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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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Q 17:2 그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
) 이것을 "걸려넘어지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보다 연자맷돌을 그의 목에 매고 [[]] 바다에 빠지는 것이 [[]] 그에게 더 낫다."
용서에 대하여(Q 17:3-4)
Q 17:3 "만일 너의 형제가 죄를 지으면 그를 꾸짖고, 만일 [[그가 너의 <<말을>> 듣거든 그를 용서하여 주어라]].
) 죄를 지은 자에 대한 경고와 죄를 뉘우치는 자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측면에서 상호 조화를 이루고 상호 보완되어야할 신앙인의 아름다운 덕목이다. 왜냐하면, 흔히 죄를 경고하면서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반대로 죄를 경고하여 그를 깨우치지도 못하면서 용서를 먼저하여 의를 그릇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Q 17:4 그런데 만일 하루에 일곱 번 그가 너에게 죄를 지어도, 역시 일곱 번 그를 용서하여 주어라."
믿음에 대하여
Q 17:6 "너희가 겨자씨 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을 것이다."
)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가장 작은 믿음을 가르킬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던 표상이다. 겨자씨의 비유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은 것에서 큰 나무로 성장해 가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표상하기도 하였다.
인자의 날(Q 17:20-35)
?Q 17:20? ‥
?Q 17:21? ‥
Q 17:23 "…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아라! [[그는 광야에 있다]].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보아라! [[그는 방 안에 있다]] 할 것이다. 따라가지 말아라.
Q 17:24 번개가 [[동쪽으로부터]] 와서 [[서쪽에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인자의 [[<날>]]
)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인자의 날은 묵시문학적인 종말론의 틀 속에서 이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묵시문학적 종말론은 역사와의 단절 속에서 역사를 초월하는 종말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아의 날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심판이었던 것을 중시하여, 인자의 날도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그와 같을 것이다.
Q 17:37 주검이 있는 곳에, 거기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Q 17:26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의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Q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 갔는데]], 홍수가 와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Q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Q 17: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을 것인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Q 17:35 두 여인이 맷돌을 갈게 될 것인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이 귀절이 마태 24:41에서 마태복음의 묵시문학적인 틀 속에 자리를 잡게 되지만, 원래 Q 본문에서는 묵시문학적인 틀 속에 있었던 말씀이 아니다. Q에서 이 귀절은 종말론적인 심판이 일어날 때, 하나는 취해지고 하나는 버려지게 된다는 선택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달란트의 비유(Q 19:12-27)
Q 19:12 "‥ [[여행을 떠나는]] 어떤 사람이
Q 19:13 그의 종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달란트
) 원래 예수가 달란트를 가지고 비유를 말하였는지 아니면 므나를 가지고 말했는지는 결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Q의 복원에 있어서 이 귀절의 "달란트" 대신에 "므나"를 삽입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현금을 그 종들에게 맡기고 갔다는 사실을 예수의 비유는 말하고 있다.
를>> 주었다.
Q 19:15 저 종들의 [[주인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왔고 그들과 더불어 셈을 하였다.
Q 19:16 [[그러자]] <…> [[]] 그 [[첫 번째 <<종>>이]] <<왔고,>> 말하기를, '주인님! … [[당신의 <<달란트가>> 열 배로 늘었습니다.]]' 하였다.
Q 19:17 그가 그에게 말했다. '잘하였다, 신실한 [[]]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들을 네게 맡기겠다.'
Q 19:18 그리고 그 [[두 번째 <<종>>이]] 왔고, 말하기를, '주인님, <<당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내가 더 많은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하였다.>>
Q 19:19 그가 그에게 말했다 [[]]. 너에게[[도]] 내가 많은 것들을 맡기겠다.
Q 19:20-21 그런데 [[다른 <<종이>>]] 왔고, 말하기를, '주인님! [[나는]] 당신이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또한 키질하지 않은 곳에서 모으는 엄하신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워[[하였고]], [[나는 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숨겼습니다]]. 여기에 [[당신의 것이 있습니다]].' 하였다.
Q 19:22 그가 그에게 말했다. '악한 종아! 너는 내가 뿌리지 않았던 곳에서 거두고 키질하지 않았던 곳에서 모으는 줄로 [[]] 알았느냐?
Q 19:23 [[그러면 왜 너는]] 나의 돈을 은행
) 그리스어에서 이 단어는 원래 돈을 바꾸는 자들의 책상을 뜻한다. 그들은 수수료 혹은 이자를 받고서 돈을 바꾸어 주었다.
[[에 두지 않았느냐]]? 내가 돌아온 후에 나는 이자와 함께 [[내 자신의 것을]] 받았을 것이다.
Q 19:24 그에게서 그…<<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Q 19:26 ‥ 가진 자마다 더 주어질 것이지만, 가지지 않은 자는 그가 가진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Q 19:27? <<‥>>
마지막 상(Q 22:28, 30)
Q 22:28 "‥ 나[[를 따랐던]] ‥ 너희들은
Q 22:30 그 [[나라]]에서 <‥>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을 심판하는 보좌에 앉을 것이다."
) 이 귀절 역시 묵시문학적 표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심판의 표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마지막 때에 예수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보좌에 앉아 그의 스승 예수와 더불어 심판을 수행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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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7페이지
  • 등록일2002.10.11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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