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Ⅳ. 나가며
오키나와 교회의 고백은 세계2차대전 시기에 교회가 스스로 그 기능을 포기하였던 것이었다. 교회사를 써서 남긴 기록도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전의 기록은 ‘고백’이었다. 전쟁이전과 이후를 연결시킨 수 있었던 것도 ‘고백’이었다. 고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히가 말한 교파적 정통이나 지역적 성격이 각각 다른 방법으로 교회의 발걸음을 한정시킨다는 말은 오키나와에 있는 교회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전쟁전과 전쟁후라고 시대를 구별하는 방법도 그 상황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도 일면적이라고 볼 수 있고, 교회의 발걸음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의 발걸음의 요인을 파악하려고 할 때 내재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되는 것이다.
Ⅴ. 참고문헌
土肥昭夫. 『日本プロテスタントキリスト史論』. 東京: 文館, 1987.
土肥昭夫, 『昨日今日明日-京北創立七十五周年を記念して』東京: 日本キリスト京北. 1984.
土肥昭夫, 『京のあるのみ-京南京北史』東京: 日本キリスト京北. 1984.
原誠,『家を越えられなかった-15年下の日本プロテスタント』東京:日本基督出版局, 2005.
하라 마코토 서정민 『역국가를 넘어서지 못한 일본 프로테스탄트 교회』서울: 한들출판사|. 2009.
名嘉隆一『27度線の南から-沖キリスト者の言』 東京: 日本基督出版社,1971.
沖きりすと協議『沖キリスト史料』東京: いのちのことば社, 1972.
石川政秀『沖キリスト史-排除と受容の史』東京:いのちのことば社,1994.
沖バプテスト連盟史編纂委員『宣のみ-沖バプテスト八年史』1973.
服部次『沖キリスト史話』東京:キリスト新聞社, 1968.
오키나와 교회의 고백은 세계2차대전 시기에 교회가 스스로 그 기능을 포기하였던 것이었다. 교회사를 써서 남긴 기록도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전의 기록은 ‘고백’이었다. 전쟁이전과 이후를 연결시킨 수 있었던 것도 ‘고백’이었다. 고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히가 말한 교파적 정통이나 지역적 성격이 각각 다른 방법으로 교회의 발걸음을 한정시킨다는 말은 오키나와에 있는 교회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전쟁전과 전쟁후라고 시대를 구별하는 방법도 그 상황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도 일면적이라고 볼 수 있고, 교회의 발걸음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의 발걸음의 요인을 파악하려고 할 때 내재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되는 것이다.
Ⅴ. 참고문헌
土肥昭夫. 『日本プロテスタントキリスト史論』. 東京: 文館, 1987.
土肥昭夫, 『昨日今日明日-京北創立七十五周年を記念して』東京: 日本キリスト京北. 1984.
土肥昭夫, 『京のあるのみ-京南京北史』東京: 日本キリスト京北. 1984.
原誠,『家を越えられなかった-15年下の日本プロテスタント』東京:日本基督出版局, 2005.
하라 마코토 서정민 『역국가를 넘어서지 못한 일본 프로테스탄트 교회』서울: 한들출판사|. 2009.
名嘉隆一『27度線の南から-沖キリスト者の言』 東京: 日本基督出版社,1971.
沖きりすと協議『沖キリスト史料』東京: いのちのことば社, 1972.
石川政秀『沖キリスト史-排除と受容の史』東京:いのちのことば社,1994.
沖バプテスト連盟史編纂委員『宣のみ-沖バプテスト八年史』1973.
服部次『沖キリスト史話』東京:キリスト新聞社,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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