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직관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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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제 목 : '베르그송'의 직관론에
□ 총 페이지수 :25
□ 목 차:

<제목차례>
Ⅱ. 피어나는 향기 1
오늘날의 철학 1
1. 한국 현대미술 교육의 첫 세대 작가, 최만린 4
2. 최만린 조각의 시기별 연구 5
3. 생명주의 조각가 최만린 24

<표차례>

<그림차례>



오늘날, 베르그송의 「직관론」은 현대 미술의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조형세계를 직시(直視)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와 같은 이론적 뒤받침은 예술로 하여금 더욱 독자적인 세계관을 피력할 수 있는 희망을....

본문내용

뭉툭한 형태가 자연스럽게 가늘어지면서 굽는 것(「○ 95-2」), 굵은 형태가 수직으로 올라오거나(「○ 96-5」) 굽은 것(「○ 95-6」) 등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마지막 방식의 작품들은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그림 15, 50, 16).
[그림46]
'O 91-13', 1991 [그림47]
'O 96-8', 1996
「○」연작의 모든 단순한 형태는 환원 과정, 즉 버림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 96-19」와 같이 단순한 형태에서 유기체의 생명력과 그것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으로 충전된 태초의 힘을 발견할 수 있듯이, 이 연작은 복잡화 이전의 형태라 할 수 있다(그림 46). 그것은 1989년 이후에 나오는「○」연작이 씨앗이나 그것의 껍질을 뚫고 나오는 맹아의 모습을 연상시킴으로써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는 대상을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키고 작품 표면의 광을 최대화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다. 예를 들어, 그의 납작하고 날씬한 물고기는 그것의 모양과 속력, 유연함, 흐름 등과 같이 그것의 동작에서 연상되는 속성들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형태들에서는 사물을 누르고 있는 주변 공기의 압력이 느껴진다. 반면, 최만린의 단순한 형태는 대상과는 무관한 것이다. 전자의 형태들과는 달리 후자의 조각에서는 방사 에너지가 감지되며, 이에 따라 관객은 그 작품이 완성되어 정지된 상태로 놓여 있다기보다는 지금 막 브론즈 덩어리가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특히「○ 91-10」이나「○ 93-5」와 같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듯한 작품들에서는 브론즈가 공기를 밀쳐 내고 솟아오르도록 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그림 14). 더욱이 작품의 아래 부위의 비늘 모양의 표면과 윗부분의 매끈한 표면의 대비를 통해서 이러한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림48]
'O 91-3', 1991 [그림49]
'O 96-13', 1996
최만린의 작품의 유기체적인 특징은 공공조형물의 상징적 의미와 효과적으로 결합되기도 한다. 최만린은 특히 1988년 이후 국가적·민간적 차원의 공공 조각을 여러차례 제작하게 되는데(그림 50). 그들 가운데 1990년부터 1995년 사이에 제작된「통일 염원의 탑」과 1994년에 제작된 EXPO'93기념 조각,「맥脈 94-2」의 끝이 뾰족해지면서 안쪽으로 모아지는 형태들은「○ 91-13」과「○ 95-2」의 원칙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그림 51, 52, 46, 15). 이 두 작품들에서는 모두 공간을 한 생명체가 뚫고 태어날 때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힘은 특히「통일 염원의 탑」에서 나타난, 아래에서는 떨어져 있다가 바깥 윤곽선이 반원을 이루면서 안으로 굽은 형태들에서는 거의 주술적인 느낌까지 든다. 즉, 이 작품에서는 생장 에너지가 작가의 통일을 향한 염원과 연결되고 있다. 에너지에 가득 찬 이 형태들은 바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의 상징이다. 그가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조각「서울의 만남」을 스페인 작가 J.수비라치와 공동 제작하면서 '우리의 토속신앙인 성황당'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이것을 '동서의 만남을 의미하는 조형물'과 결합시키려 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가 위의 작품을 만들면서도 한 미술작품의 주술적인 기능을 믿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림50]
'O 96-5', 1966 [그림51]
'통일 염원의 탑'
1990-1995
3. 생명주의 조각가 최만린
리드는 조각을 공간에서 3차원의 덩어리들을 다루는 특별한 감수성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으로 보면서 세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것은 "표면의 촉감성, 표면 전체가 만들어 내는 볼륨감과 사물의 덩어리적 중량감의 종합적 실현"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최만린의 조각에서는 이러한 고전적 의미의 조각의 속성들이 최대한으로 실현되어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이를 통해서 생명주의 조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 40여년 간 생명 개념을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때 모필을 가지고 획을 긋는 원리는 그의 조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의 조각이 독창성이며, 그는 이를 통해서 한국 추상조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림52]
'맥(脈) 94-2', 1994
한편, 미술과 과학을 나란히 진행되는 활동들로 본 생명주의자 리드와는 반대로, '과학과 공학을 조각이 원래의 진로로부터 이탈하는데 미친 광범위한 영향들 가운데 하나의 수단'으로 본 번햄은 "과학과 공학의 현실적 의미와 그것들이 예술에서 이룬 업적을 공관적共觀的synoptic으로 보면 생명주의는 이제는 구식일 뿐만 아니라 부적당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생명주의는 서구에서는 과학의 증명을 통해서 구체화되기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동양에서도 서구의 계몽주의 이전에 체계화되었던 사상으로 특정 시기와 장소에 국한되어 등장한 것이 아니다. 최만린의 조각의 생명주의는 바로 인간이 인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한 우주의 생명력인 것이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관심과 근본적으로 회화와는 달리 일루전을 배제하는 조각을 통해서 생명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한 시대의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자연이나 생명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학과 공학의 발전이 인간의 의식구조를 더 지배하게 될수록 현저해진다. 이성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던 1800년 전후의 유럽에서 자연을 치유제로 보았던 사실과 자연과학의 발전이 어느 시대보다 두드러졌던 지난 세기 말 유럽에서 자연이 지닌 활력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사실, 그리고 금세기 1970년대 구미에서 자연보호운동이 일어난 사실은 위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때 인간은 자연을 삶의 무대로 바라보기보다는, 생명주의자들이 그 예를 보여 주었듯이, 그곳에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원칙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볼 때 현재와 같이 가시적으로 비가시적으로 첨단공학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최만린의 조각에서 표현된 것과 같은 생의 힘의 인식은 아예 더 절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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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2.04.21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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