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시설의 변천사] 사회복지사업의 역사 사회복지시설사업의 발달과정(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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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복지시설의 변천사] 사회복지사업의 역사 사회복지시설사업의 발달과정(발전과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사회복지시설의 변천사

I. 사회복지시설의 전사

II. 사회복지시설사업의 기원

III. 교회 구빈원의 등장

IV. 공공 구빈원의 설립

V. 르네상스와 시설의 신전개
1. 교회의 손을 떠난 시설들
2. 빈민법 시대의 시설
3. Gilbert's Act : 1782

VI. 시설 전문화의 시도
1. 한센병 환자 복지 및 정신질환자 복지
2. 청각, 언어장애인 복지
3. 시각장애인 복지
4. 아동복지
5. 지적장애인 복지
6. 교정복지
7. 저소득자 복지

VII. 한국의 시설발달사
1. 아동복지시설
2. 노인복지
3. 의료보호시설

* 참고문헌

본문내용

랑스의 세강의 생리학 사회학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교육방법, 독일의 세게르트의 생리학적 방법, 스위스의 의사 구거뷜(J. J. Gugebuhl, 1816-1863)의 위생학, 정신의학적 치료를 가미한 아벤트베르그(Abendberg) 등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방법이 확립되었고, 그 외 여러 나라에서도 이러한 시설이 늘어갔다.
또 프랑스 심리학자 비네(Alfred Binet, 1857-1911)와 시몬(Theodore Simon, 1873-1961)에 의한 지능검사법의 창안(1905)으로부터 지능정도의 지수(intelligence Quotient, I. Q.)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이러한 시설들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6) 교정복지
수인보호도 이 시기부터 행해졌는데 하워드(John Howard, 1726~1790)는 리스본에 정박 중인 프랑스 선박에서 노역을 하는 죄수들의 참혹한 모습을 체험하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형무소 실태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남여혼숙, 비위생적인 환경, 전염병환자들을 어린 아이들과 함께 수용하는 것을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힘써 형무소개조법 제정(1774)을 가져왔다.
또 근대에 와서는 프리드너(Theodor Fliedner, 1800-1864)가 뒤셀도르프(Dusseldorf) 형무소에서 전도를 했고, 복역을 마치고 퇴소하는 여성들이 집이 없을 때는 프리드너를 찾아와서 하룻밤씩 신세를 지고 갔다. 프리(Elizabeth Fry, 1780-1845)도 마찬가지로 여성 죄수들의 참상을 보고 이의 개선을 주장하여, 명치시대 일본 행형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7) 저소득자 복지
그 외 저소득자를 위한 보호시설로 발전한 전당포는 프랑스의 성직자 바르나바(Barnaba)가 이탈리아의 페루지아(Perugia)에 설립(1462)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유럽 각지에 확산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부에 대해서 재물은 하느님으로부터 공짜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되는 것으로 가르쳤다. 비록 개인의 재산이라도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금전대차에서 고리는 죄악시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금전대차 행위는 금지되었고 결과적으로 유대인과 이교도의 손에 그 업무가 귀속되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서 생긴 피해 때문에 13-15세기에는 유대인추방운동이 일어나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이탈리아인들이 이를 대행했다. 그랬더니 실제로는 6개월 만에 원금에 상당하는 이자를 부담하는 일이 생겼다. 여기에서 서민보호를 위한 공익전당포의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공익전당포의 경영 원칙은 펠트르에 의해 다음과 같이 정해졌는데 그 기본적인 것은 현재의 것과 비슷하다.
- 담보물은 대부금보다 크게 높지 않을 것 .
- 기한이 지나도 청구하지 않는 전당품은 매각처분하고, 잔금을 반환할 것
- 관리비용에 충당할 정도의 낮은 이자를 징수할 것
전당포는 서민보호를 목적으로 했고, 대출기금도 기부 및 증여금 등으로 충당하여 처음에는 무이자로 출발했지만 점차 자금은 바닥이 나서 맡긴 물건을 팔아 원금을 회수(대상금 징수)했다. 그래서 로마의 제후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바뀌어 원래의 성격이 사라져 갔다.
VII. 한국의 시설발달사
1) 아동복지시설
천주교는 1854년경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위탁보호를 시행하였다. 그러다가 서울 곤당골에 기와집 한 채를 사서 영해원을 설립하여 보모를 두고 고아들을 보육하였다. 그 후 1885년 3월 15일 곤당골에 '천주교 고아원'을 개설하였다.
이때, 종로 똥골에 고아원 부설로 양로원을 함께 개설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고아원과 양로원이었고 고아원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1888년 9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아동복지사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진출하여 1888년 9월 8일, '천주교고아원'을 인수하였다. 1915년에는 고아원 운영비의 조달을 위해 한국 최초의 자선바자(Bazzar)를 열었다.
1910년 조선 충독부가 제생원을 세웠고, 1929년 조선사회사업가협회가 창설되었다. 1944년에는 "조선충독부 구호령"이 반포되어 생활이 빈곤한 임산부와 13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재가구호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로 위탁구호 또는 시설수용 등의 조치가 시행되었다.
2) 노인복지
1885년 천주교 고아원 부설로 당시 종로 똥골(동곡-현 관철동)에 양로원을 함께 개설했다.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수용인원은 40명이었다고 한다. 이 양로원은 그 후 종현(현 명동)으로 옮겼다가 1894년 한때 폐지되기도 했다가 그 후 1924년에 복원되었다. 1929년에는 조선귀족보호시설로 재단법인 창복회가 창설되었다. 1933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사회사업개요”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양로원 수는 9개였고 수용인원은 58명이었다.
3) 의료보호시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의료보호시설로는 1885년 성영회부설 자혜원이었다. 그 후 1876년 부산에 제생의원 이 개설되었고, 1880년 원산에 생생병원, 서울에 일본관의원, 인천에 일본병원 등이 개설되었다. 이러한 병원들은 1876딘 일본이 우리나라와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 일본 해군이 재한 일본거류민들을 위해 세웠다.
1885년 4월 10일 광혜원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가 설립한 최초의 근대적 서양 의료기관이었다. 1898년에는 서울에 천주교 진료소가 설립되었고, 1900년 제물포에 천주교 진료소가 설립되었다. 1915년 10월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는 대구에 진출하면서 대구에 최초로 시약소를 설립하였다. 그 후 1934년 대구 남산동에 '천주교시료소'를 열었는데 이것이 후에 '천주교진료소'로 바뀌었다.
* 참고문헌
한국 사회복지실천과 복지경영 : 최성균/이준우 저, 파란마음, 2017
사회복지서비스 : 한국산업인력공단, 진한엠앤비, 2015
지역사회복지와 사회복지시설 : 이병록 저, 청목출판사, 2007
사회복지실천론 : 이영분/김기환 등 저, 동인, 2010
현대 복지국가의 사회복지교육 : 현외성 저, 공동체, 2014
사회복지 행정실무 : 이세형 저, 양성원, 2017
사회복지의 이해 : 윤찬영 저, 정민사, 2017
사회복지 사례관리 : 이채석 저, 어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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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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