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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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전받는 한국의 민족주의

2. 우리는 과연 너무 민족주의적인가?

3. 민족주의 원죄론?

4. 한국 민족주의의 딜레마

본문내용

논리=근대주의 비판과 조선도 일본처럼 근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일본적 근대화를 긍정해버리고 마는 논리=근대주의이다.
조경달, 앞의 글, 62쪽.
즉 내재적 발전론에는 근대주의로 근대를 비판하려는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해동이 신채호를 평가하면서 "민족주의로는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한 갑신정변의 길, 즉 '대국주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온건개화파와 갑신정변 이후 김옥균, 유길준 등의 '소국주의 노선'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근대 극복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최근 최원식, 백영서 등에 의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필자 역시 그의 글에서 많은 시사를 얻었다. 그가 비판한 내재적 발전론이란 사실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재적 발전론이 안고 있는 이 모순은 바로 한국 민족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이자 또한 세계체제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적 발전을 하면서도 한 때는 아(亞)제국주의라 불릴 정도로 동아시아 국가의 노동자를 수탈하는 발달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모순된 구조 위에 한국 민족주의가 서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노동자 국제주의라든가, 백영서의 '복합국가'
백영서는 소국주의 이론에서 시사를 얻어 국민국가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공동체를 제안하고 있다. 그는 '복합국가'라 부르는 이 '새로운 공동체'를 '국가권력에 대한 획기적인 민주적 통제의 원리를 관철시킴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여 한민족공동체를 통합할 다층적 복합구조의 정치체제를 구상하려는 '志向으로서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백영서, 「20세기형 동아시아 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창작과비평』 106호, 26 27쪽).
가 그 대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민족주의의 특징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한국 민족주의 역사는 체제민족주의와 반체제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해 오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 주지하듯이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에 반체제민족주의가 체제민족주의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관 주도의 내셔널리즘이 전개되더라도 항상 반체제운동의 견제를 받아왔고, 체제이데올로기로서도 취약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체제민족주의는 안으로는 국가주의와 밖으로는 대국주의를 지향했으며, 반체제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소국주의, 그리고 민중주의를 지향하는 전통을 재창조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흔히 민족주의 속에는 '통합과 배제의 구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왜 민족주의가 반드시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말살하는 논리여야만 할까. 근대 국민국가를 해체하지 않는 한 배제하고 차별하는 구조는 소멸될 수 없는가.
이마무라 히토시/이수정 옮김, 『근대성의 구조』, 민음사, 1999.
'차이의 존재'를 인정받는 논리가 과연 민족주의 속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한국의 반체제민족주의가 요구한 것도 바로 이 '차이'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일본의 자유주의사관이나 오옴진리교처럼 타자를 말살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는 정서가 한국의 반체제민족주의에는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한국 민족주의를 강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인정받기 위한 약자의 본능으로 규정한 송두율의 주장을 그저 '자위'
윤해동, 앞의 글, 53쪽.
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주장이나 이른바 '열린 민족주의' 등 반체제민족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을 역사적으로 볼 때 소국주의의 전통을 계승 또는 재창조하려는 작업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친 미화일까.
사족으로 윤해동의 민족주의 설명에 대해 방기중이 사료문제를 제기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주된 사료가 『동아일보』인데, 윤해동은 이들의 민족 개념을 가지고 식민지시기 민족주의를 유기체적 민족주의로 일반화시켜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나 일반민중이 받아들이는 민족관념 또한 이들 부르주아의 것과 같았을까. 이것을 보면서 나는 푸코의 작업이 생각난다. 그는 19세기에 들어 '신체'라는 말이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다고 분석하였다. 즉 귀족계급에게서 신체는 피=혈통을 의미했지만, 부르주아계급에게서는 생활과 건강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민족 민족주의 또한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일본에서 메이지유신기 정권담당자들이 민중에게 강요했던 天皇像과 일반민중이 갖고 있던 천황상이 달랐듯이 말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민족주의를 상대화시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비판론자'들에게서 느끼는 문제점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념을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고 확대시킴에 따라 많은 문제를 민족주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백낙청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는 "민족문학론은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실제로 상황은 많이 변했고, 그 변화가 민족문화운동과 민족문학론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요는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이루어졌으며 무엇이 남았는가를 면밀히 따져서 민족문학론의 퇴출 여부를 결정할 일"
백낙청,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창작과비평』 107호, 218쪽.
이라고 말했다. 한국 민족주의를 비판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내용이다. 끝으로 '비판론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충고 한마디를 다시 그의 입을 빌어 덧붙이고자 한다.
무릇 어떤 낱말을 쓰기로 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온갖 때가 함께 묻어 오듯이, 때묻은 낱말을 버릴 때 내게 긴요한 알맹이마저 잃게 되는 것이 또 얼마나 흔한 일인가.
위의 글,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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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12
  • 저작시기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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