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오오가이의 『무희』를 통해서 본 일본 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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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 서론

Ⅱ . 본론
1. 일본 근대소설의 흐름과 근대적 성격
2. 작품의 성립과정
3. 『무희』의 특징
4. 『무희』에 나타난 계몽의식

Ⅲ .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고방식에서 서구의 이상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오오타는 작품의 종국에 이르러 서구적 근대인으로부터 다시 일본의 한 지식인으로 회귀한다.
오오타가 자유스러운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자아를 깨닫고 신문사의 해외 통신원으로 자신의 의식을 채워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에리스와 소시민적인 행복의 추구를 서구적인 근대인으로서의 탄생이라 한다면 아마가따 대신을 따라 다시 일본에 돌아오는 것은 서구적 근대인의 탈피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당시의 국비유학생으로써 국가는 개인의 감정을 뛰어넘는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오오타는 아이자와에 대해 고마운 마음과 함께 원망의 모습을 보인다. 진정한 나를 버린 것에 대하여 자책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것은 서구적 근대적 사고방식을 부러워하는 하나의 이상으로 생각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오가이의 일본에로의 귀향은 귀국 후 일본에서의 계몽적 활동과 관련지을 수 있다. 또한 서구의 근대문명에 대해 일본의 전통성에 의한 자아의식의 계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타는 오오가이의 비유적인 존재로서 자신이 서구에서 싹텄던 자유적 소시민적 생활도 버리고 에리스와의 사랑도 버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현실회귀의 강한 지침이었다. 이것은 가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것을 일념으로 한 봉건적인 메이지 일본의 한 청년이 서구의 문명을 보고 근대정신에 눈뜨는 과정에서 가정과 사회라는 인간적인 약속과 입신출세 등의 의미에 회의를 느끼고 근대적인 인간성을 추구하여 자애의 참뜻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結 論
본 논문은 처녀작인 『무희』의 작품 분석을 통하여 일본 근대소설의 특징인 근대적 성격에 대해 파악해보고자 하였다.
모리 오오가이가 서양의 계몽사상과 근대사상을 일찍 섭렵하고 특히 군의로서 독일유학을 통해 서양의 근대 사상 및 새로운 세계를 자각하기 시작하여, 일본의 봉건적 체제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개인적 자아의 발견에 노력하였다.
개인적 자아발견에는 많은 장벽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일본은 명치유신에서 러일전쟁을 거쳐 대정기로 들어가는 격변기였고 아직 봉건성과 무비판적인 권위보수에서 탈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국가와 국민의 일체감이라는 명목아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집단 지향적 상태였기 때문에 오오가이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었던 개성적 자아발견의 계몽적 독립적 사고는 공공연히 내부로 전진할 수 없었다. 또 그가 성장한 전통성과 무사도정신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문의 정신적인 지배의 영향을 피할 수 없고 육군 군의라는 관료생활의 범위에서 작가생활을 영위했다는 접, 동시대의 다른 작가와는 다른 관료적 권위, 제국육군이라는 권위를 연두에 두고 자신의 사고와 생활의 방편은 정해가야만 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오오가이는 무한적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한가운데서 자기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기 어려운 제약에 얽매어 있었던 것이다.
제약과 형식, 그리고 전근대적 봉건적 사고에의 불만을 내면적으로 승화하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개성적 자아를 외면적으로 표출하려고 했다. 작품을 통해서 사회를 계몽하고 자기자신의 정신세계를 토로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 작품은 자전적고백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주인공 오오타 토요다로오(太田豊太郞)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외동아들로,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연속으로 일등을 한 수재로 졸업한 뒤 某省에 근무하며 관장의 총애가 특별하여 과 사무를 좀더 자세히 조사하라는 하명으로 유학 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때의 그는 이름을 날린다. 나 집안을 일으킨다. 나 바로 지금이라는 마음이 용솟음쳐 베를린에 왔던 것이다. 그의 면학 요소 중에 「입신양명」이라는 명치적 요청이 포함되어져 있고, 그때의 명치정부는 또 그와 같은 재능을 구하여 이용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비판적으로 어머니, 집안, 관장에 따라 가기만 했던 오오타에게, 처음으로 순수한 자아가 눈을 뜬다. 이국에서 비로소 열린 자아의 눈뜸, 거기에 명치사회의 폐쇄적인 탄압이 되살아나 의식된다. 자아에 눈뜨긴 하였지만 그것을 지켜 관철하기에는 상당한 고난을 동반한다. 독립의 사상을 가지고 법과의 강의를 소홀히 하고 역사문학에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오오타는 첫째, 관장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면직이 된 원인이 거기에서 생겨나고 잇달아 에리스 문제가 발생한다.
오오타는 관료사회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따가라고 있던 자신에게서 눈떠, 베를린의 자유스러운 풍조 속에서 자아를 각성하여 자신을 신장시켜가려고 하였지만, 결국 일본 관료사회에 굴복해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근대적 인간으로서의 자각에 눈뜨면서도 오오타의 자유의 요구방법은 하나의 동경이었지,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요청이 아니었다.
또한 『무희』에는 베를린 찬미와 가난한 무희에의 동정이 병존했고, 관비유학생으로서의 본질은 본능적으로 기능을 발휘했다. 사상 면으로는 관료사회에 대립했지만 전생활적본질적으로는 대립했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무희』에 드러난 근대성을 확인해보는 과정에서 수동적이던 작가와 주인공은 각성하려 하나 관료사회라는 곳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음을 볼 수 있다. 오오타는 좀 더 자주적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사회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유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오타가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현대의 우리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는 좀더 능동적인 인간상의 요구와, 보다 심도 깊은 자기 고찰에 힘쓰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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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식, 「무희에 대한 연구 - 등장인물의 원형고찰을 중심으로」2000
김수진, 「모리오가이의 무희 연구」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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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1
  • 저작시기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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