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 <[신화와 영화], 강대진, 작은이야기, 2004>
1. 인상적인 글 발췌
2. 독후감
Ⅲ. 결 론
[참고 자료]
Ⅱ. 본 론 - <[신화와 영화], 강대진, 작은이야기, 2004>
1. 인상적인 글 발췌
2. 독후감
Ⅲ.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어떤 복수의 의도를 예상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95쪽)
15) 여자가 되가 만 마누엘라 남편도 그렇고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 로사 아버지도 그렇고... 이것을 두고 남성에 대한 경멸이나 비웃음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우리 ‘성모’의 연민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성모는 ‘불쌍히 여기는 성모’, 그 연민이 자기 아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고통을 짊어진 모든 나약한 존재들에게로 향한 그러한 분이라는 것이다. - (99쪽)
16) 저승이야 말로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장 가까운 ‘별세계’가 아닌가?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이곳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고 또 우리 자신들도 모두 언젠가는 이곳에 갈 것이다. 그러니 그 두렵고 신비한 세계를 미리 알고도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 (150쪽)
2. 독후감
‘신화와 영화’는 이전에 ‘잔혹한 책읽기’로 책읽기의 \'잔혹함\'을 보여주었던 강대진교수가 고전 읽기 솜씨를 발휘하여 영화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잔혹한 책읽기’에서 그는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서구의 중세까지를 넘나들면서 우리나라 서구 고전 읽기가 아직 능숙하지 못함을 예리하게 파헤친 바가 있다.
언어의 깊이는 사유의 깊이므로, 번역과정에서의 오역들은 원(原)-사유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번역가는 그 나라의 언어로서 마치 모국어를 다루듯 해야 한다. 번역이 아무리 제2의 창작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귤\'을 \'탱자\'로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번역은 다른 문화를 우리 문화에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의 언어는 오히려 그 나라의 원(原)언어를 닮아야 한다.
강대진 교수는 번역에 대한 ‘메타-번역’을 충실히 했다. ‘잔혹한 책읽기’, 혹은 잔혹 서평은 우리나라 서평 문화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신화와 영화를 주제로 영화읽기를 시도한 것이 바로 ‘신화와 영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은 놀랍도록 성장했다. 큰 서점에 가면 아예 ‘신화’ 코너가 따로 마련이 되어 있을 정도니, 신화가 문학의 하위 분야로 분류되던 관행이 어느 시점부터 변화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화\'는 단지 \'이야기\'가 아니다. 한 민족의 원(原)사유이고, 원(原)현상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고전이자 신화의 기록인 \'삼국유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까지 이르는 우리 민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화와 영화’는 \'영화\'라는 완벽한 현대의 예술 장르 속에서, 사유의 원형식을 파헤치면서 다양한 신화의 흔적을 읽어낸다.
지금까지 영화와 짝을 이룬 책들은 영화를 화제로 철학, 역사, 문학, 과학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신화와 영화’는 영화를 매개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
‘신화와 영화’는 영화의 내적 이야기 구조에 깊이 파고듦으로써 영화적인 재미와 의미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지극히 대중적인 영화들이 지닌 호소력의 밑바탕에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가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은 ‘신화성’이라고 할만한 어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고, 유익하고, 신선했고, 때로는 어려웠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에서 ‘영웅의 하계 여행’을, ’페이스 오프’에서 ‘영웅의 귀향’을 들춰내는 기법이 매우 독특했다.
특히, 전혀 신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하나 그리고 둘’, ‘아메리칸 뷰티’ 등에서 신화적 모티프를 밝혀내는 상상력 또한 놀라웠다.
“남들이 뭐래든지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귀신 영화’다. 내가 이런 규정을 내리는 이유는 우선 영화의 시작과 끝이 죽은 사람의 시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우거진 가로수 길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마지막 화면에 되풀이 된다. 내려다보는 시각인 ‘되돌이 구성’, 이것은 이미 죽은 사람의 회고담을 담는 틀이다.”(“아메리칸 뷰티, 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중에서)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영화들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정글을 통과하는 윌라드 대위는 오뒷세우스의 ‘하계(下界)여행’에 비견이되고(지옥의 묵시록), 범인과 얼굴을 맞바꾼 수사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 구성의 한 요소로 지적했던 ‘알아봄(anagnorisis)’의 문제 즉, 자신의 존재증명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신화 속 주인공과 같다는 식이다(페이스 오프).
능숙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볼 때 무심코 지나쳐간 장면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고, 단지 어렴풋하게 감지됐던 것들이 뚜렷해지며, 우리가 즐거움을 느꼈던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대량 생산과 대량 복제의 시대에 ‘새롭게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석’마저도 복제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새롭게 보기’의 한 틀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최첨단 장르인 영화와, 시간의 먼지가 두껍게 쌓인 신화와의 접속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탈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해석이란 정치적이며, ‘해석의 탈주’는 또 다른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른바 영화에 대한 해석의 탈주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영화에 감추어진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현대 프랑스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신화’로 읽어냈고, 벤야민은 ‘아케이트 프로젝트’에서 비록 미완적 이지만, 현대 사회에 숨겨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파헤쳤다.
강대진 교수의 작업이 단순히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비교. 해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대의 사회 읽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독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 ‘신화와 영화’를 집었을 때, 과연 이 책은 나에게 어떤 방식을 보여줄 것인가가 궁금했다. 신화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에 뭘 또 얼마나 신선한 접근을 한단 말인가? 그것이 이 책을 집었을 때의 나의 불신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 역시 저자의 해석을 그냥 “읽었다“. 몇몇 글들은 허덕이며
15) 여자가 되가 만 마누엘라 남편도 그렇고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 로사 아버지도 그렇고... 이것을 두고 남성에 대한 경멸이나 비웃음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우리 ‘성모’의 연민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성모는 ‘불쌍히 여기는 성모’, 그 연민이 자기 아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고통을 짊어진 모든 나약한 존재들에게로 향한 그러한 분이라는 것이다. - (99쪽)
16) 저승이야 말로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장 가까운 ‘별세계’가 아닌가?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이곳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고 또 우리 자신들도 모두 언젠가는 이곳에 갈 것이다. 그러니 그 두렵고 신비한 세계를 미리 알고도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 (150쪽)
2. 독후감
‘신화와 영화’는 이전에 ‘잔혹한 책읽기’로 책읽기의 \'잔혹함\'을 보여주었던 강대진교수가 고전 읽기 솜씨를 발휘하여 영화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잔혹한 책읽기’에서 그는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서구의 중세까지를 넘나들면서 우리나라 서구 고전 읽기가 아직 능숙하지 못함을 예리하게 파헤친 바가 있다.
언어의 깊이는 사유의 깊이므로, 번역과정에서의 오역들은 원(原)-사유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번역가는 그 나라의 언어로서 마치 모국어를 다루듯 해야 한다. 번역이 아무리 제2의 창작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귤\'을 \'탱자\'로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번역은 다른 문화를 우리 문화에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의 언어는 오히려 그 나라의 원(原)언어를 닮아야 한다.
강대진 교수는 번역에 대한 ‘메타-번역’을 충실히 했다. ‘잔혹한 책읽기’, 혹은 잔혹 서평은 우리나라 서평 문화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신화와 영화를 주제로 영화읽기를 시도한 것이 바로 ‘신화와 영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은 놀랍도록 성장했다. 큰 서점에 가면 아예 ‘신화’ 코너가 따로 마련이 되어 있을 정도니, 신화가 문학의 하위 분야로 분류되던 관행이 어느 시점부터 변화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화\'는 단지 \'이야기\'가 아니다. 한 민족의 원(原)사유이고, 원(原)현상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고전이자 신화의 기록인 \'삼국유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까지 이르는 우리 민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화와 영화’는 \'영화\'라는 완벽한 현대의 예술 장르 속에서, 사유의 원형식을 파헤치면서 다양한 신화의 흔적을 읽어낸다.
지금까지 영화와 짝을 이룬 책들은 영화를 화제로 철학, 역사, 문학, 과학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신화와 영화’는 영화를 매개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
‘신화와 영화’는 영화의 내적 이야기 구조에 깊이 파고듦으로써 영화적인 재미와 의미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지극히 대중적인 영화들이 지닌 호소력의 밑바탕에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가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은 ‘신화성’이라고 할만한 어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고, 유익하고, 신선했고, 때로는 어려웠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에서 ‘영웅의 하계 여행’을, ’페이스 오프’에서 ‘영웅의 귀향’을 들춰내는 기법이 매우 독특했다.
특히, 전혀 신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하나 그리고 둘’, ‘아메리칸 뷰티’ 등에서 신화적 모티프를 밝혀내는 상상력 또한 놀라웠다.
“남들이 뭐래든지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귀신 영화’다. 내가 이런 규정을 내리는 이유는 우선 영화의 시작과 끝이 죽은 사람의 시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우거진 가로수 길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마지막 화면에 되풀이 된다. 내려다보는 시각인 ‘되돌이 구성’, 이것은 이미 죽은 사람의 회고담을 담는 틀이다.”(“아메리칸 뷰티, 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중에서)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영화들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정글을 통과하는 윌라드 대위는 오뒷세우스의 ‘하계(下界)여행’에 비견이되고(지옥의 묵시록), 범인과 얼굴을 맞바꾼 수사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 구성의 한 요소로 지적했던 ‘알아봄(anagnorisis)’의 문제 즉, 자신의 존재증명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신화 속 주인공과 같다는 식이다(페이스 오프).
능숙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볼 때 무심코 지나쳐간 장면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고, 단지 어렴풋하게 감지됐던 것들이 뚜렷해지며, 우리가 즐거움을 느꼈던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대량 생산과 대량 복제의 시대에 ‘새롭게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석’마저도 복제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새롭게 보기’의 한 틀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최첨단 장르인 영화와, 시간의 먼지가 두껍게 쌓인 신화와의 접속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탈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해석이란 정치적이며, ‘해석의 탈주’는 또 다른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른바 영화에 대한 해석의 탈주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영화에 감추어진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현대 프랑스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신화’로 읽어냈고, 벤야민은 ‘아케이트 프로젝트’에서 비록 미완적 이지만, 현대 사회에 숨겨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파헤쳤다.
강대진 교수의 작업이 단순히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비교. 해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대의 사회 읽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독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 ‘신화와 영화’를 집었을 때, 과연 이 책은 나에게 어떤 방식을 보여줄 것인가가 궁금했다. 신화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에 뭘 또 얼마나 신선한 접근을 한단 말인가? 그것이 이 책을 집었을 때의 나의 불신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 역시 저자의 해석을 그냥 “읽었다“. 몇몇 글들은 허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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