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필요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 하는 듯이 보인다. 예술과 과학의 연구는 무가치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좀 더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하도록 이끌어 준다. 실로, 사물이나 현상 뒤에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는 오직 과학적인 수단을 통해서만이 우리 눈에 띄기도 한다. ― 이것이 바로 그림이 얻는 효과이다. Rose-Marie Hagen and Rainer Hagen, Careers in the King\'s Service, What Great Paintings Say, Taschen, 25th Edition, 2007, pp. 236-241
■ 옮기면서
이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진중권의 저서 《춤추는 죽음》을 읽으면서였다. 서양화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죽음의 의미와 상징을 통시적으로 훑어본 이 책은 비록 강의 교재의 일환으로 처음 만나기는 했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그림 속 인물들과 어울리지 않게 대각선으로 삐딱하게 그려져 있는 해골이 무척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던 그림이다. 그림이 인쇄된 책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뒤집어보다가 시점이 우연히 딱 맞아 내 눈에 해골의 모습이 들어왔을 때에는 섬뜩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던 묘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여, 숨겨진 해골을 발견하면서 이 그림을 꼭 내 눈으로 직접 보리라 다짐했고, 기회는 우연히 교환학생 갔을 때 찾아왔다. 성탄절을 맞아 친구를 방문했던 영국의 내쇼날 갤러리에는 명화의 진품들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마저도 기억을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부족한 깜냥으로 넓은 미술관을 하루 만에 끝내기 위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심결에 이동하던 중 맞닥뜨린 홀바인의 〈대사들〉은 생각보다 ‘거대’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컸고, 생각보다 묘사는 훨씬 더 섬세했다.
지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지식의 깊이에 파묻혀 내가 아는 것만 보이지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에 선입견을 버리고 미술작품을 대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아는 것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기 전에 아는 것조차 없어서 보이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배경지식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풍광을 보고 호기로운 필치로 그 인상을 단숨에 그려내었던 수묵화와 같은 동양화와 달리, 압축된 ‘이야기’를 한 폭의 정지된 이미지로 담으려했던 고전적인 서양화의 경우 특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좀더 그림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홀바인의 〈대사들〉은 아름다운 인물이나 자연의 모습이 드러난 그림은 아니지만 이러한 점에서 더욱 와 닿는다. 인물의 캐릭터성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한 그림에 적절히 녹아있기란 쉽지 않다. 홀바인은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기억되어 많은 이들에 의해 연구되고 사랑받으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 옮기면서
이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진중권의 저서 《춤추는 죽음》을 읽으면서였다. 서양화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죽음의 의미와 상징을 통시적으로 훑어본 이 책은 비록 강의 교재의 일환으로 처음 만나기는 했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그림 속 인물들과 어울리지 않게 대각선으로 삐딱하게 그려져 있는 해골이 무척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던 그림이다. 그림이 인쇄된 책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뒤집어보다가 시점이 우연히 딱 맞아 내 눈에 해골의 모습이 들어왔을 때에는 섬뜩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던 묘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여, 숨겨진 해골을 발견하면서 이 그림을 꼭 내 눈으로 직접 보리라 다짐했고, 기회는 우연히 교환학생 갔을 때 찾아왔다. 성탄절을 맞아 친구를 방문했던 영국의 내쇼날 갤러리에는 명화의 진품들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마저도 기억을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부족한 깜냥으로 넓은 미술관을 하루 만에 끝내기 위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심결에 이동하던 중 맞닥뜨린 홀바인의 〈대사들〉은 생각보다 ‘거대’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컸고, 생각보다 묘사는 훨씬 더 섬세했다.
지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지식의 깊이에 파묻혀 내가 아는 것만 보이지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에 선입견을 버리고 미술작품을 대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아는 것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기 전에 아는 것조차 없어서 보이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배경지식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풍광을 보고 호기로운 필치로 그 인상을 단숨에 그려내었던 수묵화와 같은 동양화와 달리, 압축된 ‘이야기’를 한 폭의 정지된 이미지로 담으려했던 고전적인 서양화의 경우 특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좀더 그림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홀바인의 〈대사들〉은 아름다운 인물이나 자연의 모습이 드러난 그림은 아니지만 이러한 점에서 더욱 와 닿는다. 인물의 캐릭터성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한 그림에 적절히 녹아있기란 쉽지 않다. 홀바인은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기억되어 많은 이들에 의해 연구되고 사랑받으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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