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신앙에 관하여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산신신앙에 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 문제의 시작

2. 산신신앙의 배경과 기원에 대한 재검토
2-1). 경제설(경제설)
2-2) 심리설(심리설)

3. 역대 왕조의 산신신앙의 계승과 성격
3-1)고대의 산신신앙에 대한 검토
① 가야의 조령산신신앙
② 고구려에서의 산신신앙
③ 백제의 산신신앙
④ 신라의 호국산신신앙
④-가. 초기국가 단계 - 조령신에서 호국신으로
④-나. 정례화된 국가적 대행사와 접신
3-2) 풍수지리설과 고려왕조의 산신신앙 계승
3-3). 민심과 함께 한 조선의 산신신앙

4. 맺는 말

본문내용

, 肅宗 二十一年 六月 丙申조, 英祖 四十一年 十二月 己酉조 기사를 참조
고 하였는바 합리적 유교적 관점에서 귀신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부정했던 데서 나아가 산신신앙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관념적인 산신에서 구체적인 神에 동의하고 섬겼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선조의 이념에 비추어볼 때 특이한 점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요약컨대, 삼성단 단군숭배에서 보여지는 조선왕조의 산신신앙 계승은 여태껏 정부 주동적인 산신신앙과는 다르게 지역민 나아가 일반 백성들의 신앙을 충분히 끌어들임으로써 왕조 안녕을 꾀한 점에서 토속적이고도 민중적인 성격이라는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4. 맺는 말
이상에서 역대 왕조의 산신신앙의 출발과 계승, 그리고 성격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애니미즘과 토템적 사상에서 출발한 산신신앙은, 종교화 체계화되고 합리화과정을 거치기 전에 이미 종교적 영역에 깊이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시사상 혹은 원시종교로서의 산신신앙은 오늘날의 종교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시 가장 절실했었을 질병을 퇴치하는 문제를 비롯해서 食·衣·住를 해결하고 天災地變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대한 관심사였다. 한편, 지배권력은 통치기반을 안정화시키는데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요구 즉, 정서적 안정과 실질적 문제 해결, 나아가 국가적 기반을 이루는데 있어 원시신앙은 절실한 것이었으며 그 가운데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서 산신신앙은 고유한 원신신앙으로 굳건히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산신신앙이 단순히 원시적 행위에 머물지 않고 역대왕조를 거치며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며, 오늘날에도 주변의 이름난 산에서 燭을 밝히며 기도하는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 토착신앙의 원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산신신앙의 계승에 있어서 성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지극히 호국적이라는 것이다. 심리설에 기반한 산신신앙이 국가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체계화 되면서 국토를 옹위하고 나아가 외적을 물리치는데 산신의 陰佑에 대한 믿음이 그러한 성격을 갖추게 했다.
둘째, 종교적 역할을 들 수 있다. 본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산신신앙은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儒彿이 전래되기 전에는 더욱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은 물론이고 역대, 가장 합리적 사고와 통치원리에 기초한 왕조로 일컬어지는 조선에서조차 약간은 불합리한 산신신앙의 존재를 인정하고 祭를 행했다고 하는 것은 퉁치적 기능외에도 정서적 안정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 하겠다.
셋째, 민중의 직접적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祈福적인 성격의 산신신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며 영일현의 선도산성모나 고구려 백제, 그리고 조선조까지의 기우제 혹은 기청제 보았듯이 기상적 재해나 역병이 나돌 때, 민중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데 있어서는 외래종교외에 토착적인 산신신앙이 더욱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아진다.
넷째, 왕조의 통치수단으로서 각종 산신제례는 큰 역할을 수행했다. 정복국가로서 軍·官·民을 일치시키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국가적 결속은 무엇보다 우선이었는데 국가수행의 산신제례는 이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왕권과 왕실을 안정화시키는데 있어서도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구들이 산신신앙이 폐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역대 각각의 왕조들은 왕조의 특성과 자체의 요구에 맞게 변형시키거나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近代로 오면서 國行祭禮였던 名山大川의 제례는 중지되고 민간의 손에 넘겨졌으며 大祭는 워낙 비용이 많이 들므로 민간에는 어쩔 수 없이 규모를 줄이게 되고, 드디어는 일반의 관심이 줄어들어 폐지되는 일이 많아졌다. 한편, 현대인의 생활관념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종래와 같은 제사의 규칙을 지킬 수가 없고 神祀의 결과에 대해서도 懷疑的이어서 그만큼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오늘날 수많은 종교와 함께 산신신앙의 계승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산신신앙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 각종제전에서 성화가 신에서 체화되기도 하고 개개인의 大小事에 있어 전통양식인 산신에 의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사회생활 패턴과 양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과 관계없이 한국 고유의 정서로 이미 산신신앙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전통에 대한 향수도 크게 작용,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삶이 없고 불안한 현실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이미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산신신앙의 계승이야말로 혁명적인 상황이 급격하게 도래하지 않는 이상 산신신앙의 전통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 참고문헌 ■
1. <<三國史記>>
2. <<三國遺事>>
3. <<高麗史>>
4. <<新增東國輿地勝覽>>
5. <<朝鮮王朝實錄국역자료>>, 영남대학교 도서관 전자정보, 2003.
6. <<增補文獻備考>>
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1>>, 1993.
8. 高大民族文化硏究所, <<韓國民俗大觀-民間信仰·宗敎>>, 高大民族文化硏 究所 出版部, 1995.
9. 高大民族文化硏究所, <<韓國文化史大系Ⅵ-宗敎>>, 高大民族文化硏究所 出版部, 1978.
10. 孫晋泰, <朝鮮 古代 山神의 性에 就하여><<朝鮮民族文化의硏究>>, 乙 酉文化社版, 1948.
11. 이이화, <<역사 속의 한국불교>>, 역사비평사, 2002.
12. 강재언, <<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한길사, 2003.
13. 崔琮錫, <한국 토착종교와 불교의 습합과정><<民族文化論集5>>, 청주 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7.
14. 서영대, <한국고대종교 연구사><<해방후 50년 한국종교 연구사>>, 도 서출판 창, 1997.
15. 강만길, <李朝時代의 檀君崇拜><<李弘稙博士回甲紀念 韓國史學論叢 >>, 1973.
  • 가격1,0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4.11.08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261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