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건축론 - 울산 병영성의 원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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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건축론 - 울산 병영성의 원형을 찾아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병영성의 개요
2. 병영성의 연혁
3. 병영성의 위치와 환경
4. 병영성 탐방
5. 결론

본문내용

주민들의 관심과 보호없이 경작을 위해 병영성이 훼손되고 있다.
병영성의 치의 흔적, 치는 전투시 성벽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유리하게 하기 위해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놓은 구조물이다.
병영성 동문으로 올라오는 길, 현재 산전샘 뒤쪽길과 연결된다. 옛날에는 이 길을 통해서 진장으로 갔다. 즉 진장은 조선시대 병영성의 군사들이 진을 치는 곳이였는데 일제때 그런 역사적 의미를 없애버린것이다. 이런 예는 방어진에서도 나타난다. 아마 전국적으로 군사적이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지명을 평의한 이름으로 음은 살리고 한자를 바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생가, 초가집을 복원했는데 기둥이나 기단석이 초가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울산은 벼짚보다 갈대를 지붕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갈대지붕의 원형을 재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 동쪽 → 남쪽
도시정비를 하면서 새 길을 내고 있다. 과거 병영성 안에 있던 길을 무시하고 정방형으로 길을 닦는 중이다. 조금만 신경쓰면 병영성의 옛 길을 살리면서 새롭게 길을 만들수 있는데 역사적 고려없이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안타깝게 여겨진다.
옛날 병영성 안에 있었던 물길을 따라서 복개된 길, 이 물길은 현재 병영 1동 동사무소를 지나서 흘러간다. 현재의 병영 1동 사무소는 조선시대 저수지였다. 근대이후도시의 경우 저수지에 공공시설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이는 도시화 되면서 농사를 짓지않고 그로인해 저수지의 용도가 줄어들고,비교적 싼 가격에 공공용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병사 이원희의 거은비이다. 선정비와 같은 것인데 지역에서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이 고마워서 세워 주는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탈을 막기위한 백성들의 자구책일수도 있고 관리가 자신을 뽑내기 위해 세우는 것일수도 있다. 좌병사 이원희의 경우 철종 13년(1862년)환곡문제로울산주민들이 봉기를 일어키게한 장본인이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병영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처럼 활성화 되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진 않았으나 과거와 현재를 확실히 보존한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 남쪽 → 서쪽
남문에서 서쪽 성벽이 시작하는 곳으로 성벽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담벽락 밑에 있는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성벽의 사이에 난 길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벽의 자리로 보이겠지만 주변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다 북문지가 병영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 담벽락 밑에 남아 있는 성벽돌들이 보인다. 뒤에 있는 성벽의 돌 앞에 새로 새워진 세멘 벽돌이 이질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쪽 성벽중 가장 잘 남아 있는 곳.
수풀이 무성하여 성벽이었던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적절한 보수와 보존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무덤이 오래 관리 하지 않으면 수풀이 되듯이 이 성벽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서쪽 성문이 있던 자리. 서문지
북문지에서 내려오다 가장 먼저 발견된 문지로써 어린아이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우리를 의아해 하였다. 부모와 주변으로 부터의 교육을 받지 못하여 전통에 대한 기억을 알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조선시대 병영성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던 길. 아직도 길로써 많은 행인들이 지나고 있지만 아무도 병영성내 길로서 인지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였다.
○ 서쪽 → 북쪽
병영성의 주요시설이 있었던 병영초등학교. 지금은 삼일아파트가 가려있지만 예전에는 염포앞바다까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건물을 지을때 도시의 조망도 함께 고려했으면 좋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성벽의 자취 및 옛길의 자취.
보존과 보수가 필요한 곳이지만 불분명하게 되어있다. 돌무지들도 보이고 이 북문지가 가장 잘 성벽으로써의 장소성이 보여지고 있다.
○ 각 문지별 특성
북문지
병영성내 남북 관통도로망이 지나는 북문지는 체성과 옹성이 남아있으며 4문지 중 인식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경작지로 이용되어 나날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남문지
4문지 중 주 진입로로 이용되었던 남문지는 현재 4문지 중 가장 훼손이 심하며, 상업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문지 지역은 장시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현재는 도시 도시계획법상 상업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동문지
4문지 중 개발의 영향응ㄹ 가장 적게 받은 문지로 인식도가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한다. 다른 문지에 비해 접근도가 낮아서 개발의 영향이 적었던 것이로 보이며 이곳 역시 주민들의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서문지
북문지와 더불어 문지로서 인식도가 높은 지역으로 소규모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서 병영성의 경관을 저해시키고 있다.
5. 결 론
병영성은 울산의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구축된 방어를 위한 성이 였다. 이러한 역사적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점은 아무리 중요하고 좋은 역사적 유적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국가적 보호가 없다면 어떠한 유산도 기억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과 콜로세움을 무너져 가는데로 두었다면 지금의 역사적 유적지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울산의 병영성도 좋은 유적지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역사도시 울산으로서의 가능설을 보여줄수 있는 재산이다. 그러나 지금의 병영성은 어떠한가? 탐방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거주민 조차 북문지의 존재부분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소실부분과 잔존 부분이 병영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실들이었다. 그나마 잘 남아있는 북문지를 병영성의 전부라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보존과 보수가 동시에 이루어 졌다면 지금의 병영성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의 주민들은 병영성을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가는 통로이자 골목이자 길로서 이용하면서도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채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부터라도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울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장소로서 병영성의 복원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완벽한 성을 다시 구축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곳을 기억할만한 요소와 장치를 통해 장소성만 부여하기만 하여도 역사는 이어질 것이다. 개발이라는 명목 앞에 무녀져 가는 병영성이 아니라 역사와 현재의 공존으로서의 병영성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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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1.09.23
  • 저작시기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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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156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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