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 주요 저작] -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평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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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연구 주요 저작] -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평 (3-4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확고히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때부터 어떻게 보면 가장 공산주의적이었던 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이 미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숙청당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중요한 부분은 전후 사회주의개조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전쟁 이후 북한이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국가로 변모했는지에 관해 자세한 통계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의 권력은 강화되었지만 당내 다원성은 유지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정책 결정에 있어 김일성의 의사가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소련도 정책적으로 간섭하는 등 양곡수매사업, 농업집단화 정책, 공업복구건설의 방향 등과 관련한 정책 결정에는 당 지도부의 갈등이 따랐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김일성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당내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 체제 운용상 자기수정은 내부 비판이나 견제를 통해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양곡수매사업을 둘러싼 갈등과 노동관계의 평시체제로의 이행을 주장한 서휘의 주장을 설명한 부분은 노선간의 갈등이 정치계파간의 갈등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에 진행한 중앙당 집중지도 사업이 사회주의개조 작업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음을 강조하여 사회주의 개조가 위로부터의 강행으로 완수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전시기에 농촌 말단까지 당과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게 되었고 이 조직력을 움직여 농업집단화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저자는 전후 경제 성장이 “노동자 및 주민의 저소득 수준, 농산물의 저가격 유지에 기초를 둔 고도의 강행적 축적체제”로 단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농업협동화 등 사회주의개조 작업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민의 자발성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소련과 비교해보면 그 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소련처럼 대량의 주민숙청 같은 대규모 희생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6.25 전쟁 기간 피점령과 수복을 통해 이미 혁명과 반혁명의 투쟁을 거쳤고 전쟁을 통해 사회가 크게 동질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쟁 직후의 남북대립이라는 상황도 주민의 반발을 억누르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1957년 집단화 마지막 단계에서 황해도, 개성 등 ‘신해방지구’에서 발생한 집단화 이탈 움직임은 초강경수단을 동원하여 수습할 수 있었다.
3. 강독 내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및 의문점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 \'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북조선 군대가 정규전형, 인민전쟁형, 유격전형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져 있었고 전쟁 과정을 통해 통합되었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특히 전쟁발발 전후 군내 정치조직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시기 인민군 내에 당단체가 조직되어 인민군이 정식으로 당의 군대가 되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김일성은 군사유일관리제를 강조함으로써 군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한편 전후 인민군 내에서는 만주파의 헤게모니 하에 세력관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중국군의 주둔과 소련의 군사원조에 의해 군사비는 낮은 수준으로 억제되고 경제부흥에 총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정전 후 중국과 북조선에서는 동시에 전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진행되고 있었다. 휴전선에서 미군 및 한국군과 대치하면서 중국군과 인민군은 동시 진행 중인 ‘사회주의 혁명’을 휴전선에서 제국주의의 방해로부터 공동으로 수호하고 있었다. 중국군이 철수한 것은 북조선에서 농업집단화를 비롯하여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한 시점이었다. 저자는 6.25 전쟁이 중국혁명의 계속이자 미중 대결과 중국혁명의 결말을 내는 결전이라는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면 전후 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조중간의 긴밀한 관계도 그 연장선상에 보고 있다고 보았다. 한편 8월 종파사건의 영향이 가장 큰 곳도 군대였다. 인민군 내에서는 연안계와 소련계의 숙청이 훨씬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중국군 철퇴에 따른 조중연합사령부 체제의 종언은 인민군 내 군당제도의 변화를 가져왔고 인민군은 명실공히 항일빨치산의 전통을 계승하는 무장력이 되어간 것이다.
책에서 상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 중에 궁금했던 것은 이 시기 공업 부문에서 실질적인 전후 경제복구 건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당시 중공업 우선 정책이 시행된 것과 제도적으로 어떻게 공업이 관리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아 이 부분을 더 알고싶다는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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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3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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