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연시조의 개관
Ⅲ. 사림과 연시조
Ⅳ. 연시조의 변질과 쇠퇴
Ⅴ. 나오는 말
Ⅱ. 연시조의 개관
Ⅲ. 사림과 연시조
Ⅳ. 연시조의 변질과 쇠퇴
Ⅴ. 나오는 말
본문내용
중심 장르로 등장한 것이다. 李東姸,「19世紀 時調의 變貌樣相:趙榥.安玟英.李世輔의 개인시조집을 중심으로」, 梨花女子大學校, 1995.
이는 곧 시조, 연시조가 연행공간에 편입됨으로서 그 형식상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되, 앞에서 정의되었던 연시조의 기본 개념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시가계 연시조 후기
이전의 연시조와 달리 내적 변화. 자연에 대한 인식이 현실과 구별되는 관념적 세계가 아닌, 현실 속의 삶의 터전인 쪽으로 주제가 변화하는 특징
오륜가계 연시조 후기
가객들의 본격적인 활동과 함께 암송 방식으로 향유되던 것이 가창으로 전환 변화
육가계연시조 후기
안정, 갈등, 평정: 평정 내에 내포된 갈등을 극복해 내어 새로운 평정을 추구. 변증법적이고 근대적인 특성
어부가계 연시조 후기
대체적으로 이전의 작품들을 답습한 것으로 보이나, 후렴구에서 이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나타남
연시조의 시대적 변화는 그 유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연구된다. ‘四時歌系’, ‘五倫歌系,’ ‘六歌系’, ‘漁父歌系’가 바로 그것이다. 각 유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이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변화 양상 중에서도 후기의 특징적 양상만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현자는 연시조 중에서도 六歌系 연시조를 중심으로 연시조의 변화를 연구하여 신지의 <永言十二章>을 육가계 연시조의 후기 작품으로 잡고, 그 특성을 파악하였다. <永言十二章>은 육가계 작품의 마지막 작품으로 다른 육가에서 보이는 완세적 발상이 보이고 또 수기의 측면도 보이나 이미 환로에 나가기 어려운 18세기 재지사족으로서 선인들의 시구를 답습하며 자족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후기 육가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修己, 人事에 대한 미련, 갈등, 후회 등의 성향이 나타나는 동시에 이를 통해 결국은 평안과 안정을 찾아가는 처사적 문학의 변이양상을 타나내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점에서 앞의 육가들과 차이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현자,,「六歌系 연시조의 변이양상 연구」
이와 같은 양상은 그 문학적 형태의 발전이 한계에 다다른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시조의 문학적 배경이 되었던 사림계급의 문화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정신적 기반의 근저가 흔들림에 따라 연시조 또한 시대적 한계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참고>육가계 연시조의 변이양상
태동기
도입기
발전기
쇠퇴기
문천상(1236~1282)
-한시 계열 최초 육가
-노래형식 6수 고시
이별(1500~1565)
-방의 인문학적 성향
-조선 최초 육가 발굴
이황, 권호문(1501~1587)
-자연 은거와 세속 지향
신지(1706~1780)
-관습적인 시구 사용 답습모방 지향
문학·시가의 형식은 역사적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연시조가 15세기 이후 융성기를 거쳐 18세기 후반, 19세기에 이르러 그 시가사적 의미를 잃은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시가사의 역사적 변화는 갑작스레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시조의 발생이 그 이전 시대의 경기체가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 되듯이 그 이후의 시대에도 시조·연시조의 뒤를 이은 새로운 방식의 문예 사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시조의 갑작스러운 단절은 단지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연시조라는 형식 자체에서의 한계점이 발견되어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갔던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Ⅴ. 나오는 말
연시조는 시조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으나 평시조와 다르게 여러 수를 묶어 한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정부에서 쫓겨나 향촌으로 내려간 사림들의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기존 시가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가를 창작하고자 한 이들의 노력으로 연시조가 탄생하였고, 사림파의 의식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시가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연시조는 주제 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육가, 사시가, 어부가, 오륜가, 훈민가와 같이 연시조에서는 내면을 표출하는 시조의 주제와 제재들에 있어서 평시조에 비해 다양한 주제의 시조가 창작되었다. 평시조의 국한된 유교적인 이념과 상류사회의 생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인 이념을 토대로 하되 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렇게 연시조는 평시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조의 다양한 발전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조는 고려 중엽에 나타나서 조선 시대에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고려문학은 귀족문학의 경기체가와 평민문학의 고려속요로 분립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분립현상은 조선시대에 시조로 통합된다. 시조가 귀족 문학과 평민 문학이 통합되는 계기를 마련된 역할을 한 것은 연시조의 힘이 컸다고 본다. 지배계층의 문학인 평시조가 여러 계층이 창작하는 사설시조에 이르기 까지 사대부 권위의 실추와 시민 의식의 성장, 정치적 혼란 등과 같은 사회적인 상황의 이유도 있지만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사림파가 향촌으로 내려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연시조를 창작하였던 것이 백성들에게 시조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평시조는 양반들의 문화로 어렵거나 짧아 백성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연시조는 양반들이 즐기는 평시조보다는 백성들이 즐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려 하였고, 그 결과 시조를 백성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연시조는 사림이 주자학의 이념 위에서 향촌 문화를 이끌어나가면서 창작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사상체계로서 실학과 양명학이 출현하고 지배층이었던 사림의 위상이 쇠퇴하면서 변질되었다. 연시조가 특정한 사림의 이념으로서의 제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조의 향유층이 변하고 시조와 연시조가 연행공간에 편입되면서 형식상의 형태는 유지되었지만 기본개념이 변질 된 것이다. 연시조가 담당층인 사림의 이념을 드러내고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는 중요한 의의가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존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시대적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곧 시조, 연시조가 연행공간에 편입됨으로서 그 형식상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되, 앞에서 정의되었던 연시조의 기본 개념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시가계 연시조 후기
이전의 연시조와 달리 내적 변화. 자연에 대한 인식이 현실과 구별되는 관념적 세계가 아닌, 현실 속의 삶의 터전인 쪽으로 주제가 변화하는 특징
오륜가계 연시조 후기
가객들의 본격적인 활동과 함께 암송 방식으로 향유되던 것이 가창으로 전환 변화
육가계연시조 후기
안정, 갈등, 평정: 평정 내에 내포된 갈등을 극복해 내어 새로운 평정을 추구. 변증법적이고 근대적인 특성
어부가계 연시조 후기
대체적으로 이전의 작품들을 답습한 것으로 보이나, 후렴구에서 이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나타남
연시조의 시대적 변화는 그 유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연구된다. ‘四時歌系’, ‘五倫歌系,’ ‘六歌系’, ‘漁父歌系’가 바로 그것이다. 각 유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이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변화 양상 중에서도 후기의 특징적 양상만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현자는 연시조 중에서도 六歌系 연시조를 중심으로 연시조의 변화를 연구하여 신지의 <永言十二章>을 육가계 연시조의 후기 작품으로 잡고, 그 특성을 파악하였다. <永言十二章>은 육가계 작품의 마지막 작품으로 다른 육가에서 보이는 완세적 발상이 보이고 또 수기의 측면도 보이나 이미 환로에 나가기 어려운 18세기 재지사족으로서 선인들의 시구를 답습하며 자족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후기 육가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修己, 人事에 대한 미련, 갈등, 후회 등의 성향이 나타나는 동시에 이를 통해 결국은 평안과 안정을 찾아가는 처사적 문학의 변이양상을 타나내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점에서 앞의 육가들과 차이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현자,,「六歌系 연시조의 변이양상 연구」
이와 같은 양상은 그 문학적 형태의 발전이 한계에 다다른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시조의 문학적 배경이 되었던 사림계급의 문화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정신적 기반의 근저가 흔들림에 따라 연시조 또한 시대적 한계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참고>육가계 연시조의 변이양상
태동기
도입기
발전기
쇠퇴기
문천상(1236~1282)
-한시 계열 최초 육가
-노래형식 6수 고시
이별(1500~1565)
-방의 인문학적 성향
-조선 최초 육가 발굴
이황, 권호문(1501~1587)
-자연 은거와 세속 지향
신지(1706~1780)
-관습적인 시구 사용 답습모방 지향
문학·시가의 형식은 역사적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연시조가 15세기 이후 융성기를 거쳐 18세기 후반, 19세기에 이르러 그 시가사적 의미를 잃은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시가사의 역사적 변화는 갑작스레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시조의 발생이 그 이전 시대의 경기체가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 되듯이 그 이후의 시대에도 시조·연시조의 뒤를 이은 새로운 방식의 문예 사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시조의 갑작스러운 단절은 단지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연시조라는 형식 자체에서의 한계점이 발견되어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갔던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Ⅴ. 나오는 말
연시조는 시조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으나 평시조와 다르게 여러 수를 묶어 한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정부에서 쫓겨나 향촌으로 내려간 사림들의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기존 시가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가를 창작하고자 한 이들의 노력으로 연시조가 탄생하였고, 사림파의 의식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시가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연시조는 주제 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육가, 사시가, 어부가, 오륜가, 훈민가와 같이 연시조에서는 내면을 표출하는 시조의 주제와 제재들에 있어서 평시조에 비해 다양한 주제의 시조가 창작되었다. 평시조의 국한된 유교적인 이념과 상류사회의 생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인 이념을 토대로 하되 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렇게 연시조는 평시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조의 다양한 발전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조는 고려 중엽에 나타나서 조선 시대에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고려문학은 귀족문학의 경기체가와 평민문학의 고려속요로 분립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분립현상은 조선시대에 시조로 통합된다. 시조가 귀족 문학과 평민 문학이 통합되는 계기를 마련된 역할을 한 것은 연시조의 힘이 컸다고 본다. 지배계층의 문학인 평시조가 여러 계층이 창작하는 사설시조에 이르기 까지 사대부 권위의 실추와 시민 의식의 성장, 정치적 혼란 등과 같은 사회적인 상황의 이유도 있지만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사림파가 향촌으로 내려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연시조를 창작하였던 것이 백성들에게 시조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평시조는 양반들의 문화로 어렵거나 짧아 백성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연시조는 양반들이 즐기는 평시조보다는 백성들이 즐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려 하였고, 그 결과 시조를 백성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연시조는 사림이 주자학의 이념 위에서 향촌 문화를 이끌어나가면서 창작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사상체계로서 실학과 양명학이 출현하고 지배층이었던 사림의 위상이 쇠퇴하면서 변질되었다. 연시조가 특정한 사림의 이념으로서의 제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조의 향유층이 변하고 시조와 연시조가 연행공간에 편입되면서 형식상의 형태는 유지되었지만 기본개념이 변질 된 것이다. 연시조가 담당층인 사림의 이념을 드러내고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는 중요한 의의가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존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시대적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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