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간정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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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 우리나라의 정원과 서양의 정원

2. 본 론 - 남간정사탐방
1) 내가 본 남간정사
2) 남간정사와 송시열 선생 소개
3) 남간정사
4) 남간정사의 조경
5)기국정

3. 결론

본문내용

국정 옆에 있는 바위들과 폭포 그리고 방장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경의 핵심요소들이 모두 한 곳에서 갈필 수 있도록 계획 되었다. 남간정사 대청에 앉아 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잔잔한 흥취를 돋우고 있다.
남간 정사의 좌측에는 누마루가 놓여있다. 더 높은 곳에서 경관을 감상하라는 배려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기국정과 새로 지은 집들에 가려 제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건물 앞 좌우측의 돌담과 솟을삼문이 어색하고 답답해 보이는데 우암 사후에 남간정사 뒤편에 사당을 지으면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그 바람에 오른쪽의 멋진 누마루 방이 담장에 갇힌 꼴이 되었다. 기국정을 송씨 집안에서 옮겨 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누마루에서 보는 경관이 조금은 원래 맛을 찾을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남간정사의 주변을 돌아보니 주추가 사각형주추에 모를 죽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경에서 돌을 다루는 방법은 ‘자연스러운 인공의 가미’라고 한다. 소쇄원도 물길에 약간의 인공을 가미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남간정사 담밖에 인공으로 조성한 하천도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흘렀던 하천이고 연못 바로 앞쪽에는 폭포가 있었다고 한다.
-> 남간 정사주변으로 흐르는 하천
밖의 담은 자세히 보니 3자(약 90㎝)정도를 더 올려 쌓은 흔적이 보였다. 그렇게 담을 올려 쌓지 않았다면 남간정사에서 내다보는 시야는 확 튀였을 것 같다. 개발로 높은 집들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멀리 계룡산까지 보인다니 진정한 고건축의 보존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5) 기국정
< 기국정 >
기국정 ( 杞菊亭 ) 건물은 효종 5년에 방죽을 쌓고 그 위에 지은 건물로 주변으로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히 피어나다 하여 ‘ 기국정 ’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로된 건물로 연못을 메우면서 192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다 놓았다. 남간 정사의 연못은 저사 뒤편의 샘물이 흘러 남간 정사 대청 아래로 흐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남간 정사와 기국정 사이를 흘러 들어간다. 가장자리로는 바윗돌을 그대로 드러내어놓고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을 만들어 놓았다.
건물을 지은 목수의 솜씨는 남간정사의 목수 솜씨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건물자체의 느낌은 남간정사보다는 섬약하게 느껴진다. 부재를 다루는 솜씨는 훨씬 뛰어난 데 힘은 남간정사에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해라시아의 자료에 의하면 기국정은 우암 선생이 효종5년(1654년) 지금의 대전광역시 소제동(蘇堤洞)에 낙향하여 소제 방죽을 쌓고 그 연못가에 새운 별당이라고 하는데 같은 사람이 주인인 건물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기국정과 남간정사의 건축연대가 약 30년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 세월의 깊이에서 얻어진 우암선생의 연륜이 두 건물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Ⅲ. 결론
남간 정사에 비해 우암 사적 공원은 매우 넓고 컸다. 건축을 알지 못한다면 그 크기에 위해 남간 정사는 그냥 스칠 만한 그런 장소가 되어있었다. 이 곳에 핵심은 남간정사가 아닌가……. 돌아서며 시당국의 지원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계곡물이 대청마루로 흘러 연못으로 흐를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더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건축사상 우리나라 유일의 인공 섬과 인공 호수로 만들어진 곳치고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 곳에 관한 내용을 적은 설명판 같은 것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주변의 산림이 개발과 공원화로 사라져 우암 송시열 선생이 남간 정사를 지으면서 느끼길 원했던 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미래의 건축의 역사를 만들어 갈 사람으로서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이루었던 선조들의 지혜와 재능을 본 받아야 하겠지만 과거의 건축물과 현대의 건축물의 조화 또한 지혜롭고 아름답게 해결해야 할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공자 왈 맹자 왈 글을 읽으며 자연에서 인간의 이치를 배우기를 원했던 조선 선비들이 공부했던 남간정사의 옛 모습을 상상해 봤다. 매미 소리와 물소리와 글 읽는 소리를 상상하니 어느 덧 더위가 조금은 시원함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우암 사적 공원 내부에 있는 연못 >
< 참 고 >
충북 한국문화 유산 답사회 / 돌베개
조선 견문록 이영관 / 청아출판사
http://blog.naver.com/idtoto/19987822
http://blog.naver.com/seongho0805/150007327465
  • 가격2,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09.11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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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6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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