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와 다스림의 원리를 알았던 수로왕 (가락국기와 함께 살펴 본 구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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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치와 다스림의 원리를 알았던 수로왕 (가락국기와 함께 살펴 본 구지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본문

◆ 내용요약

◆ 주제

◆ 기존연구

◆ 감상평

본문내용

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성군(聖君)에 가까웠던 그의 모습을 그리고 추모하며 가야국에서는 그가 묻힌 구지봉에 매년 정월(正月) 3일과 7일, 5월 5일과 8월 5일과 15일에 푸짐하고 깨끗한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냈고 제사를 충실히 하는 후왕은 효성스럽고 갸륵하여 풍요로운 것으로, 제사에 소홀히 하는 후왕은 상서롭지 않은 나쁜 일들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그로써 수로왕은 죽은 다음에는 가야국 왕족과 백성들에게 신앙과 같은 존재로 남았다. 또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놀이가 있었는데
『 매년 7월 29일엔 이 지방 사람들과 서리(胥吏)·군졸(軍卒)들이 승점(乘岾)에 올라가서 장막을 치고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논다. 이들이 동서쪽으로 서로 눈짓을 하면 건장한 인부들은 좌우로 나뉘어서 망산도(望山島)에서 말발굽을 급히 육지를 향해 달리고 뱃머리를 둥둥 띄워 물 위로 서로 밀면서 북쪽 고포(古浦)를 향해서 다투어 달리니, 이것은 대개 옛날에 유천간(留天干)과 신귀간(神鬼干) 등이 왕후가 오는 것을 바라보고 급히 수로왕에게 아뢰던 옛 자취이다. 』
즉, 오랜 시간동안 배경설화와 함께 있는 ‘구지가’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수로왕을 위한 제의와 백성들의 놀이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왕과 백성을 감화시킬 수 있을 만큼 모범적이고 유능했던 것이 또 그의 성품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고귀한 혈통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엄숙하지 않아도 위엄이 서고, 정치가 엄하지 않아도 다스릴 수 있었던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며, 아마도 후대의 왕들은 자신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전해지기를 또 백성들은 그만한 성군이 또 나라를 태평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하며 ‘구지가’를 불렀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가야의 백성들이 그랬듯 지금도 단군신화를 믿으며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고, 개천절이 있고 단군왕검을 배우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와 같은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길, 그래서 삶이 더 풍요로워 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참고문헌
고운기역, 『삼국유사』, 서울; 홍익출판사, 1998.
김원중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
김영봉, 『가락국기의 분석과 구지가의 해석』, 연민학지, 1997.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4판), 지식산업사, 2005.
  • 가격1,2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8.11.27
  • 저작시기201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7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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