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간 종교의 메시아론 ; 증산(甑山) 강일순 [한국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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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민간 종교의 메시아론 ; 증산(甑山) 강일순 [한국종교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증산의 창교 배경

3. 증산의 우주관과 신관

4. 증산의 인간관

5. 증산과 동학

6. 나가며

본문내용

5.
그렇다면 증산과 수운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증산이 자신을 동학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한 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데, 대순전경에서는 “동학신자 간에 대선생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 내가 곧 대선생이로다.” 『대순전경』 3, 22.
고 하면서 굳이 기독교적인 표현을 쓰자면 수운은 세례요한이 되는 것이고 증산이 예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증산은 수운을 비판하는 데 그 이유는
천하를 대순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야 삼십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려 왔노라 『대순전경』 5, 12.
이와 같이 수운은 증산의 대리자로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고한 농민들만 이유 없이 살상되었다는 이유로 동학혁명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증산은 동학을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양반과 상민의 계급타파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에서 전봉준을 높이 평가하고 동학의 시천주도 증산에 의해 그 효험이 강한 것으로 인정받아 천지공사를 할 때나 다른 경우에 증산의 여러 제자들에 의해 즐겨 암송되었다. 그 외에도 증산이 동학에서 받아들인 교리들로는 남녀평등, 반상차별혁파, 혹은 후천용화세계의 도래 등을 들 수 있다. 증산이 동학을 평가하면서 가늠좌로 삼았던 것은 ‘해원사상’이다. 해원사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발전시켜 나갔다. 최준식, “증산이 보는 전통종교”, 「현상과 인식」 44호 (1988, 11), 87-8.
증산과 동학은 모두 민중계층을 기반으로 한 혁명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종교세계를 구축해갔다. 동학이 이데올로기적인 패러다임을 구축해서 동학혁명이나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3.1운동 같은 정치적 혁명을 일으켰다면 증산은 민중의 정서적 반응에 더 신경을 썼고 임박한 재림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훨씬 더 종교적 반응을 보였다.
6. 나가며
사실 증산의 신관과 인간관은 서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종교와 달리 오히려 인간관이 신관을 앞서기까지 한다. 동학과 증산교의 시작은 우리나라 조선말과 근대화 초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눌려 있던 민중들과 여성의 해방을 선포함과 아울러 멀리만 있던 ‘신’의 존재 개념을 바로 우리 눈앞에 까지 이끌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가히 한국의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중심, 인간존중, 만민평등의 운동을 펼쳐갔던 증산의 사상은 지금도 한국 민중의 근간에 흘러가고 있고 여전히 종교적 존재로서 많은 이들에게 숭앙받고 있다.
동학을 일으킨 수운도 그랬지만 증산은 종교를 습합하는 데 있어서 가히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한다. 바로 비빔밥적인 종교관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증산 강일순이다. 증산의 사후에도 여전히 제자들은 증산의 사상을 중심으로 여러 교단들을 만들어 내었고 특별히 차천자라 불렸던 차경석은 일제하에서 증산교단의 큰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600만의 신도들을 모았다고 한다. 그 당시 인구가 2천만도 안 되었기에 조금 어불성설이기는 해도 그들의 교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는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증산교의 가장 큰 교단을 이루고 있는 대순진리회는 1984년 학교법인 대진학원을 설립하고 5개의 고등학교와 종합대학인 대진대학교를 설립하였고 의료사업 또한 활발히 벌여 분당과 동두천, 그리고 고성에 제생병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상생복지회라는 복지법인을 세우고 여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다가 상생복지회는 해외 영농개척사업에까지 발을 넓혀 러시아와 연해주에 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학술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서 증산사상연구회에서 발행하는 『증산사상연구』지는 1974년 3월에 발행된 이래로 지금까지 해마다 발간되고 있고 최근 22집을 끝으로 그 활동이 일시 중단된 상태이다. 황선명, “광복후 민종족교 교단의 재건과 통일운동”, 『韓國民族宗敎運動史』, 335-373.
이처럼 계속해서 활발히 활동하며 진행되고 있는 동학과 증산, 그리고 소태산을 통해 시작된 원불교 등의 한국 신흥 종교 사상을 연구함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결에 깊이 묻혀가는 기독교를 다시 한 번 꺼내어 올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관과 인간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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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 『대순철학』, 전북 김제: 증산교 교화부, 1984.
최순식, 『백제유민의 저항운동과 미륵신앙의 변천과정』, 김제: 모악향토문화연구회, 1992.
홍범초, 『증산교개설』, 서울: 창문각, 1982.
소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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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명, “증산의 평등사상” 『증산사상연구』 제4집, 1978.
배영기,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대비론”, 『단군학연구』제6호 (2002, 6).
오문환, “강증산의 ‘해원상생’의 의의와 한계”, 『정치사상연구』 4집 (2001년 봄).
이항녕, “동학사상과 증산사상”, 『증산사상연구』제1집, 1975.
정연선, “증산의 인존사상과 민주주의”, 『증산사상연구』제19집, 1993.
차옥승, “신종교에서 살펴본 여성해방성: 천도교,증산교,원불교”, 『아시아여성연구』제 41호 (2002, 12).
최준식, “증산이 보는 전통종교”, 「현상과 인식」 44호 (1988, 11).
황선명, “광복후 민종족교 교단의 재건과 통일운동”, 『韓國民族宗敎運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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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1.11
  • 저작시기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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