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의 생애와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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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머리말

II. 케인즈의 생애와 정치적 성향

III. 케인즈의 주요저작

IV. 맺음말

본문내용

자율 정책은 저축의 크기를 감소시켜 결국 투자를 감소기키고 투자의 감소는 자본의 축적을 어렵
게 하여 성장여력을 잠식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이자율이란 자본의 한계생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폐부문에서 결정되며 이렇게 결정된 이자율수준에 의해 투자가 결정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본의 총량을
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재의 높은 이자율은 자본축적이 저해되어 자본의 희소성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지
적할 뿐 자본의 총량을 늘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생산과정에서 아무런 기여가 없는 금
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유도하고 사회의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위하여는 저이자율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케인즈는 이자율에 대한 그릇된 인식때문에 당시 영국에서 경제의 평
등을 제고시키기 위한 소득세나 부가세, 상속세의 고율부과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성장
이 부자의 인내심, 즉 저축에 의존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었으므로 저축의욕을 감소시키는 정책의 시
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고용이 달성되는 점에 이르기까지는 오히려 높은 저축성향은
유효수요의 부족을 초래하고 기업가의 투자의욕을 감소시켜 자본축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는
저이자율 정책을 통해 투자를 증진시키면 소득이 증가하고 그 결과 자본축적과 저축이 더욱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부자일수록 저축성향이 크므로 상속세를 강화하고 그만큼을 저소득층의 소득세에서 감소시
키면 사회의 평균적인 소비성향은 증대되어 결국 자본의 축적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러시아를
비롯한 각국에서는 시장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공산혁명이 일어났으며 혁명세력들의 대표적인 약속은 생
산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금리생활자(고리대 업자)의 축출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저
이자율 정책을 사용할 경우 혁명없이도 금리생활자의 과도한 이자소득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케인즈는 무조건적인 평등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소득과 부의 적정한 불평등은 인간의 치부하고자 하
는 욕망과 함께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불평등도는 그 도가 지나치게 심하
다고 지적하면서 경기의 규칙과 제한된 범위내에서 개인적 욕망의 추구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했다. 규칙에만
집착할 경우 초기부존 상황의 불평등, 구조적 불평등요인이 적절히 고려될 수 없으므로 과도한 치부욕망등은
제한하는 것이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유익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케인즈의 사상은 당시의 논자들로 하여금 그를 볼셰비키라고 명명하기까지에 이르게 한다. 그러
나 급진세력에게 케인즈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개량주의자일 뿐 이었다. 케인
즈는 어느 누구보다도 시장기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완전고용수준의 보장을 위해 투자의 사회화, 즉
정부의 경제개입은 필요하지만 그이외의 모든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불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시장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생산자원의 배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고용 상태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역설한다. 일단 완전고용상태가 달성되면 자원배분기구로서 시장보다 우월한 제도는 없다
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공산혁명세력의 주장에 대해 이자
율정책을 통해 총자본양과 자본에 대한 적정한 보수를 결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국가에 의한 생산용구의 소
유가 시장에 비해 우월한 배분을 낳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이론이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당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화 추세는
국내에서 시장을 상실한 국가가 그 시장을 해외에서 찾으려 한 때문으로 보고 경제 정책에 의해 국내경제문제
가 해결되면 제국주의 전쟁이 방지될 것으로 기대했다.
케인즈는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 실천적 학자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양식있는 엘리트
로 구성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평등을 실현하고 시장기구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기를 기대했다. 물론 케인
즈는 자신의 이러한 이론이 사회의 기득권익에게 매우 큰 반발을 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반이
론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어떠한 기득권익의 반발도 자신의 사상을 궁극적으로 좌절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
신한 자신에 찬 개혁가였다.
일반이론은 인간의 심리와 사회,제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구사상의 모순
을 미려한 문체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일반이론은 논리적 정합성을 상실하
고 있는 면도 있다. 그 자신도 이러한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미일관하게 평
이한 논리에 의해 도달되면서도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가설에 기초해 잘못된 주장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직
관에 따라 불명료하고 불완전하게 나마 진리를 찾기를 선호한' 사람이었다.
IV. 맺음말
케인즈는 낡은 사고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사고를 지향했으며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였고 경제적으로는 진
보적인 사회사상가였다. 케인즈는 시장경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혁신적인 사고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케인즈의 장례식에서 읽혀진 자신의 다음과 같은 글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받
아들여져 개혁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열망한 거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 까지 겪은 모든 수고와 어려움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느다. 나는 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를 계승할 사람에게 나의 칼을 줄 것이고 나의 용기와 기술은 그것들을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케인즈야 말로 냉철한 논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경제학자였다. 오늘날 경제학의 지나친 수리화가 자칫 제
도와 인간심리를 경원시 하며 자연과학화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케인즈와 같은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다시 한번 경제학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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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1.07.08
  • 저작시기2001.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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