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엽묵재와 퇴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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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쪽에 취향이 있는 것으로서 秘藏하는 것이다. 이퇴계선생을 直方선생이 발견해 알아냈다고 하나 대체로 일반적인 눈이 높은 것은 아니다.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저 고상한 直方선생이 고등한 이퇴계를 찾아냈다고 하나 잘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吾黨의 諸賢이 비장할 곳이다.
주자학을 배우려면 이퇴계의 인도로써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옳은 것이다. 이것이 默齋가 발견한 것이며, 스스로 비장하는 바이다. 吾黨의 제현이 비장할 바이기도 하다고 한다. 도학상에 호걸로 일컬어지는 默齋가 이같이 강한 신념을 가지고 말한 것은 直方으로부터 默齋에 이르는 도학의 신념이라 본다.
-594-
默齋는 또 학통을 논하고 특히 퇴계학을 칭양한다.
伊洛淵源의 續錄에 주자로부터 훌륭한 사람을 많이 듣고 있으나, 그 가운데 張南軒만이 조금 된 사람이다.
라 하고 다음에
주자의 제자들도 많이 실었지만 그것은 다만 실었을 뿐이다. 주자의 제자 가운데도 표준을 얻은 자는 黃勉齋, 蔡九峯 뿐이며 宋 이래로 元明의 間叢生儒者는 이것이지만 주자의 연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薛文淸, 李退溪 뿐이다. 그밖에 도통을 전수한 자는 전혀 없다. 是를 말하나 퇴계에 기대가 크다.
라고 도통의 전수를 薛文淸과 이퇴계에 둔다. 그러므로 이퇴계에 기대하고 배우는 것이 크다고 말하며 薛文淸과 이퇴계를 비교하여 우열을 말한다.
薛文淸도 이퇴계도 그 어느쪽도 주자학을 잘 얻었으나 薛文淸은 식견이 높은 사람이고, 이퇴계는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은 학문이지만 이것이 이퇴계가 도를 얻은 바이니 평범한 곳에 오묘함이 있다.
퇴계의 학문을 평범한 곳에 오묘함이 있다고 말한 것은 볼 만한 것이다.
-595-
그 경우 평범에 있어서는 薛文淸보다 이퇴계가 우위이다. 지금 읽어 보아라. 독서록은 재미있고 『自省錄』은 반짝하지는 않으나 거기에 볼 곳이 있다.
참으로 음미할 만한 默齋의 말이다.
佐藤直方에게 독서록발문이 있으니 말미에 「方知薛氏之所見, 度越元明諸儒」라고 아뢰고, 文淸의 학문을 칭찬하고 있다. 是庵이 그의 도통계에 주자로부터 薛文淸, 李退溪로 한 것은 直方에서 처음 시작했다.
또 默齋는 퇴계의 학문의 우수함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한다.
直方선생이 어느 때에 迂齋와 담화를 함에 薛文淸은 할머니의 차를 마시는 것 같고, 이퇴계는 처녀의 차를 마시는 것 같다고 했다. 진실로 이것은 折紙傳授이다(종이에 써서 秘傳을 전하는 것). 이 말은 차를 끓이는 법을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파와 처녀라는 것, 薛文淸은 그처럼 식견이 높지만 앞이 막혔다. 隨分學問은 좋지만 저것으로 끝이야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聖人을 배우는 일이기에 성인이 되지 않는 가운데 일찍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또 노파와 처녀의 차 끓이는 데 비유하고, 노파에게는 진보가 없고 처녀에게는 진보가 있다고 하여 이퇴계를 이것에 비유한 것은 재미있다.
이퇴계는 주자를 표적으로 하여 생애股引으로 달리는 사람인 까닭에 학문에 몇년 안 걸린다. 이 때문에 죽은 주자가 살아서 일하는 것 같다. 이것을 孔門에 끌어들여 말하면 薛文淸은 曾點과 같고, 이퇴계는 顔子와 같다. 안자는 공자를 따라가지는 못했으나 공자를 따라갈 수 있었을 때에 죽었다.
伊川의 顔子好學論에 안자의 학문에 대해 「其與聖人相去一息」이라고 말했고 또 「假之以年則不日而化矣」라고 말하고 있다. 서로 부합되는 것이다.
-596-
안자는 30에 죽고 퇴계는 70에 죽었다. 그러나 허리를 걸치지 못한 곳은 누구나 같은 것이다.
라고 이르고, 다시 또 말을 더 붙여 하고 있다.
이퇴계는 걸으면서 죽었고, 薛文淸은 앉아서 죽은 것 같다. 앉은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는 일어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라고, 생애股引으로 달리고 있는 그이기에 학문에 나이가 안 든다고 말함은 묘하다.
사실 퇴계의 연보에 의해 알아보아도 퇴계는 선조 3년(1570) 12월 8일 70세로 죽었으나 그 전 날인 7일 「庚子命門人李德弘司書籍」이라고 있고, 12월 4일 「丁酉命兄子寗書遺戒」, 또 「午時見諸生」이라고 있다. 12월 3일 「丙申命子弟錄還他人書籍戒勿遺失」이라고 있고, 11월에는 奇高峯에 답해서『大學』의 致知·格物說에 대하여 정정하고 있다. 11월 「己卯答奇明彦書改致知格物說」이 있다.
참으로 默齋가 말한 바와 같이 「걸으면서 죽었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默齋도 역시 그러하다. 默齋에게는 最晩年의 기록『六八錄』이 있다. 죽은 해인 68세의 기록이 있는데 진실로 浩瀚한 大部의 隨得錄이 있다. 默齋는 寬政 11년(1799) 11월 1일에 죽었으나『六八錄』가운데에 10월 24일의 기록에 「聖人專是道心秋月照寒水」의 기록이 있다. 「秋月照寒水」의 귀절은 주자의 「齋居感興」 12수의 제9수 가운데의 시구에 「恭惟千載心, 秋月照寒水」에 나오는 것인데 佐藤派에서는 주자의 이 문구를 鑑戒의 말로 傳誦하여 온 것이다. 默齋도 역시 스스로 말한 것 같이 「걸으면서 죽었다」고 남들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97-
默齋에게는 또 直方의 도학표적을 강의한 「默齋道學標的講義」가 있다. 그것의 「講後餘錄」에 퇴계의 학문에는 「急遽 淺迫이 없다」라고 한 것 또한 볼 만한 것이다. 이것을 인용하여 이 논문의 결어를 삼고자 한다.
直方선생의 高見으로 이퇴계를 존경함은 끝이 없으나 이퇴계에게는 急遽淺迫이 없다. 浹洽而貫通하는 점이 있다. 그러면 공자를 이은 자는 주자, 주자를 이은 자는 이퇴계다. 이퇴계를 대단치 않은 것처럼 생각하나 그것은 量(雜學)이며 깨달은 학문이다. 直方선생이 만년에 동지문을 짓고(直方은 70세에 죽었으나 동지문은 67세 동짓날에 완성됐다.) 퇴계에 그치게 된것은 道流의 안목이다.
위의 「道學標的講義」는 寬政 2년(1790) 庚戌 12월에 완성된 것으로 默齋가 50세에 孤松庵에 있을 때의 강의한 것으로 기록한 사람은 押掘村의 高宮文七이라 한다.
默齋의『六八錄』에
喫酒一合, 詩一首成, 是一斗百篇矣.
이라 하고, 또
秋日炎熱可厭可惡, 理致不高而議論多者類此.
라 하니, 앞의 것은 默齋의 호쾌한 품격이 드러나 있고, 뒤의 것은 퇴계와 默齋를 은근히 契合하려는 생각이 있다.
(퇴계학연구원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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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4.26
  • 저작시기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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