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저항 시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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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용한 저항 시인 윤동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윤동주의 생애
Ⅲ. 윤동주의 작품
Ⅳ. 윤동주 문학관
Ⅴ. 윤동주 생가와 시비
Ⅵ. 결론

본문내용

는 밤>을 쓰고 난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 기념으로 출판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하고 그 가운데서 한 부를 정병욱씨에게 건네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었다.
처음엔 시집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 했던 모양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이 온통 환자 투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가야 병을 고친다. 병원은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있는 곳이다. 그래서 \'병원\'을 선택하려 했었다는 그의 설명은 꽤 명분과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처음에 이양하 선생은 출판을 만류했었다.
작품 가운데 <십자가><슬픈 족속><또 다른 고향> 등이 일제 관헌의 검열에 걸릴 것을 염려했을 뿐 아니라 동주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것을 미리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극한 사제간의 정리(情理)와 사랑이 빚은 충고였다. 동주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실망의 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에게도 세상을 내다보는 눈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위안을 자신의 안에서 찾았다. <간>도 그 무렵에 쓴 작품이었다.
시인의 치열한 정신의 내공은 언어 이전의 분노와 달관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참회록>을 쓴 것이 1942년 1월 24일자. 어쩌면 이 작품이 그가 도일하기 전, 고국에서 마지막 쓴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 뒤 모든 사태는 뒤바뀌고 사물의 원형은 산산조각이 났다.
동주가 맡긴 시고 가운데서 정병욱씨에게 건넨 작품만이 살아남아 1948년 정음사에서 펴내게 되었던 것이다.
정병욱씨는 동주가 검거된 지 반 년 후에 학병으로 끌려 나갔다. 그는 동주의 시고를 그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동주가 살아 올 때까지 소중히 지켜 주기를 당부했었다.
만약에 동주나 자기가 죽어서 돌아올 수 없게 되거나 조국이 광복을 맞이했을 때는 그 시고를 연희전문학교에 보내서 세상에 알리도록 해 달라고 유언을 남기듯 하며 떠났던 것이었다. 해방이 되고 다행히 그는 살아서 무사히 귀가하였다. 그때 어미니는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한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럽게 내놓으셨다.
이것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밝은 햇빛을 보게 되기까지의 경위이다.
동주의 시들이 일본에서 정병욱 등 친구와 가족에게 발송되고 또 아슬아슬하게 보관되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방 후 <플라워> 다방(?)에서 윤동주의 추도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정병욱은 그의 필적을 고스란히 복사하여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고 김삼불은 윤동주의 시를 세밀히 분석 비판했다. 심지어 품사별로 풍계를 내고 김소월 시보다 한결 우수하다는 쪽으로 이론을 폈다. 이때 당시 경향신문 편집국장이었던 시인 정지용이 각도를 달리한 비평을 해서 이채를 띄었다. 즉 민족의 얼을 시에 담고 순교로 겨레 앞에 쓰러진 시인의 아름답고 귀한 시를 자로 재고 칼로 썰고 잘라내어 이리저리 까발리고 난도질하는 것은 더 가혹한 일이 아니냐고 반론을 펴면서 그 나름의 총괄적인 찬사를 보냈었다.
윤동주의 시를 \'민족시의 별\'로 인식시키고 암흑기를 저항시로 승화시킨 데 있어서 정지용의 후견이 크게 이바지했음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윤동주는 명동촌이 낳은, 우리 한국인의 마음에 빛을 보내는, 꺼지지 않는 별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어둠을 거부하면서 설정된 어둠의 상황 속에서 살았다.
<별 헤는 밤>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來日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小學校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패, 鏡경, 玉옥 이런 異國少女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 11. 5.
※ 위의 별헤는 밤이라는 시는 윤동주의 깊은 어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길어서 다 외울 수는 없으나 여자친구와 같이 조금씩 읊조리던 때가 기억납니다.
< 서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 위의 서시는 제가 대학교때 야학 봉사를 하면서, 항상 외우고 다녔습니다.
야학이라는 어려운 상활에서도 이 시를 읊으면 마음에 위로가 되고 힘이 나곤 했었으니까요...
Ⅳ. 윤동주 문학관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입니다.
직접 가 보진 않았지만 사신 캡쳐해서 올려봅니다.
초등학교 때 윤동주 시인이 앉았던 의자입니다.
Ⅴ. 윤동주 생가와 시비
중국 길림성 용정시 지신향의 생가이다.
옛 대정중학교인 윤동주 시비가 있는 용정중학교이다.
Ⅵ. 결론
그 동안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단 몇 개의 시로 인해 가졌단 뿌연 환상을 버리고, 좀더 명확히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정말 깔끔한 이미지의 윤동주 시인은 강직한 선비의 느낌으로 다가 온다.
강직하지만 조용한 저항가 윤동주.
오늘 난 그의 삶에 조용히 머리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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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4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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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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