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역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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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역사4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금제에는 여자에 대한 금제가 보일 뿐 남자에 대한 것이 없어서
여자의 저고리에 해당하는 것 같다.
내의: 반비(반소매 윗옷)속이나 표상(겉에 입는 치마)속에 입는 상의로 생각된다. 내의의 형태는 알
수 없다.
반비: 반소매의 상의(윗옷)으로서 내의 위에 입는 옷이다.
표의: 포(두루마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신분에 관계 없이 남녀 모두 입었다.
표: 오늘날의 숄 또는 스카프와 비슷한 것으로 목 뒤에서 가슴 앞으로 길게 드리웠던, 일종의 목도리였
다. 4두품 여자까지는 두를 수 있었으나 평인은 두를 수 없었다.
여자(하의)
고(바지): 흥덕왕의 복식금제에 남자의 바지뿐만 아니라 여자의 바지에 대해서도 규제하고 있는 것
으로 보아 여자가 바지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상(치마): 치마에는 내상과 표상의 구분이 있어 신라보다 복식의 구조가 복잡해진 것을 알 수 있다.
표상은 상의의 가슴 위로 올려입는 치마이고 내상은 표의나 단의 속에 입었던 치마로 생각된다
5. 고려시대 http://user.chol.com/~juyada/한국 정통의상과 장신구
고려의 복식은 문헌이나 유물이 거의 없는데, 인종 때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국
왕도 평상시에는 조건과 백저포를 착용하여 민서(서민)와 구별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포는
가선(덧댄 선)이 없는 흰 모시 두루마기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서민남자
고려 상류층 복식은 중국 복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일반 서민의 복식은 우리 나라 고유의 전통적인
풍속을 그대로 반영하며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남녀귀천의 차이 없이 백저포에
검은 건을 착용하였다.
남자 서민복은 포(두루마기), 유(저고리), 고(바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고려의 유는 오늘날의 저고리
보다 약간 길었을 것으로 보인다. 건은 귀족층은 두 가닥 띠의 건을 착용하였으나 서민은 사대오건
(네 가닥 띠의 검은 건)을 착용하였다.
●서민여자
여자 서민들은 삼국시대 기본 복식인 상(치마)과 유(저고리)를 계속 입어 치마, 저고리가 되었다. 이
명칭은 고려 말에 생긴 용어이다. 치마, 저고리 위에 포를 입었다. 귀부녀에서 서민 처녀,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같았다고 했으나 귀부녀보다 옷감의 질이 나쁘고 길이가 짧으며 폭이 좁았다고 본다.
방배동 출토 목우상에서 여자 서민들이 착용했던 유와 상을 볼 수 있다. 유의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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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23
  • 저작시기2014.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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