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유물유적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문화와유물유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문화와유물유적



[과제명]

1. 교재 3장 ‘향교와 서원’을 참조하여, 향교 또는 서원(서울은 성균관 포함)을 찾아가서 조사한 후 감상문 적기. 아래 내용을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



목차

① 조사 대상 향교, 서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② 방문 일정 및 과정 제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할 것.

③ 조사한 내용 적기. (예) 향교 또는 서원 내에 있는 유물유적의 거리는 특정 장소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인지(걸음, 미터 등)

④ 감상 내용 적기

⑤ 조사한 곳에서 담당자의 역할을 하거나, 공부하고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의 의미를 서술.

참고문헌






① 조사 대상 향교, 서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1) 향교의 제도와 성격

향교는 고려 시기부터 각지에 설치된 지방교육기관이었다. 향교는 문묘를 두어 공자 이하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하는 문묘향사의 기능과 학생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강학의 기능을 하였다. 향교(鄕校)는 교육 내용

본문내용

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후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향교의 여러 건물들이 차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③ 조사한 내용 적기
부평 향교에 들어서면 입구인 홍살문에서부터 다음으로 외삼문이 보이는데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건물은 일반적인 향교 건물 배치인 대성전, 동무, 서무, 동재, 서재가 자리하고 있고 그 이외에 전사청, 공수고 등 부속 건물들은 지금은 없다. 입구인 홍살문 왼편에는 대인 소인 할 것 없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올라오라는 하마비가 어른 키만한 대리석으로 세워져 있고 외문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평향교의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향교 양식인 전당 후묘(前堂後廟) 방식으로 앞 건물에는 강당이나 교실 등 교육시설이 뒤편에는 어쩌면 향교의 가장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대성전이 있는데 성인인 공자와 25기의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이고 동재와 서재 등의 기숙사 건물도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성전 내부 한 가운데에 공자의 상이 모셔져 있고 검은 색 바탕의 목재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자세히 재보지는 않았으나 대략 가로 20~30센티, 세로 60센티 정도 돼 보인다. 공자의 위패의 양 옆에 촛대가 놓여 있고 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가지도 공자를 모시는 규칙적인 제례가 행해진 것으로 보였다. 참고로 25명의 성현 중에는 설총, 정몽주, 이이, 이황, 정몽주 등 18현이 모셔져 있고 공자를 비롯해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의와 송나라의 2현도 함께 모셔져 있으며 원래 좌우에 동무와 서무라는 건물이 위폐를 모시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폐쇄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대성전 바로 옆에 딱 보기에도 늙고 오래도록 번성했을 300년 넘은 수령의 소나무가 늘어져 있었는데 나무의 보호를 위해 1미터 남짓한 금속 파이프로 가지들을 지지하고 있었다.
참고) 인천광역시, 부평향교 소개
건물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건물과 조형물들이 아담하면서도 규모있게 잘 조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한 편의 잘 다듬어진 예술가의 수묵화처럼 소담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눈이 소북히 내린 겨울날 찾았더라면 또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④ 감상 내용 적기
(예) 조사 대상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 답사 전후 과정에서 느낀 내용, 소감.
부평 향교는 고려시대 이후 인천지역의 교유기관 및 유교 기념 시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역문화재로 전체적으로 향교 내부가 아담한 건물들과 잘 다듬어진 나무들 그리고 소박한 돌담과 디딤돌, 크고 작은 축대들이 사람이 인위적으로 가꾸었음에도 자연과 잘 어우러지면서 소박하고 담백한 맛을 뽐내고 있었다. 향교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절기마다 향교와 관련된 제례와 모임이 자주 열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나름의 자부심으로 향교를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에게서 오래되고 의미 있는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의 성실함과 고집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존경스러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품위는 있지만 거만하지 않으며 세월이 묻어나지만 낡지 않은 느낌의 향교와 우리 사찰, 그리고 옛 건축 조형물들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돌아서면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⑤ 조사한 곳에서 담당자의 역할을 하거나, 공부하고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의 의미를 서술.
향교는 고려-조선시대 지방의 공립 교육기관으로 그 지역의 양반이나 유생들이 과거 준비나 학문 수련을 위해 기숙하거나 방문하여 공부하던 곳으로 그 곳에서는 선비들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성인과 유명한 학자들의 정신과 이상을 닮아가는 교육의 요람이었다. 아마 내가 그 즈음의 양인이었다면 학업과 과거에 뜻을 두고 입교하여 공부하였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학교와 도서관을 합친 것이 당시 향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더불어 유교적 이상과 정신을 기리는 기념의 공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부천 향교는 단순한 건축물이나 문화재가 아닌 선조들의 학구열과 유학을 숭상하던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이처럼 천 년 가까이 잘 가꿔지고 보존된 문화재를 외국인들이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 것인지 상상해보니 한국적인 미를 살린 멋스럽고 정겨운 건물이 오랜 세월에도 빛이 바래지 않고 그 은은하고 품격있는 모습을 아직도 잘 유지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한 기품과 풍광이었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와유물유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 가격5,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22.11.16
  • 저작시기202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8996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