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심주의 역사, 의미, 유래, 발전배경, 허구의 유럽, 진실의 중국, 세계 3대 발명품, 철과 강철 혁명, 수송 및 에너지 혁명, 세금, 종이, 인쇄, 산업화, 경제의 기원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2.1 ‘유럽중심주의’의 의미
 2.2 유럽중심주의가 발전하게 된 배경
 2.3 허구의 유럽, 진실의 중국
  2.3.1 세계 발전의 원동력, 세계 3대 발명품
  2.3.2 산업혁명의 기원, 11세기의 중국 송나라
   2.3.2.1 철과 강철 혁명
   2.3.2.2 수송 및 에너지 혁명
   2.3.2.3 세금, 종이, 인쇄와 산업화한 경제의 기원
   2.3.2.4 농업 혹은 ‘녹색’혁명
   2.3.2.5 항해혁명
    2.3.2.6 군사혁명
 2.4 중국은 쇠퇴하였는가?

Ⅲ. 결론

본문내용

4세(1638-1715)
가, 동양에서는 새롭게 중국의 패권을 차지한 청의 강희제(1654-1722)가 세계문화의 두 중심축이 되어 상호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게 된다.
이들의 상호 문화 교류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루이 14세에게 헌정되어 1687년 파리에서 간행된 『중국철학자공자』이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성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끌었고 계몽주의 철학의 중요한 관념 성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 전해진 중국인들의 세계관과 도덕관은 특별히 종교적 관용과 보편주의적 경향을 추구하고 있었던 계몽기의 철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 ‘신의 모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계몽철학자들에게 중국 철학의 유기적 형이상학과 도덕적 직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롱고바르디는 중국 철학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여 리치의 적응주의를 비판하였다. 이는 타당성이 있는 반론이다. 중국철학에서 형이상학이란 형(形) 그 자체 내에서 도(道)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편집자 쿠플레는 중국철학사 안에서 이기론의 논쟁이 초자연적인 기원을 배제하는 무신론의 경향을 낳게 되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중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예수회 선교사 르 콩트와 르 고비앵의 적응주의를 옹호한 대중적 저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대와는 달리 말르브랑슈는 롱고바르디의 유물론적인 이기론으로부터 관념론적인 실체관의 가능성을 보았고, 라이프니츠는 이기론으로부터 단자론과의 유사성을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이 연구는 내재적인 자연신학적 신관념으로부터 비롯된 계몽적 실체관을 중국의 실체관이라 할 수 있는 이기론에 적용시킨 형이상학적 비교연구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체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게 되지만 종교적 신관으로부터 철학적 신관으로 담론이 심화되면서 보편적 가치와 역사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회 적응주의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야기한 전례논쟁은 보편 형이상학을 통하여 새로운 적응주의 모색의 계기를 주었으며, 보편철학의 가능성을 통하여 볼프, 볼테르, 케네와 같은 계몽철학자들로부터 중국인의 고유한 도덕적 가치와 세계관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2.4 중국은 쇠퇴하였는가?
1800년대 이 전 찬란한 문명이 존재 했던 중국은 ‘미숙한 성장’이라고 유럽 중심적 학자들은 주장하였다. 유럽 중심적 학자들은 ‘중국 규정’에 포함된 두가지 사항을 근거로 15세기 이후 중국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다.
첫째, 송대의 뚜렷한 성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이후 즉시 중단되었기 때문에 ‘미숙한 성장’
둘째, 1434년 명나라 황제가 공포한 외국 무역 금지령으로 중국이 세계를 재형성할 기회의 창을 갑작스럽게 닫아걸었음을 입증한다.
그들은 중국의 국제무역이 세계 경제에서 완전히 분리된 후진적인 조공체계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쇄국정책 이후 동양에 생긴 힘의 진공 상태를 1500년대 우수한 유럽인이 적극적으로 채웠다. 데이비스 란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 대항해 계획의 포기는 더 큰 쇄국정책, 즉 바다의 위험과 유혹에서 후퇴한 것과 같았다. 이 고의적인 내향성, 즉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더 나쁜 시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상승하는 유럽의 힘에 직면한 그들을 무력화했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유럽의 여행자들이 가지고 올 교훈과 진기한 물건들에 대해 저항하고, 무관심하고, 완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유럽을 제외하고도 이미 이슬람이나 조선, 몽골 등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쇄국정책 이후 유럽이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사항 대부분들이 이미 중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그저 중국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국의 산업화가 오로지 중국적 기초를 바탕으로 이룩되었다는 점이 아니다. 다만 영국의 산업화는 분명 700년에서 2300년이나 앞선 중국의 많은 발명품들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타아(他我)가 생성한’ 변화 과정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이 그런 것들을 매우 뒤늦게 수용하였지만 중국의 앞선 발명들을 격하시키는 것을 올바르지 않다. 중국의 발명품들이 없었다면 영국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3. 결론
중국의 찬란한 발전과 장기간 세계의 중심부에 있었다는 점이 유럽에 있어서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했을지도 모른다. 600년 앞서서 이룩한 중국의 문화, 경제적 발전은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깎아 내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가 결합되어 존재한다. 영국의 그렇게 갑작스레 발전을 했다면 더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은폐하는 것은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당당히 들어내고 떳떳해야 만 그들이 이룩한 것 역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상 우리는 유럽에서 들어온 학문들 위주로 배우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유럽적 사고 방식에 물들고 있어서 당연히 유럽이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수업을 계기로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시점과는 반대의 시점으로 유럽을 살펴보았다. 동양과 서양은 분리되어 발전되지 않고, 서로 교류를 통한 복합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로써 ‘현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관점으로써 문화적인 현상을 볼 수 있는 생각을 이번 수업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서양에 치중되어 있는 학문적 연구에서 벗어나 이제는 동양의 연구 또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점차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동양 중심적 학문이 서구 중심적인 것들을 앞서 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학문 연구에 힘써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http://blog.naver.com/jdyi8589
√서구중심주의의 이해 ; 강정인 ; 서강대학교 ; 한국국제정치학회 ; 국제정치 논총 ; 제 43집; 3호 ; 2003.9 ; page(s) : 29-51
√『중국철학자공자』와 계몽철학 ; 이향만 ; 신학과 철학 ;제 17호 ; 2010 ; page(s):1~46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 존 M. 홉킨스 : 2005 ; 에코리브르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7.12
  • 저작시기2012.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527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