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용에 대해여 (A+)
본 자료는 6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해당 자료는 6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6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業)의 11곡에 맞추어 각각 변화가 다양하여 특색 있는 춤을 추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전기에 쓰던 무보는 오음약보로 기보한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보와 병행하여 춤사위의 변화가 있었다.
일무는 세조 때 조선왕조의 역대 군왕(君王)의 위패를 모시는, 즉 종묘제례에 쓰였으나 세종 때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기초를 두고 제작된 춤으로 일무차비는 붉은 옷에 남색 띠를 사용하였다.
2) 문무(文舞) 와 무무(武舞)
문무와 무무는 문제 그대로 문관(文官)의 덕을 찬양한 춤이거나, 또는 무사(武士)의 위용을 보이기 위하여 창 · 칼 등을 도구로 하여 추는 춤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검무 등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원래의 전통적인 뜻과는 달리 궁중치제(宮中致祭)때 하나의 의식무용으로 변화되었다.
문무는 수십 인의 인원이 약( : 피리) 과 적(翟: 꿩깃)을 맞부딪히며 율동적인 음향을 울리면서 춤을 추었으며, 무무는 활 · 창 · 검을 들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음악에 따라 여러 대형을 형성하면서 추는 춤으로 그 형태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두 춤은 어디까지나 제사의 엄격한 절차에 따라 의식적 성격을 띠고 진행된 점을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종묘대제 팔일무(八佾舞) 무무(武舞)
3) 작법(作法)
작법은 불교의식 중의 하나로, 불교에서 명목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린 공양인데 주로 음악과 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범패(梵唄)라 하고 무용을 작법(作法)이라고 하는데, 재(齋)를 올리는 순서는 음악과 무용을 알맞게 섞어서 진행하였다.
작법에는 나비춤
) 나비 모양의 의복을 입고 추며 범패 홑소리에 맞추어 추거나, 혹은 태징에만 맞추어 추기도 하고 악기나 아무 반주 없이 그냥 추는 춤도 있다. 빠른 동작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완만하고 조용한 동작으로 추는 것이 특징이다.
· 바라춤
) 악귀를 물리쳐서 도량을 청정히 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뜻으로 추게 되며, 천수 바라춤 · 명 바라춤 등이 있다.
· 법고춤
) 일정한 장단과 리듬이 없이 범패를 반주로 하여 춤을 춘다. 대부분 법당 안에서 진행된다. 때문에 관중을 의식하지 않으며 부처님 드리는 의식인 신공양(身供養)이기 때문에 조용한 가운데서 진행된다.
등이 있으며, 이들 춤들은 우리 고유의 춤과 대부분 비슷하며 율동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악기는 북 · 징 · 호적 등이 사용된다.
나비춤 법고춤
바라춤
Ⅵ. 신무용
신무용이란 신문물과 함께 외국에서 유입된 서구무용 등을 가리키는 말이나 그 뒤 국내에서 창작된 것까지 포함하여 신무용이라 하였다.
신무용이 처음 우리나라에 선을 보인 것은 1920년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유학생들이 고국을 방문하여 음악과 러시아의 민속 무용을 추어 관심을 끌었는데, 이것이 외국의 민속무용이 소개된 최초이다. 이때부터 러시아의 민속무용인‘코팍댄스’가 유행되어 각종 음악무도회에 등장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체육댄스와 사교춤 등이 전파되어 유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 춤은 바르게 평가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춤이란 기생 · 광대 · 재인만이 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그 뒤 ‘코팍댄스’와 사교춤은 화류계에 침투되어 기생들에게 교습되기 시작했으며, 또 무대에서 출 수 있는 무용으로 레뷰식의 춤을 작품화해서 교습시키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고급요정 · 박람회 · 연예무대, 또는 온습회 등에서도 추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39년대에 가극단(歌劇團), 악극단(樂劇團)이 생기게 한 근원이 되었다. 이 단체는 2차 세계대전 때는 위문공연도 하였으며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 활동하였다.
당시에 활동한 무용가로는 배구자, 최승희, 김민자, 박외선, 박영인, 조택원 등을 들 수 있다.
최승희의 보살춤
Ⅶ.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우리의 전통무용은 다채로운 문화적 무늬를 함의한 채, 연구자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의 문화적 코드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은 연구자의 몫일 것이다. 한국무용 중에서도 특히, 그 주류를 이루는‘궁중무용’의 연구 분야는 그야말로 거대한 문화의 광맥(鑛脈)이기도 하다. 이 광맥은 단지 가치생산의 실효성 문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 분야는 우리 민족예술의 미의식 구명(究明)과 민족문화의 정체성 해명을 위해, 연구역량을 총집(總集)해야 할 분야이다. 이러한 거대한 문화자산의 광맥이 특정 개인이나 몇몇 단체의 힘만으로 개발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무용(舞踊), 음악(音樂), 회화(繪 ), 복식(服飾) · 의상(衣裳), 문학(文學), 연극(演劇) · 연출(演出), 사회(社會) · 문화(文化) 등 제반 관련 학계의 지대한 관심이 모아져야 하고, 그런 관심에 힘입어 앞으로 더욱 입체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연구역량 집중에 무용계 전체가 선도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며, 앞으로 무용계뿐만 아니라 관련학계 전체의 지대한 관심을 따라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올바른 무용 역사관의 인식은 무용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는 춤꾼이나 춤을 만드는 창작인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신들의 춤의 역사에 대하여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춤 역사를 정확이 인식해야하지만 전통의 무용들이 올바르게 계승되어지며 새로운 창작무용들은 발전적인 관계에서 파생되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무용의 역사관을 인식하는 것은 한국무용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매자, 『한국무용사』, 1995, 삼신각.
허영일, 『세계민족무용연구소 학술총서 2, 한국전통무용의 변천과 전승』, 2005, 보고사.
허영일,「한국 궁중무용의 변천과 전승에 관한 문화지형 독법」,『한국전통무용의 변천과 전승』, 2005, 보고사.
김매자, 『한국의 춤』, 2003, 대원사.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 연구』, 2001, 민속원.
송준영 김미숙 전미령 , 『무용의 이해』, 1999, 조선대학교출판부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2000, 일지사.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10.03.03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678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