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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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바흐
1.바흐의 가계
2.생애
① 학습시대
② 아른시타트뮐하우젠시대 (1703-1708)
③ 바이마르 시대(1708-1717)
④ 쾨텐시대(1717-1723)
⑤라이프리히시대(1723-1750)
3.작품개설
4.바흐의 작품 양식 요소

♠헨델
1.생애
2.헨델의 오페라
3.헨델의 오케스트라 음악
4.실내악

♠바흐 vs 헨델
1.음악가 집안 vs 외과의사 집안
2.독일인 바흐 vs 유럽인 헨델
3.교회음악의 대가 vs 세속음악의 대가
4.샐러리맨 vs 사업가

본문내용

그 탁색으로 지적할수 있다.
여기서 헨델은 퍼셀의 마스크나 앤덤의 전통에 직접 결합할 수가 있었 다. 코러스에 있어서 때때로 대위법적인 스타일을 섞는것도 퍼셀의 앤덤 에서의 접근을 나타내고 있다.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의 이탈은 오라토리오의 작곡와 병행하고 있다. <사울-Saul>과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Israel in Egypt>에서 그는 자기 목적에 가장 적합할수 있는 오라토리오의 형식을 발견해 냈다. 이 탈리아 오페라에서 획득할수 있는 모든 것이 비로소 오라토리오에 집중 되게 되는데 여기서 코러스가 그 본질적인 부분으로 사용되어 전 체를 유도하는 주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에서 이 스라엘의 예속이나 신의 심판, 이스라엘의 구원등은 코러스가 그리는 그 림에 의해서 표현되어, 개인적인 감정 표출의 장소는 거의 없다.
오라토리오의 형식와 내용은 그 연주 여행까지도 바꾸어 나갔다. 1746 년 헨델읜 특정의 유복한 계급만이 애호하던 예약연주 시스템에 의한 연주형식을 폐지하고 오라토리오의 연주를 부르조아 계급에게 개방했다. 당시 이와같은 공개 연주회는 영국에서만 가능하였다. 이와동시에 헨델 의 오라토리오에서의 코러스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바 하의 폴리포니와 달리 인간의 공동의식의 표현 형태를 이루게 되며, 또 한 선율의 감동적인 힘을 주기에 이르렀다.
3.헨델의 오케스트라 음악
: 12곡의 콘체르토 그롯소 op.6에 의해서 대표된다. 이들은 코렐리의 기법 을 따르고 있지만 헨델은 이 실내악의 형식에 한층 커다란 가능성을 가 져다 주었다. 이들은 일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어떤때는 교회 소나 타의 형식을 취하며 또 어떤 때는 프랑스풍의 서곡을 수반하는 모음곡 도 된다. 헨델에 있어 중요한 것은 확고하게 만들어진 형식이 아니라 즉 흥적인 창의의 직접성과 그 충실성이었던 것이다. 이들 콘체르토는 오라 토리오 연주의 사이사이에 연주되었으며 혹은 《왕궁의 불꽃놀이음악》 이나 《수상의 음악》처럼 옥외음악으로서 연주되기도하였다. 그의 오르 간 콘체르토 역시 각 오라토리오 안에서 연주되었으며, 이들은 수시로 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등 성악곡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오르간 콘체르토는 헨델이 행한 즉흥연주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들은 당시 오라토리오 연주와 마찬가지로 청중을 매혹시켰다.
4.실내악
: 실내악 가운대의 트리오 소나타 op.2는 교회 소나타이며 그들 테마의 대부분은 성악곡에서 가져왔으며 또한 성악곡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 트 리오 소나타 op.5는 실내 소나타이지만 이들은 오보에 소나타. 프루트소 나타. 바이올린소나타등과 함께모두 다 깊은 감정의 표출이 풍부한 성격 을 가지고 있다.
♠바흐 vs 헨델
1.음악가 집안 vs 외과의사 집안
-공교롭게도 바로크 음악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작곡가인 바흐와 헨델은 1685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들의 집안 환경은 너무도 달랐 다. 바흐의 집안은 대대로 이어온 가난한 음악가 집안으로 바흐의 장래 직업 역시 음악가가 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반면 헨델은 음악적 배경이라고는 전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외과의사이자 이 발사인 대부르주아 집안으로 헨델은 가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 로 유 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관 심을 쏟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부친은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기 위 해 법률 학교에 보냈지만 결국 헨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2.독일인 바흐 vs 유럽인 헨델
-바흐가 평생 독일 밖으로 떠나보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활동범위는 튀링겐-작센 지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언제나 궁 정이나 교회에 매인 생활을 하다보니 긴 여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인지 북 으로는 함부르크, 뤼벡, 베를린, 남으로는 칼스바트, 서쪽으로는 카셀 정도 에 간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헨델은 달랐다.
오페라 작곡가가 되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할레에서 함부르크로 갔고, 다 시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로마, 베니스, 시에나에 체류하며 이탈리아 오페 라를 배워나갔고, 파리도 둘러 보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영국을 선택하여 영국인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웨스트민스 터 사원에 묻혔다.
3.교회음악의 대가 vs 세속음악의 대가
-바흐와 헨델 모두 불세출의 건반악기 연주자였는데 둘은 기악 작품에서 도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작곡가의 극명 한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성악 장르에서이다. 바흐는 생의 대부분 을 교회에서 봉직했기 때문에 그의 성악 작품은 거의 교회음악이다. 300 여 곡의 교회 칸타타를 비롯하여 수난곡, 오라토리오 그리고 미사곡까지 작곡한 그는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교회음악의 대가였던 것이다.
한편 헨델은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천착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그리고 관객이 있는 오페라는 당시 바흐로서는 결코 상상치도 못했 을 분야이다. 헨델은 거의 평생을 오페라를 쓰고 무대에 올리는 일에 매 진했는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교회음악에서 조차도 이런 오페라적인 상 상력과 서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4.샐러리맨 vs 사업가
-바흐는 평생을 궁정과 교회를 위해 일하면서 거기에서 급료를 받고 살았 다. 바흐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고 그 울타리 안에서 작품 창작의 방법 을 터득했던 작곡가였다. 하지만 헨델은 평생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추구 했다.
귀족들에게 잠시 고용된 적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주로 작품 활동의 구속은 받지 않으면서 후원금을 받는 식이었다. 다시 말해 바흐가 일정한 급료를 받고 일했던 착실샐러리맨 작곡가였다면, 헨델은 오페라 를 작곡하고 흥행시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던 통 큰 사업가였다. 때문에 당시 헨델이 누렸던 부와 명성은 결코 바흐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이다.
경건주의자 바흐와 상업적인 오페라를 택했던 헨델. 오늘날 바흐에게 쏟 아지는 찬사와 존경은 헨델과 견줄 바 못된다.
그렇지만 바로크라는 큰 봉우리는 바흐와 헨델이라는 두 작곡가가 같이 서 있을 때만이 비로소 그 찬연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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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13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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