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첫 수도와 구국운동의 관계(대조영의 영주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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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 본론
1. 동모산과 주변 지역
(1) 성산자산성
(2) 영승유적
(3) 오동성
(4)육정산고분군과 정혜 공주묘
(5) 오동성과 영승유적의 문제
2. 營州道
3. 구국
Ⅲ. 결론

본문내용

상경이나 중경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지대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것은 獨奏州의 존재이다. 독주주라는 것은 중앙에서 직접 관할하는 직할지이다. 발해 때에 설치된 銅山郡은 발해 상경의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동산군은 독주주의 하나인 銅州와 명칭이 유사하다. 이에 발해 구국은 행정구역상으로 독주주였던 동주에 속하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동주는 상경의 남쪽, 중경의 북쪽을 관할하였을 것이고 오늘날로 치면 경박호 이남에서 할바령과 목단령 이북 지역에 걸쳐 있었을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동모산으로 비정되고 있는 성산자산성의 지리적 위치와 그 주변지역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성산자산성이 대석하 건너 북쪽을 방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밝히고 성산자산성이 대석하 건너 북쪽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된 것임을 알아보았다. 이에 목단강을 건너기 전에 있는 오동성보다 그 건너에 있는 영승유적이 입지상을 볼 때 발해 초기의 평지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해의 舊國은 첫 도읍지였던 舊都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산자산성과 영승유적을 포함한 옛 도읍지에 국한된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돈화지역이 과연 어느 행정구역에 속하였는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곳에는 중앙의 직할지였던 獨奏州의 하나가 설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세 개 가운데 銅州가 이에 해당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발해지역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가 직접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고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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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2
  • 저작시기200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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