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적 신관] -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존 로빈슨의 신학을 중심으로-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무신론적 신관] - 폴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존 로빈슨의 신학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몸 말
1. 하나님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탐구
2. 유신론의 종말 - 존 로빈슨의 문제제기
3. 존재와 비존재 고찰을 통한 신 이해 - 폴 틸리히의 신관
4. 세상적이고 힘없는 하나님 - 본회퍼의 하나님 이해

Ⅲ. 나가며

본문내용

핵심을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제 본회퍼는 인간의 한계 상황적인 문제에서 하나님을 찾기보다 인간의 삶 한가운데서, 역사의 현실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다. 본회퍼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역사의 한가운데에 힘없이 고난 당하는 분으로 계시면서 그의 의와 그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시려는 분이다. 이 하나님은 인간의 형태 속에 계시며, ‘타자를 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데 있다. Ibid. p.225-227 재인용
4) 삶과 세상 한가운데 피안적 하나님
본회퍼는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표상을 비성서적인 것으로 배격한다. 《1. 하나님을 현실의 세계와 관계없는 형이상학적 피안의 세계와 관계하는 분으로 생각함을 배격한다. 2. 하나님을 교회의 제한된 영역에만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격한다. 3. 하나님을 오직 신앙인의 내면성의 문제와 관계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격한다. 4. 하나님을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배격한다.》 김균진, 「본회퍼의 하느님 이해」, 신학사상, 1986 3월, p.812
하젠휘틀에 의하면 본회퍼는 그의 논문인 「행위와 존재(조직신학 안의 초월철학과 존재론)」에서 “무신론의 긍정적 기능을 완전하게 인식하면서 틸리히의 입장을 넘어선다.” 하젠휘틀, 하느님, 바오로 딸, 1983, p.305
또한 본회퍼는 “신은 존재한다거나, 존재 자체는 생성되는 것에 지속해서 내재-초월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변적 관념이다. 신은 1차 적으로 존재하는 것 일반이 아니다.” D. Bonhoeffer, Akt und Sein, Muenchen 1956, p. 52 재인용
신이 있다라는 말은 ‘인간 실존을 위해 있다.’는 의미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러한 해석은 신이 ‘자아 안에 폐쇄되어 머물고 있으며’, ‘역사적 생성을 위해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그에 의하면 “신은 있는 것이 아니라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구성되는 인격체들의 공동체에 발견된다.” Ibid, p.28
이 공동체는 세계 안에 있는 실재이다. “세계의 실재와 하나님의 실재의 통일성은 공동체에 의해 현실 彼岸이 아니라 현실 此岸의 심층에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 하젠휘틀, 하느님, 바오로 딸, 1983, p.307
바로 현실 차안의 심층이 곧 삶 가운데 초월하는, 삶 가운데 피안적인 하느님인 것이다.
하젠휘틀은 “작업가설로서의 신관을 폐기하는 것은 지성적 정직성에 속한다.”고 했다. 본회퍼는 “신학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형식화하면서 ‘성숙한 세계’라는 주제를 강조하였다. 성숙함은 세상의 가치로서가 아니라 상황적 조건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우드야드, 현대 신학자들의 하나님 이해, 대한기독교서회, 1986, p.48
“이 현세에서 하느님 없이 자신의 삶을 해결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정직할 수 있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우리는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리스도처럼 고통 당하는 하느님만이 인간을 도울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 나오라고 하지 않고 삶에로 불러낸다.” D. Bonhoeffer, Widerstand und Ergebung, Muenchen 1962. p.247-248 재인용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오직 위타 현존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Ⅲ. 나가며
지금까지 존 로빈슨과 틸리히, 본회퍼의 문제제기, 및 신관을 알아봄으로써 하나님이 저 위에, 저 밖에 있지 않더라도 신학이 성립하게 됨을 고찰할 수 있었다. 특히 유신론적 신관을 가지고는 현대의 세계, 현대인의 사고, 현대인의 심리를 설명할 수 없음에 그 기본적인 전제를 두고,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신학의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범주에서 그들의 신학을 정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사상은 세계를 긍정하는 신학, 세계 속에서 세계와 함께 ‘사는’ 신학을 펼침으로써 하나님의 범주를 확장시키며, 결국 하나님의 범주를 세계와 모든 인류, 즉 보편에까지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 속에서 머물러 있던 신학이 세계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 디딤돌이 될 수 있었으며, 현대인에게 저 구석으로 밀려난 하나님의 자리를 현대인의 실존에, 현대인의 존재 기반에, 또한 현대인이 추구하는 보편적 윤리의 준거에 자리잡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신학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삶과의 투쟁이었다. 그들은 신학의 전제, 범주를 세계에 전재하였다. 이들의 신학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신학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전통 신학의 강조점을 흐리지 않는 신학을 성립했던 것이다. 새로운 초월, 새로운 신, 새로운 존재, 새로운 상징, 의미 등을 파악함으로써 그들은 역사와 함께 신학이, 심지어 신의 의미까지 변화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신학자들이 세운 사상을 통해 현대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업적은, 이들의 신학의 범주, 신학의 목표, 신학의 대상, 가치 등이 ‘삶’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틸리히가 실존 및,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존재 자체를 강조하는 철학적 접근인데 비하여, 본회퍼가 인간 밖,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실천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두 사상은 범주적 차이를 지닐 수도 있지만, 현대인이 이들의 사상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시간,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다. 이 두 신학자들도 ‘삶’을 바라보며 구조화하는 관점이 다를 뿐, 삶에서 실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모두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이것은 삶의 시작이다.”
(1945년 4월 8일 주일, 본회퍼 목사의 처형날에 남긴 말)
  • 가격1,6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5.10.23
  • 저작시기201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8489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