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들은 현재의 끔찍한 고통 또한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있어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던 거 같다. 아니면 고통에 내가 무감각할 수도 있다. 크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 온지는 않았다. 천성이 그런지 절실하게 뭔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가지 고통들이 나를 이룬 것은 맞다. 지금의 삶도 마찬가지다. 늙어가는 육체와 의지, 그리고 홀로 존재한다는 불안감과 같은 것들이 항상 존재한다. 이런 고통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한다.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여울의 다음 말이 너무 와 닿는다. 삶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단걸 깨닫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 고통스런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찾고 사랑하는 대상의 둘레를 끊임없이 도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구속당하는 삶 자체의 타자성이다. 주체의 의도와 욕망을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지배당하고, 관계의 무상함에 휘둘리는 삶 자체의 타자성을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윤대녕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진경이다. 사랑의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타는 행위, 그것이 사랑이라고. 윤대녕의 주인공들은 이제 상대방이 내 주위를 공전하기만을 기도하기를 그치고, 이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그의 둘레를 한사코 공전하기를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있어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던 거 같다. 아니면 고통에 내가 무감각할 수도 있다. 크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 온지는 않았다. 천성이 그런지 절실하게 뭔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가지 고통들이 나를 이룬 것은 맞다. 지금의 삶도 마찬가지다. 늙어가는 육체와 의지, 그리고 홀로 존재한다는 불안감과 같은 것들이 항상 존재한다. 이런 고통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한다.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여울의 다음 말이 너무 와 닿는다. 삶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단걸 깨닫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 고통스런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찾고 사랑하는 대상의 둘레를 끊임없이 도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구속당하는 삶 자체의 타자성이다. 주체의 의도와 욕망을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지배당하고, 관계의 무상함에 휘둘리는 삶 자체의 타자성을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윤대녕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진경이다. 사랑의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타는 행위, 그것이 사랑이라고. 윤대녕의 주인공들은 이제 상대방이 내 주위를 공전하기만을 기도하기를 그치고, 이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그의 둘레를 한사코 공전하기를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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