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와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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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세네카

본론
1.기독교의 복종
2.나누어진 충성
3.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및 그레고리우스
① A.D.4세기 후반 St.Ambrose
②5세기 초 St. Augustinus
③6세기 후반 St. Gregory

결론
1.사상의 견해-두 개의 칼

본문내용

개의 국가의 시민이라는 것은 오래된 것이었으나 그 적용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더 큰 국가란 하나의 정신적 영역으로서 하느님의 왕국이었다. 이런 정신적 종교로서 기독교의 특성은 종교제도의 독립이 제기됨에 따라 이제 종교를 국가의 부속물로 삼던 전통의 파괴는 불가피했다. 사실 제국적 세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그 기반으로 공인종교를 확립은 불가피했으며, 처음에는 종교적 권력 성장의 길을 터주었으나 황제의 신격화는 결국 종교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바꾸었다. 그러나 종교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인종교가 아니라 국가와 대등 나아가 종교가 더 주도적으로 대변하는 관심분야에 있어서는 국가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국가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자주적 교회조직 가진 종교였다. 따라서 로마가 정치와 종교에 있어서의 원천적 권력이 되겠다는 의사를 철회하자, 교회는 제국에 협조하여 시민으로서 충성하고 복종하였고 세속권력 지지하는데 잘 적응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상응하는 인간생활에 대한 이중의 통제라는 가정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구분을 낳는 것이었다. 영적 세계의 종교적 제도와 세속적 세계의 정치적 제도간의 구분은, 교회가 공인되고 나서는 정신적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자주권 주장의 필요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영혼과 육체가 다른 본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끊임없이 결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와 국가의 공존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교회와 국가는 둘 다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인간 생활을 다스리기 위해 신이 지정해준 대리기관이기 때문에 교화와 국가의 독립성은 양자에 서로 유익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런 개념 속에는 갈등과 혼란의 가능성이 내재된 것은 명백한 일이다. 무엇보다 교회의 확립기에 있어서 교회는 황제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반면, 그 뒤에는 교회의 증대한 세력이 세속권력의 자주권을 위협하려 하였던 것이다.
3.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및 그레고리우스 -종교와 정치간 관할권의 한계와 관련된 논쟁 한 사상가들
① A.D.4세기 후반 St.Ambrose
정신적 사항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자주권에 대한 강한 강조로 유명하였다. 정신적 사항에 관해서 교회가 황제도 포함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해 관할권 가진다는 주장을 하였다. 시민적 권력에 복종할 의무에는 의심할 여지없으나,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세속적 통치자를 꾸짖는 것이 성직자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실천해야 할 하나의 계율이라고 하였다.
②5세기 초 St. Augustinus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독특한 관념은, 인간정신 발전의 절정으로서 '기독교 공화국'의 개념이다. 인간은 정신이자 육체이기에, 육체적으로 태어난 현세의 국가의 시민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국가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저급한 인간 본성의 탐욕적·소유욕적인 충동에 기초하는 사회로서 지상국가와, 하늘의 평화와 정신적 구원의 희망에 기초한 사회로서 하느님의 국가의 구별하여, 역사란 이 두 사회 간의 투쟁,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국가로 귀의해야 할 지배에 관한 극적이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인간적 조직으로서 교회가 하느님의 왕국과 꼭 같은 것은 아니며, 세속정부도 악의 권력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정부의 강제력은 죄악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겨났으며 그 죄악에 대해 하늘이 제시한 처방이라고 믿었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가 교회조직과 일치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표출한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사에 역사할 수 있기에, 기독교 교회의 출현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간주하였다. 인간구원은 교회의 관심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인간역사는 신의 구원계획의 장엄한 전개이며, 국가는 공통된 기독교 신앙의 덕성에 의해 하나가 되는 공동체에 봉사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간직함으로써 인간구원에 공헌하는 하나의 기독교국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합당한 국가란 진정한 종교적 신념을 가르치는 국가라야만 하는 것이었고, 이후 그 기독교적 특성을 가진 국가는 국가의 목적이 정의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편적으로 승인된 원리를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③6세기 후반 St. Gregory
그레고리우스는 무저항적 복종의 의무를 암시하는 말로 정치적 지배의 신성을 표시한 유일한 교부이다. 사악한 통치자라도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고 강하게 표현하였다. 통치자의 권력은 하느님에 관해서도 미칠 뿐 아니라 하느님 이외에 황제보다 더 높은 자는 없다고 하였다. 정부의 신성에 대한 이 같은 견해는 황제에 의한 교회의 통제보다는 무정부상태가 더 위험한 요소가 되었던 시대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결론
1.사상의 견해-두 개의 칼
교부시대의 기독교 사상가들의 특징적 견해는, 두 종류의 가치에 상응하여 인간사회를 이중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정신적 관심과 영원한 구원은 교회가 관장하며, 세속적 이해와 평화, 질서와 정의의 유지는 시민정부의 관장사항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질서와 시민정부 관리의 질서 사이에는 상호 협조의 정신이 충만해야 하고, 그 경계는 위기 상황에서조차 하느님이 상대방에 부여한 권리를 존중하면서 상대방을 유린·파괴 않는다는 의식을 가졌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또 인간본성의 오만과 자만심을 구속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두 개의 권력의 분립을 선포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왕권과 사제권을 동시에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던 최후의 존재였었다. 기독교적 율법 하에서는 동일한 인간이 동시에 왕이자 성직자가 되는 것은 불법적이나 각 권력이 상대방의 권력을 필요로 함은 사실이다. 이런 개념을 흔히 '두 개의 칼', '두 개의 권력'의 교리라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은 교황과 황제 사이의 경쟁이 정신계와 세속계의 관계를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때 양편 모두의 논리의 출발점이 되었다. 국가내의 시민권과 그것과 별개로서 그 위에 천국의 동료로서의 회원권으로, 기독교는 기독교인을 두 개의 법과 두 개의 정부 아래 두었다. 이러한 기독교 사회의 이중적 측면으로서 정신적 자치 및 정신적 자유권에 대한 신념은 그 잔재가 남아서, 이후 개인적 사생활과 자유에 대한 근대적 이념의 이해 근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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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30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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