형식을 사용한다
남부지방
一자형의 평면 형태로, 3칸 또는 4칸으로 지어졌다.
부엌은 주로 왼쪽에 두고 큰방과 작은방 앞에는 툇마루를 깔아 사용하고
4칸 집은 대청을 남쪽 방향에 두었다. 지붕 줄매기는 일자매기 방식을 사용한다
제주도
제주도라는 특정지역인 섬에 분포된 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인 상방을 두고 그 서측으로 부엌과 작은구들, 동측으로 큰구들과 고팡을 배치하였다. 큰구들은 부모들이, 작은구들은 자녀들의 공간이고, 부엌의 부뚜막은 작은구들쪽과 반대되는 위치에 두어 취사시의 열이 방에들지 않도록 하며, 또 큰 구들과 작은구들의 구들고래들은 방 전체의 3분의 2정도나 깔리는 것이 특징이다. 고팡은 물건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이른다.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사적인 건축이 주가 되고, 이들 건축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정원들과 정원 그자체가 주가 는 이른바 별서라 하는 두 가지가 있다.소쇄원은 별서 중에 하나이다.
양산보는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 문하생이 되었는데,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유배지까지 따라갔다가 사약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은둔하여 이 소쇄원을 만들었는데, 현존하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손꼽히며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곳이다. 중종25년(1530)에 양산보가 조성하였다 하며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는 사유시설이다. 양산보는 이 별서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소쇄옹이라 하고 소쇄원은 호에서 비롯된 “맑고 깨끗함”을 뜻한다.
대체적 모습은 계곡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이자 비대칭적인 산수원림이다. 소쇄원은 크게 애양단, 오곡문, 제월당, 광풍각으로 나눌 수 있다. 애양단구역은 원림의 입구 쪽에 위치해 있으며 계곡을 감상하기에 좋다. 오곡문구역은 주변에 넓은 암반이 있으며 오곡문 옆에 있는 담에는 두개의 구멍이 있어 이곳으로 맑은 계류가 흐른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월당은 집주인이 사색하고 독서하는 사적공간으로 주변에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 아래에 있으며 사랑방역할을 한다. 소쇄원이 위치한 주변에 명옥헌 ,환벽당, 식영정 등의 원림과 정자들이 모여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고한다. 이 일대 3만여평이 모두 소쇄원이었고, 소쇄원을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했었는데 현재는 내원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정원은 자연의 뛰어난 경치를 위주로 하여 인공을 절제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가 돋보이게 만든 것으로, 수목과 화초 및 각종 경물(景物)들도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풍광과 여유를 즐기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자리이며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그들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세상을 논하던 곳이다. 권력의 부패한 더러움에서 멀리 떨어져 순수하고 고고하게 살고자 하는 맑고 밝은 기풍의 선비 모습이 그려진다.
남부지방
一자형의 평면 형태로, 3칸 또는 4칸으로 지어졌다.
부엌은 주로 왼쪽에 두고 큰방과 작은방 앞에는 툇마루를 깔아 사용하고
4칸 집은 대청을 남쪽 방향에 두었다. 지붕 줄매기는 일자매기 방식을 사용한다
제주도
제주도라는 특정지역인 섬에 분포된 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인 상방을 두고 그 서측으로 부엌과 작은구들, 동측으로 큰구들과 고팡을 배치하였다. 큰구들은 부모들이, 작은구들은 자녀들의 공간이고, 부엌의 부뚜막은 작은구들쪽과 반대되는 위치에 두어 취사시의 열이 방에들지 않도록 하며, 또 큰 구들과 작은구들의 구들고래들은 방 전체의 3분의 2정도나 깔리는 것이 특징이다. 고팡은 물건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이른다.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사적인 건축이 주가 되고, 이들 건축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정원들과 정원 그자체가 주가 는 이른바 별서라 하는 두 가지가 있다.소쇄원은 별서 중에 하나이다.
양산보는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 문하생이 되었는데,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유배지까지 따라갔다가 사약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은둔하여 이 소쇄원을 만들었는데, 현존하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손꼽히며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곳이다. 중종25년(1530)에 양산보가 조성하였다 하며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는 사유시설이다. 양산보는 이 별서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소쇄옹이라 하고 소쇄원은 호에서 비롯된 “맑고 깨끗함”을 뜻한다.
대체적 모습은 계곡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이자 비대칭적인 산수원림이다. 소쇄원은 크게 애양단, 오곡문, 제월당, 광풍각으로 나눌 수 있다. 애양단구역은 원림의 입구 쪽에 위치해 있으며 계곡을 감상하기에 좋다. 오곡문구역은 주변에 넓은 암반이 있으며 오곡문 옆에 있는 담에는 두개의 구멍이 있어 이곳으로 맑은 계류가 흐른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월당은 집주인이 사색하고 독서하는 사적공간으로 주변에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 아래에 있으며 사랑방역할을 한다. 소쇄원이 위치한 주변에 명옥헌 ,환벽당, 식영정 등의 원림과 정자들이 모여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고한다. 이 일대 3만여평이 모두 소쇄원이었고, 소쇄원을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했었는데 현재는 내원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정원은 자연의 뛰어난 경치를 위주로 하여 인공을 절제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가 돋보이게 만든 것으로, 수목과 화초 및 각종 경물(景物)들도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풍광과 여유를 즐기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자리이며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그들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세상을 논하던 곳이다. 권력의 부패한 더러움에서 멀리 떨어져 순수하고 고고하게 살고자 하는 맑고 밝은 기풍의 선비 모습이 그려진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