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국사 의천의 도송(渡宋)활동과 불교교류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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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각국사 의천의 도송(渡宋)활동과 불교교류에 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言

Ⅱ. 義天의 불교계 문제인식

Ⅲ. 入宋의 목적과 중국내 활동
1) 입송의 배경과 목적
2) 宋僧과의 交遊와 天台宗

Ⅳ. 천태종의 開創과 諸問題
1) 의천의 천태종 개창 발원 내용과 그 시기
2) 천태종 개창의 思想的 배경
3) 천태종 개창의 政治的 배경

Ⅴ.『新編諸宗敎藏總錄』과 『續藏經』간행

Ⅵ. 結論

본문내용

또한 의천은 유식(唯識) 관계 장소의 교감을 보통 유가종(=법상종) 승려에게 의뢰하였다. 이는 화엄종의 입장에서 유가종을 회유 포섭하여 유가종에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뻗치려는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넷째, 새로 목록화 교감 간행되는 장소들이 송승(宋僧)들에게 보내지는 등의 교장 출판과 관련된 의천의 대송 불교적 문화교류 사업은 송에서의 고려 위신 제고, 고려 송(宋)간의 전반적 문화교류의 촉진 등의 중요한 외교적 역할도 아울러 했을 것이다. 양국 간의 주축을 문화 서적 교류가 이루고, 송에서 당시 구법당(舊法黨)의 대려(對麗) 서적 반출 고려 사신의 왕래 등을 간헐적으로 억제 통제하기도 하는 상황에서는 불교적 교류를 통한 문화교류 위주의 대송(對宋) 관계 개선을 위한 의천의 노력은 특별한 외교적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송(宋) 대외적인 입장에서는 절대적이고 지속적으로 구법당의 배려책(背麗策)을 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의천이 살았던 11세기의 동아시아에서 고려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군사의 중심부였던 북중국과 양자강을 중심한 남중국(南中國)은 송(宋)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그러나 북방은 거란의 군사력에 의하여 유린당한다. 송은 농업과 무역에 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버티면서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저지해주길 기대하는 형편이었다.
Ⅵ. 結論
고려의 왕자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고 47세로 입적할 때까지 그의 일생은 구법(求法)과 전등(傳燈)의 역사였다. 그는 비록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적하였지만 그가 남긴 불교사적 업적은 억겁(億劫)의 시간을 채울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일생을 학문의 연구와 불법의 전파에 매진한 의천은 탁월한 학자였다.
그는 화엄, 법상, 천태, 계율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구했고, 외전(外典)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라불교, 특히 원효불교를 계승하려 했고, 동아시아 불교가 이룩해온 많은 연구 성과에도 주목했다. 그는 외국 고승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고, 특히 수천 권의 장소(章疏)를 열람함으로써 그의 교학 연구에 폭과 깊이를 더했다.
의천은 누구보다 불교 연구의 성과인 장소의 이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국내를 비롯하여 송 요 일본 등지에서 20여년에 걸쳐 고금제종(古今諸宗)의 교장(敎藏)을 수집하고 이를 세밀히 검토 교정하여 간행하고 유포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세계 불교사에서도 선구적인 업적이었다. 또한 의천은 장소의 수집과 교감 등에 화엄종뿐만 아니라 유가종의 승려들까지도 교장의 간행에 참여토록 하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종파에 국한되지 않고 총화불교적(總和佛敎的)인 시각을 통해 당시 불교계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그의 교학은 동아시아 불교가 이룩해온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것이기에 국제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었고, 동시에 원효로 대표되는 신라불교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남다른 이해를 하고 있었다.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천녀 이후를 생각하는 불학승(佛學僧)의 자세,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엄격한 비판과 치밀한 교정, 전통을 위한 지속적인 강학(講學) 등의 진리 탐구 자세는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국제적인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이를 다시 여러 나라에까지 유통시킨 것은 현재까지도 돋보이는 국제학술교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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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9.07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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