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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리고 산 사람들의 삶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내가 살자고 또는 다른 사람이 살자고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의 목숨에 온 투자를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라고 해서 일반 윤리와 별다른 처방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 감각이 결국은 형평성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기독교 윤리는 일반 윤리와 다른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지만 그것이 슬픈 일인 것을 안다. 그것이 결국 죄의 문제인 것을 안다. 이 땅에 살면서 죄를 벗을 수 없음을 안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 윤리는 옳음 곧 정의가 공정성(공히 옳다고 보는 것)에 있지만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뜻에 있다. 일반 윤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면 적어도 불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불의한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의한 사람들이다. 죄의 문제를 아는 것,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은혜다.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 곧 공정성의 내용을 바꾸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 감각이 결국은 형평성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기독교 윤리는 일반 윤리와 다른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지만 그것이 슬픈 일인 것을 안다. 그것이 결국 죄의 문제인 것을 안다. 이 땅에 살면서 죄를 벗을 수 없음을 안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 윤리는 옳음 곧 정의가 공정성(공히 옳다고 보는 것)에 있지만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뜻에 있다. 일반 윤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면 적어도 불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불의한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의한 사람들이다. 죄의 문제를 아는 것,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은혜다.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 곧 공정성의 내용을 바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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