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회의 역사적 성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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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귀족(제)사회론

3. 관료제사회론

4. 문벌사회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기간'으로 직계로 따져 2품 이상의 宰相이 얼마나 오래 배출하였나만을 기준으로 하여 살펴본 결과 길어야 5대에서 그치며, 대부분은 2 3대에서 머무르고 있음을 볼 때, 또한 2대만 득세하여도 名家로 지칭될 수 있었던 예로 보아 당시에 가문의 영광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고려의 문벌은 혈통·가문의식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强度는 의외로 미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고려사회에서는 新人이나 신흥가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나 배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려시기 관인등용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는 '座主-門生'제의 성행 또한, 과거라는 시험을 계기로 비로소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므로 양자가 결합되는 데 상대방의 門地 따위는 전혀 개재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통혼사례의 경우도 폐쇄적이 아니라, 신흥가문과의 거리낌없는 통혼사례가 쉽게 발견되고 있다
) 유승원(1997), 앞 글, 194 206쪽.
고 지적하고 있다.
그가 위의 사례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규정지은 門閥社會란, '귀족사회처럼 특정 혈통이나 가문에 대한 세습특권이 법제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사회적으로 개인의 능력보다 가문의 배경이 우선시되거나 적어도 그에 못지않게 중시되어 상류층에 대한 우대책이 공공연하게 입안되고 실시될 수 있었던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 유승원(1997), 앞 글, 212쪽.
나아가 그 근거로서 첫째, 父祖의 지위에 따른 자제들의 학교 진학에 대한 차별, 둘째, '蔭 制'의 존재, 셋째, 권력집중식의 권력구조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唐 전기의 경우처럼 문벌세력 때문에 과거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지 않은 고려는 분명 한 걸음 앞선 사회였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조선사회처럼 개인의 능력이 가문의 배경보다 높이 평가되지 못하였다는 측면에서 덜 발전된 사회였다고 이해하고 있다. 조선시기는 고려시기처럼, '門閥'의 존재와 '門地'의 존중 풍조가 있었지만, 재상의 일족이 관직을 독점할 수 없었고, 관계의 진출이 뚜렷한 가문의 배경과 官位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개인의 품행·덕망·학식 등이라는 점에서 고려와 조선은 차이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 유승원(1997), 윗 글, 213 214쪽.
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東아시아 사회의 '貴族制'가 서구 사회에 비하여 일찍 종식하였다는 면에서 사회발전의 선진성을 들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노비와 같은 천민층이 19세기까지 강고하게 잔존하였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參考文獻>
1. 著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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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學會 編, 1969, 韓國史의 反省 , 新丘文化社.
韓國經濟史學會 編, 1970, 韓國史時代區分論 , 乙酉文化社.
讀書新聞社 編, 1975, 韓國史의 再照明 , 民聲社.
韓國史硏究會 編, 1981, 韓國史硏究入門 , 知識産業社.
鄭昌烈 외, 1981, 韓國學硏究入門 , 知識産業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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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01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8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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