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끼호떼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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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돈끼호떼는 누구인가

2. 돈 끼호떼속의 성서

3. 20세기의 돈끼호떼

본문내용

파악, 스페인 역사의 탐구등에 몰두하였는데, 이는 돈끼호떼의 재고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스페인 국민성의 근거이자, 무기력과 발작의 상징이며 신화로 존재했던 돈끼호떼가 스페인 국민을 무기력에서 활성화 시키는 인간 의지의 투쟁원이자 모범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돈 끼호떼는 자기 자신을 성립하고 그 존립을 위해 사회의 모든 전통, 관습을 우롱하면서 인간성의 한계를 넘는 최대의 의지사적 존재로서 묘사되어지고 있다. 그는 의지의 인간, 자기 외부와의 싸움은 바로 초인간적인 힘의 의지를 내보이는 자, 결국은 그리스도적 존재로까지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90년대의 대부분 작가들이 결론내리지는 못했으나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돈 끼호떼의 신화였던 것이다.
돈 끼호떼 작품속에 나타난 동양 이미지
차이란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다. 기독교나 동양의 道 사상도 유사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서양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중세의 신 중심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소위 인간 중심주의라고 하는 폭 넓은 우주관을 수용하면서 동서가 공유하는 유사성의 영역이 넓어지게 된다.
1571년 사이에 서반아인들에 의해 오늘의 필리핀이 점령되고 당시 필립 2세의 이름을 따 필리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제 동양은 서반아인들과 포르투갈인들에게는 약간 이색적인 자신들의 삶의 영역이 된다. 이리하여 서구의 문화도 사회현실도 동서양이 함께 교류하는 유사성의 광장으로 변한다.
르네상스에 들어와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이 판을 치고 서반아와 포르투갈의 많은 신부들이 동양으로 선교와 정복활동을 나서자 구라파의 상류층 사이에는 갖가지 진귀한 동양 물품들이 유행한다. 필리핀이 서반아에 정복되고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에까지 수많은 서반아,포르투갈 선교사가 왕래할 무렵 서반아의 일상생활은 동양물에 젖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상품만을 따라 동양으로 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영감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양탄자며, 고급 장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닐라 스카프에 동양식 머리빗을 꽂고 손에 부채를 든 모습이 마드리드 여인의 정장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돈끼호떼 2부에 나오는 후작집의 귀부인들의 모습에는 반드시 동양에서 온 진귀한 물건들이 표현되어 있다. 세르반떼스가 즐겨쓰는 진귀한 물품중에는 동양 진주가 있다. 이 동양 진주라는 표현은 당시 이미 상투어가 된 표현으로써 세상 가장 진귀한 것의 대명사였다.
문학에서도 르네상스의 서사시나 기사소설에는 흔히 동방에 대한 먼 나라의 이미지로써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서 영향받은 낯선 왕국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리오스또의 <성난 오를란도>가 있다. 이 걸작은 까따이의 공주 안젤리카를 불멸화 시킨다. 오를란도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두드러지는 작품의 대상이 되었던 안젤리까는 돈끼호떼에서는 둘씨네아로 표현된다. 세르반떼스의 안젤리까에 대한 생각은 그가 가지고 있던 까따이에 대한 연상과 같다. 르네상스의 모험정신과 이국 취향이 낳은 까따이의 이미지가 바로 안젤리까이다. 돈끼호떼는 안젤리카나 까따이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둘시네아가 산초의 말처럼 천하고 못생긴 시골처녀라고 해도 끝내 믿지않듯 돈끼호떼는 안젤리까가 이해할 수 없고 다다르기 어려운 여인이나 이 또한 아름다움과 고운 마음의 고향임을 한번도 잊지 않는다.
돈끼호떼에서 멀고 이상한 나라의 이름으로 동양의 어느 고장을 일컷는 듯한 이름은 수없이 많다. 인도의 환사제의 땅\',`동인도\', 뜨라뽀바나\'등이 그것이다. 모두기 해가 떠오르는 곳을 향해 있는 명칭들이다. 깐따야는 인공적인 이름이다. 세르반떼스는 이 이름을 상당히 구체적인 동방의 어느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나라를 현실과 꿈이, 동방과 서방이 하나인, 시가 있고 행복과 평화가 있는 인간의 고향에 대한 염원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돈끼호떼 2권의 서문에서 레모스 공작에게 바치는 글에서 세르반떼스는 `중국 황제의 편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가 자기 소설의 세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이나 중국 황제를 들먹인 이유로써 서반아 학계에서는 중국 황제의 편지를 들먹인다는 사실이 세르반떼스가 늘 쓰던 환상의 일환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즉 레모스 공작에게 애교있게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가장 황당무계한 사설을 늘여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세르반떼스는 그러한 농담이나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돈까호떼의 죽음과 더불어 거의 시들어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돈끼호떼나 세르반떼스의 마지막 인생의 꿈은 목가의 세계였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목가소설 갈라떼아의 2권을 끝내는 것이었고, 귀향하는 돈끼호떼의 소망또한 목 활이었다. 그러나, 목가적 꿈은 사실상 현실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것이 돈끼호떼의 마지막 사고요 세르반떼스가 `갈라떼아`의 2권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깐따야나 목가 생활 같은 이상까지도 체념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하필 중국을 이야기한 것은 세르반떼스의 중년이후의 소망이 중남미나 동양에 자리하나 얻어 나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르반떼스가 2권에서 몇번 중국을 언급한 것은 오히려 그의 문학적 명성을 감안한 허장성세다.
돈 끼호떼에서 까따이나 깐따야, 기타 유사 동양 지명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의 영향권에 속한다. 이러한 지명의 사용이 단순한 환상적인 측면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적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르반떼스는 돈끼호떼에서 꿈과 환상의 기틀로 까따이를 사용한다.
이들 이미지는 다른 어떤 상상적 지명과도 다를 것이 없는 마술적 차원이다. 그러나, 그런 마술적 세계는 치나라는 사실적 바탕위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즉 세르반떼스는 동양을 꿈만으로도 현실만으로도 보고 있는게 아니다. 그는 오히려 꿈속에서 보다 선명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 속에서 꿈의 무늬가 엄숙해지는 정경을 꿰뚤어보고 있다.
세르반떼스는 동양을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광기와 사실,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이뤄가는 깊은 인간 실존의 상황이며 소설이라는 픽션속에 참과 영원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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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1.23
  • 저작시기2003.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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