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대통령들의 정치사적성격과 통일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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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가형성과 이승만의 리더십
2. 산업화와 박정희 리더십
3. 민주화와 김영삼 리더십
4. 김대중과 체제전환의 리더십

본문내용

동의 적자(嫡子)답게 법치와 인권이 우선되는 민주인권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 '인권법'의 제정을 통해 인권위원회의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의 정치적 악용을 금지하는 동시에 그 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 전교조의 합법화를 통해 노조활동을 자유화했으며, 여성부의 신설을 통해 여성권익을 증대하도록 했다. 또한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시민단체에 의한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단체의 참여를 장려했다. 그리고 국내 활동에 있어 재외동포들이 받고 있던 각종 제약을 개선시켰고, 중국동포와 제3국 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처우를 개선시켰다.
김대중 정부의 또 다른 괄목할 만한 성과는 복지정책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노동자·서민 등 소외계층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임을 표방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생산적 복지'의 기본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여 저소득계층의 빈곤과 질병에 획기적으로 대처하고, '전국민연금'의 실시를 통해 전 국민을 위한 노후소득 보장체제를 마련했다. 또한 실업급여의 적용을 확대하고, 공공근로사업·인턴 등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직업훈련을 통한 재취업능력을 제고시켜 실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도 했다.
끝으로 김대중 정부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화해와 협력의 '한민족시대'를 열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일관된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여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고, 그 산물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도출했다. 이는 남북이 대결과 불신의 지난 반세기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였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은 남북장관급 회담, 남북국방장관 회담, 남북경협추진위원회 회의 등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실질적 조치로 이산가족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그 결과 제 1·2차 남북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여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기도 했다. 이같은 남북간의 화해·협력은 국제사회로부터 세계평화를 증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4) 노벨평화상 수상자
2000년 10월 13일은 한민족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날이 될 것이다. 저녁 나절 TV뉴스는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김대중 대통령이 선정되었다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발표장면을 긴급 보도했다. 정말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적 영광일 뿐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쾌거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1971년 동서독의 화해와 통일의 물꼬를 튼 '동방정책'의 주창자였던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비교된다고 하겠다. 당시 동방정책은 동독에서도 거부당하고 있었고, 서독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음에도, 노벨위원회는 혜안을 가지고 빌리 브란트 수상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구체적인 업적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도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남북간의 긴장해소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전개된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착공, 남북국방장관 회담 등과 같은 일련의 가시적인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업적들을 노벨위원회가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정치가로서 천운이 매우 좋은 '행운아'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되었고, 민족적 과제에 물꼬를 튼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지구상 가장 영예로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대통령도 이 세 가지를 다 이룬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행운아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취는 천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는 일생 동안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라는 자신의 좌우명대로 정치를 해왔던 인물이다. 이러한 좌우명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 이외에 가장 해보고 싶은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학교수'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을 통해 우리는 그가 대단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를 과학적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 그의 지적 욕구는 젊은 국회의원 시절 국회도서관의 대출실적이 항상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그는 전문가들로부터 자신의 선거공약뿐만 아니라 국정목표를 한국의 현실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을 고려해서 체계적이고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점에 비춰볼 때 그의 리더십을 형성하고 있는 또 하나의 덕목은 '항상 공부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질에 의해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인동초와 같은 정치역정과 끊임없는 자기수련, 그리고 역사적 소명의식이 융합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결코 '초인(超人)적' 지도자가 아니라, 다만 평범한 민초들의 삶과 꿈을 대변하고 실현하려는 '대변자'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김대중 정부는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김대중 정부는 지난 3년 간의 성과를 보다 진전시키고 제도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즉 시장경제체제와 지식경제강국을 구축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제도화하며, 평화적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과제실현은 시대적 소명이자, 김대중 정부의 국가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년 후 김대중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러한 과제를 얼마나 실현했느냐에 따라 내려질 것이다. 진정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위대한 리더십이 마지막 임기까지 발휘되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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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11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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