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불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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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국불교 - 얽혀 있는 두 힘 -

II. 중국불교 성립의 역사적 성격

III. 중국의 시대적 요청 - 불교의 전래 -
III - 1. 전래에 관한 전설
III - 2. 전래의 실제
III - 3. 제국의 멸망 - 사회 혼란 -

IV. 격의불교(格義佛敎)
IV - 1. 초기 중국 불교 신앙의 모습
IV - 2. 중국사상과의 만남 - 『이혹론(理惑論)』을 중심으로 -
IV - 3. 격의불교(格義佛敎)

V. 불교 토착화의 두 갈래 길 -남북조 불교- 시대배경

VI. 강남과 강북의 불교
VI-1. 강북불교
VI-2. 강남 불교

VII. 불교와 중국의 만남

- 참고문헌 -

본문내용

화도 최고조에 달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양무제가 초청한 서인도 출진의 진제(眞諦, 499~569)
산스크리트어로 파라마르타(Paramrtha)의 한역(漢譯)명이다. 인도 우자인의 바라문 출생. 주로 중기 대승불교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배우고, 546년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초청으로 많은 경전을 가지고 바닷길로 남방을 경유하여 난징[南京]으로 갔다. 때마침 국난을 만나 양나라가 멸망하였으므로,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귀국을 꾀하였으나 폭풍우를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해(南海)에서 죽었다.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홀로 경전 한역에 노력하여 그 역본이 대소 70부에 이르렀다 하나, 현존하는 것은 30부뿐이다.특히 유식 계통의 것을 정확하게 번역하여 《섭대승론(攝大乘論)》 《금광명경(金光明經)》 《구사론(俱舍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이 있는데, 오늘날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는 중국 4대 역경승(구마라집, 진제, 현장, 불공)의 한 사람으로 그가 번역한 경전들은 불교 사상연구와 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십칠지론(十七地論)』 등 유식학(唯識學) 경론을 번역하여 유식학 연구를 유행시켰다. 또한, 『섭대승론(攝大乘論)』에 의거하여 섭론학파가 성립되었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한혜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 [韓國思想槪論] 발표문, 2001, 대의는 인간의 마음[衆生心]이란 공간적으로는 전세계를 인식의 내용으로 하고, 시간적으로는 영원한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포함하면서 무한한 미래를 개척하며, 망상(妄想)과 깨달음의 두 가지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 마음의 위대성을 대승(大乘)이라고 하는데, 이 마음을 수행함으로써 망상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천방법으로서 진여(眞如)와 불 법 승(佛法僧)을 믿는 4신(信)과,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지관(止觀)의 5행(行)을 들고 있다.
등의 여래장
여래를 내장(內藏)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중생의 청정(淸淨)한 본마음을 가리키는 말.
계통의 논서는 대승 불교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필독의 이론서가 되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강남에서도 범진이나 순제 등의 인물들이 반불교적인 입장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강북과는 달리 그러한 공격이 글에 나타난 말로 한정되었으며 불교의 발전을 제한하거나 쇠퇴시킬 만한 명백한 행위로 나타난 폐불행위는 없었다. 이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계속 발전하였다. 『열반경』, 『성실론』, 그리고 『중론』에 대한 널리 퍼진 관심에서 볼 수 있듯이 남방 승려들의 기본적인 강조점은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이었다. 선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강북과는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논의와 사유의 전통은 당대로 이어졌다.
VII. 불교와 중국의 만남
한 제국의 붕괴로 인하여 중국인들은 혼란 속에서 사상의 공황감을 느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의 전래와 수용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본다. 중국인들은 인도와 서역출신의 불교인들의 협력 아래 불경 한역 작업을 통해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 결합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기반 위에서 열반(涅槃)
대승불교의 《대반열반경》을 연구 강경(講經)하며 모든 중생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증득(證得)하여 나타낸 것이 열반이라고 하는, 열반의 적극적인 핵이라 하였다.
, 성실(成實)
자아나 세계를 구성하는 정신적, 물질적 요소들은 영원히 존재하거나 변하지 않는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참된 존재성이 결여되었으며 따라서 공(空)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직관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도달한 것이므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과는 다르다.
, 지론(地論)
<<십지경론>>을 바탕으로 대승경전을 연구하였는데 유식학 계통의 섭론종으로 흡수된다. 훗날 화엄종 성립의 근간이 된다.
, 섭론(攝論)
<<섭대승론>>을 소의로 하여 성립된 학파. 유가행(瑜伽行)불교를 수용하여 대승론체를 하나의 체계로 조직하였다.
, 선(禪), 정토(淨土), 계율(戒律)
불교 종파의 하나로 소승률인 <<십송률>>, <<사분율>> 등과 대승률인 <<마하승지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등을 바탕으로 승단의 계율을 연구하였다.
등에 대한 다양한 학파적 연구를 이루었다. 이는 이어지는 수, 당대의 중국과 불교의 완전한 융합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중국인들은 불교를 통해 혼란속에서 낙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현학 등에 심취하던 지식인들은 불교가 지닌 고도의 종교적, 철학적 개념으로 인생과 세계에 대한 더욱 깊은 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전란과 분쟁의 상황속에 지친 대중은 불교에 대한 신념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분열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사회 통합의 사상으로 응용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불교를 통해 학문, 사색, 자기훈련, 그리고 문화적 소양을 키울 수 있었다.
불교 역시도 중국에게서 많은 영향을 얻게 되었다. 중국에 전래된 불교의 이론과 사상은 인도의 환경에서 생성된 것이지만, 중국에 전래되면서 중국 문화와의 접촉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 달관과 정신주의가 발달한 인도의 문화의 토양 속에서 그러한 성향이 강조된 인도 불교는 중국 문화가 지닌 현실주의와 조우하면서 '세속 자체에서 세속성을 초월한다'는 불교 본래의 불이성(不二(離)性)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중도적인 융합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바탕은 수, 당 시대의 풍부한 중국 불교의 완성의 토대가 되어주게 된다.
- 참고문헌 -
『역사속의 중국철학』
牧田諦亮 편,『弘明集硏究 1,2』, 京都大學人文科學硏究所, 昭和48(1973).
정순일 역, 『중국불교사』, 경서원, 1985.
카타마 시게오, 『中國佛敎史』, 경서원, 1992.
케네쓰 첸, 박해당 역, 『중국불교 상』, 민족사, 1991.
키무라 키요타카, 장휘옥 역, 『중국불교사상사』, 민족사, 1989.
http://100.naver.com/
네이버 백과사전.
http://kr.yahoo.com
/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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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1
  • 저작시기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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