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 있는 것이다.
감정이 살아 있어 세상일에 무디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감내하는 것이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아픔이 자랑이 되지
않지만 슬픔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좋지 않은 세상에서 타인의 슬픔을 생각해내는
것은 아득하지만 뿌듯한 일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감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유달리 시인의 표현에서는 아프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나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달리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이만큼 시인의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회복능력도 소유하고 있다고 추측해본다.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 있는 것이다.
감정이 살아 있어 세상일에 무디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감내하는 것이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아픔이 자랑이 되지
않지만 슬픔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좋지 않은 세상에서 타인의 슬픔을 생각해내는
것은 아득하지만 뿌듯한 일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감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유달리 시인의 표현에서는 아프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나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달리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이만큼 시인의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회복능력도 소유하고 있다고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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