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와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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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길선주와 신비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의 각성은 재림 주로서 심판 주로서 주님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부흥운동의 형태를 띠게 된다. 길선주의 말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통을 당한 시기였다. 우선 가정적으로는 자식들로 인한 고통, 자신의 옥중 생활 등은 길선주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1920년 10월 무죄로 석방되기까지 2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계시록을 1만 번 읽었다. 감옥의 체험은 자기반성으로 시작되었다. 성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교체험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종교체험이 1920년대 말~30년대 초의 사회변화 현상 속에서 말세신앙 내지는 재림신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길선주는 옥중에서 「묵시록 강의」를 재정리하였고, 「말세학 강의」를 체계화하였다. 이것은 그가 출감 후에 순회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설교 주제였고, 그의 말년에 부흥운동은 이 책을 근본으로 하여서 말세운동이 본격화 되어간다. 출옥 후에 그는 장대현 교회 하나에만 전념하지 않고 전국적인 부흥강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길선주가 급격하게 ‘말세’를 강조하게 된 것은 1931년부터였다. 그 해에 만보산 사건이 터지고 이어서 ‘만주 사변’이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만보산 사건 여파로 한국인들이 중국인 화교들을 습격하고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그는 “예루살렘 멸망!”을 외쳤고, 자기 고향 평양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그의 설교를 듣고 황급하게 짐을 싸서 평양 외각으로 이사하는 교인들도 속출하게 되었다. 이상호, 「초기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특성연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1) ,40-41
Ⅴ. 나가는 말
길선주는 현실 속에서 무병장수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는 선도에 몸담았던 그가 기독교를 만나게 되었고 기도를 통해 인격적 하나님을 체험하기에 이르러 개종하였다. 그러나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아들이 죽고 그 자신도 3.1 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면서 민족의 현실을 심각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옥중체험은 인간의 현실 개조 능력의 한계를 깨우쳐 주었다. 현실개조는 \'위로부터\'오는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에다 1920-30년대의 정치, 사회적 불안 상황,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던 불리한 목회상황이 겹치면서 그의 말세신앙이 형성되었다. 이덕주『초기한국기독교사 연구』, (한국기독교 역사 연구소) ,516
인효론적 요소와 비역사성의 요소의 관점에서 길선주의 신비주의의 경향은 앞서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적 변화의 흐름 및 사회적, 개인적 경험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초기에 길선주는 교회의 조직을 확립하고, 교육사업, 선교사업, 전도 사업, 3.1 운동 참여 등 역사적인 면모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1920-30년대에 들어와서 그는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통해, 말세신앙을 구체적으로 확립하며, 내세적이거나 비역사적인 경향을 강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그리고 신비주의의 또 다른 요소인 인효론적 요소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길선주의 신비주의적 경향성은 후반으로 갈수록, 그가 구체적으로 말세학을 확립함으로써 더 짙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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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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