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무역(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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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1. 장보고 해상활동 재조명과 21세기 국가경영 시사점
Ⅰ. 서 론
Ⅱ. 장보고 해상활동의 배경
1. 재당 신라인들의 분포와 위상
2. 장보고의 출신배경
3. 장보고의 당나라 체험과 법화원 창건
Ⅲ. 장보고 동아시아 해상무역활동
1.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
2. 장보고시대의 동아시아 해상항로
3. 장보고의 동아시아 해상무역 활동
4. 장보고의 정치개입과 몰락
Ⅳ. 장보고 해상활동의 재조명
1. 장보고에 대한 새로운 접근 시각
2. 장보고 해양경영체제의 구조 및 성과
3. 「장보고 해양경영」의 성공요인
Ⅴ. 21세기 국가경영에 주는 시사점
1. 국가의 역사적 발전에 주는 시사점
2. 국가경영에 주는 시사점
Ⅵ. 결 론

논문2.
서론
본론
1.장보고의 생애와 이상
2.고대항로 개척과 해운
3.장보고의 현대사적 교훈
결론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있었다. 한반도 청해진에서 이들 지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황해나 남중국해를 항해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최소한 세 개의 고정항로가 있었다. 그 가운데 당시에 가장 많이 애용된 항로가 이른바「황해 횡단 항로」였다. 이 항로는 백제와 신라가 가장 많이 이용했던 항로이기도 하다. 장보고 시절엔 羅·唐·日 간의 물길목인 완도의 청해진을 떠나 한반도의 서남 해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충청도의 당진이나 또는 옹진에서 황해를 횡단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던 듯 하다.
오직 신라인들이 남중국 항로와 북중국 항로를 장악하고 황해와 동중국해를 주름잡게 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다도해를 거느리고 있는 지금의 서남해안 일대의 지리적 인문적 숙명성과 연결된다. 이 지역에 일찍 정착한 백제 사람들은 옛부터 바다를 다스리는 지혜와 기술을 체득하고 축적해 왔었다. 특히 청해진 앞바다와 다도해 지방의 암초 그리고 밀물, 썰물의 변화, 대륙에 가로 막힌 황해의 소용돌이 등 무궁무진한 변화를 일찍부터 터득한 이 지역 사람이 아니고서는 범선(帆船)에만 의존하던 당시의 뱃길을 감히 자신있게 운항할 수가 없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3.장보고의 현대사적 교훈(張保皐의 現代史的 敎訓)
장보고의 천재성이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더 빛난다. 지금 보면 오지나 다름없는 서남해안 구석의 완도에다가 하필이면 청해진을 설치한 천재성이다. 당시로는 청해진이야말로 범선시대 항로의 천연적인 요충지였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서도 지리적 잇점과 자연의 힘만을 이용하여 남북 중국 항로와 일본으로의 항로를 장악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완도섬 청해진의 천부적인 장점이었다. 훗날 6백여년이 흘러 내륙 출신의 이순신 장군이 빈약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서남해안 일대 울돌목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서남해안 바다의 자연조건을 너무나도 잘 아는 현지 지방민들의 전심전력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이순신 장군은 그의 '난중일기'에서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적어 놓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다길이 막히고 해양진출이 부진할 때 국운(國運)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역사 4천여년 동안 적극적인 의미의 바다를 경략하고 대외진출을 도모한 것은 백제의 요서 및 양자강 경략 그리고 그 후 3백년이 지난 다음 장보고의 죽음과 동시 청해진이 쑥대밭이 되고 唐· 宋·日本 등에 의존하는 바다경영체제로 바꿔짐에 따라 통일 신라는 몰락의 길을 재촉하였을 뿐이다. 되풀이 하거니와 동서고금의 역사는 바다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사를 제패함을 보여준다. 장보고와 같은 불세출(不世出)의 영웅, 바다의 사나이들이 나라 안에서 들끊는 갈등과 저항적 에너지를 신천지 개척을 위한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킴으로써 개인 발전과 국운의 진작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세계 유수의 해운국으로 뻗어 가는 우리 나라는 바야흐로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국제 무역의 확장기를 맞이하고 있다. 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 너머 새로운 '업'의 세계가 우리를 손짓하고 있다. 황해와 중국해 동해 바다를 국적없이 떠돌지 모를 장보고와 당시 신라인들의 영혼을 달랠 새 전기(轉機)를 모색할 때다. '백가제해(百家濟海)'의 혼을 이어 받은 바다의 후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의 험한 파도 거친 바다를 거뜬히 경영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본능'이라고 말하여 별로 틀림이 없다.
라이샤워 교수가 말한 세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자, 장보고의 혼과 피와 본능이 지금도 계속 우리 몸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과거만 묻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이제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의 동해안과 우리 나라의 서남 해안의 韓·中 수교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정기 여객선이 왕래하는 산동반도 위해항과 인천항은 해상 거리이고 단지 백여 해리에 불과한, 이를테면 손짓하면 서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역에 우리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가 해상국가로 알려져온 명예에 부끄럽지 않게 바야흐로 새로운 황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산동반도를 디딤돌로 삼아 황해와 동지나 해를 지배하였다. 韓·中·日 삼국의 해운과 국제 무역 활동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때 오늘날 우리에게 장보고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곧 오늘의 우리 나라 국력의 뿌리를 찾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세계 10대 국제 무역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도, 세계 유수의 조선(造船), 해운국으로 드날리게 된 것도, 나아가서 대표적인 종교, 문화, 체육 국가로 성장하게 된 것도 그 뿌리가 멀리 이 같은 우리 선조들의 피땀으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일찍이 선인들이 말한 '근원이 깊으면 멀리멀리 흐른다.'란 바로 이를 두고 말한다.
結 論
1천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중국 대륙 곳곳에는 이렇듯 신라인들의 숨결과 장보고의 발자취가 역력히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장보고는 고대 해상 민족이었던 위대한 한국인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다. 현재와 장래에 있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우리 나라 선단(船團)들과 국제 상사들의 효시(嚆矢)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저항적 에너르기를 한 차원 높여 大陸경영과 세계사의 개척(開拓)이라는 창조적인 이상으로 내연(內燃)시키다가 비록 비명에 갔을 망정 장보고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끊임없이 쫓아가야 할 소중한 역사적 표상이다. 이제 21세기 태평양 시대의 개막에 임하여 다시 우리 한 민족이 동북 아시아의 패자(覇者)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아시아의 평범한 나라로 전락하고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당대의 결심 여하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새로운 세계사의 개척은 지금도 만인의 뜨거운 가슴속에 살아 숨쉬어야 할 장보고의 비원(悲願)일지도 모른다.
* 참 고 문 헌 *
김문경·김성훈·김정천, 『장보고』, 李鎭, 1993
김태준·김승호, 『우리 역사 인물 전승』, 집문당, 1994
숙명 여자 대학교 한국사학과, 『숙명한국사론』,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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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2.12
  • 저작시기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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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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