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현장을찾아서 = ) (1) 교재 2장을 참조하여 조선통신사 문화교류가 현재 한일관계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은 어떤 것인지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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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 (1) 교재 2장을 참조하여 조선통신사 문화교류가 현재 한일관계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은 어떤 것인지 적어주세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교재 2장을 참조하여 조선통신사 문화교류가 현재 한일관계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은 어떤 것인지 적어주세요. (1매)
(2) 교재 3장을 참조하여 상하이 와이탄에서 일어난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서술해주세요. (1매)
(3) 교재 10장을 참조하여 일제 식민군항이었던 진해의 ‘부정적 유적’에 대해 서술하고, ‘부정적 유적’ 조사와 답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점이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1매)

본문내용

역사를 포함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진해 일대를 ‘해군력 발전의 요람지’로 기념했다. 1929년에는 진해 시내의 ‘제황산 공원’에 러일전쟁 승리 25주년을 기념하는 ‘일본해해전기념탑’을 세웠다. 이 탑은 1967년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우리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9층의 진해탑이 세워졌다. 제황산 정상의 ‘일본해해전기념탑’은 철거됐지만, 탑까지 오르는 길인 37·38 계단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계단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인 메이지 37~38년을 뜻한다.
탑산 가까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구역 내에는 임진왜란 참전 후 망명한 명나라 유민 절강 팽씨의 묘역이 남아있다. 남해안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명나라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많지만, 해방을 맞이하고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강화되면서 그 기억이 왜곡되거나 망각된 경우가 많다. 이 팽씨의 묘역 역시 ‘팽우덕 장군의 묘’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웅천왜성은 지금까지도 망각과 방치 속에 남아있는 부정적 유적 중 하나이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당시 왜관이 위치했던 남산 자락에 웅천왜성을 쌓았다. 남산은 시야가 탁월한 남해한의 전략적 요충지로 웅천왜성과 관련해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포로들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역사이다. 이곳과 가까운 와성마을은 왜성 한 가운데 위치해있으며 이곳에도 왜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방치되어 있다.
과거의 관점과 현재의 관점이 양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유산은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꾸준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부정적 유사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학습적 대상으로 반면교사 삼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망각하거나 국가적인 이상에 맞춰 미화해서는 안 되며, 건전한 시민사회와 올바른 역사관을 건설하기 위해 부정적 유산을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타산지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참고문헌
첨부자료
김영재, 부정적세계문화유산의 교훈과 보존, 문화재청, 2017.9.1.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60300&bbsId=BBSMSTR_1008&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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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2.22
  • 저작시기2023.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9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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