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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 『の』등이 그것이다. 잡화(雜話)물에는 『ばなし』(1692), 『』(1686)등이 있다.
浮世草子의 대표작가이던 가 죽은 뒤 (1665~1731), (1663~1711)등 를 모방하는 자가 속출하여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으나, 그 내용은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나 인간성에의 추구 및 그 표현력 등에 있어 를 따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서점의 영업중심이라는 조작에 휩쓸려 흥미 본위로 유통하게 되었다.
후에는 (1667~1736)가 나와 『』(1715), 『』등의 이른바 를 썼는데, 이것은 직업이나 신분에 의해 나타나는 기질이나 인간형을 익살스럽게 묘사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호색물로서는 『』, 『』(1711) 등을 썼다. 는 등 연극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했는데, 위에 든 작품들은 이것을 살린 교묘한 구성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개척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의 서점 를 통해 출판되고 유통되었기 때문에 이라고 하는데, 1700년경부터 약 반세기 동안 많은 아류(亞流)작들과 함께 유행하다가 후기의 소설의 일종. 그림이 적고 문장중심이며, 공상적 전기적인 것이 많다.
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浮世草子의 대표작가이던 가 죽은 뒤 (1665~1731), (1663~1711)등 를 모방하는 자가 속출하여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으나, 그 내용은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나 인간성에의 추구 및 그 표현력 등에 있어 를 따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서점의 영업중심이라는 조작에 휩쓸려 흥미 본위로 유통하게 되었다.
후에는 (1667~1736)가 나와 『』(1715), 『』등의 이른바 를 썼는데, 이것은 직업이나 신분에 의해 나타나는 기질이나 인간형을 익살스럽게 묘사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호색물로서는 『』, 『』(1711) 등을 썼다. 는 등 연극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했는데, 위에 든 작품들은 이것을 살린 교묘한 구성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개척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의 서점 를 통해 출판되고 유통되었기 때문에 이라고 하는데, 1700년경부터 약 반세기 동안 많은 아류(亞流)작들과 함께 유행하다가 후기의 소설의 일종. 그림이 적고 문장중심이며, 공상적 전기적인 것이 많다.
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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