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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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낙태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낙태의 정의

2. 낙태 방법 및 종류

3. 낙태 요인

4. 낙태 통계 및 실태

5. 낙태 관련법률 및 규제

6. 낙태와 상속과의 관계

7. 낙태의 문제점

8. 낙태의 현실적인 대안

9. 사례 및 읽을거리

본문내용

낙태를 하는 경우에는 6월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고(228조) 타인의 동의낙태의 경우에는 6월이하의 유기금고나 태 30 이상으로 벌하고 이로 인하여 임부가 사망하면 1년 내지 3년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의사, 산파, 약상의 경우에는 1등으로 가중하여 처벌하기로 하였으며(229조) 타낙태는 1년 내지 4년의 유역금고에 처하고(230조), 악의로 임부를 구타하여 타태케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역금고에 처하며 타태의 고의가 있으면 경징역에 처한다(231조). 그리고 전 2조의 죄를 범하여 부녀가 질병사상에 이른 경우에는 구타상해의 각본조의 형과 비교하여 중한 형으로 처벌한다(232조). 일가의 치욕과 출생후의 양육등을 고려하여 부녀 자신, 부, 조부모가 낙태죄를 범한 때에는 각조에 2,3등을 감형하여 처벌한다(233조). 그리고 경죄의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있다(234조).
읽을거리2) 조선시대 낙태죄
조선시대 이전에는 형법에 관한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 조선태조는 건국과 동시에 이러한 형법전의 정비를 급선무로 내걸고, 모든 범죄를 처결함에는 반드시 대명률을 적용할 것을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대명률은 포괄적으로 계수되었다 .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기본법으로는 대명률이 작용하고 있었다 . 대명률은 낙태죄를 타태죄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처벌규정을 두고 있었다.
『무릇 구타를 함에서 낙태를 하게 한 자는 장 80 도 2년으로 처벌한다. 보고기간 내에 태아가 타태사망한 것과 수태후 90일을 초과한 것으로서 형체가 이루어진 것이면 타태죄로 처벌한다. 비록 구타로 인하였더라도 보고기간외에 태아가 타태사망한 경우와 수태후 90일 이내로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아니한 경우면 범인을 각각 구타상해의 본조문에 좇아 논죄하고 타태죄로 처벌하지 아니한다.』
대명률의 규정은 타태죄의 규정에서 행위의 주체를 타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낙태의 방법에 있어서도 구타로 인한 낙태만을 기술하고 있으며 태아의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구타상해로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동규정은 타태를 규정함에 있어 구타의 결과로 인한 타태만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태아는 임부의 신체의 일부를 손상한것으로 취급하여 구타상해로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외 자낙태에 관한 규정은 없다.
명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당률에 있어서는 낙태에 관하여 『낙태를 한 자는 도 2연에 처한다. 타태는 보고기간내에 자가 사망한 것이며 만약 보고기간이 지나서 죽으면 구상죄로 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명률과 본질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이 명률과 502조에 이르는 당률가운데서 낙태에 관한 유일한 규정들이다 .이러한 규정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방법이 구타의 결과로 인한 것임에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낙태에 대한 개념은 임부가 아닌 자가 행하는 것으로서 상해죄의 일종으로 관념되어 있다는 것이다 . 특히 동규정들이 상해에 관한 죄인 투구조에 규정되어 있고 또 당률주석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 타인태는 잉태중에 출생하기 전에 구타로 떨어지는 것이다. 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타태라는 것은 모의 고한내에 자가 죽는 것이고 비록 자가 다쳤으나 모의 고한이 지나 사망하거나 혹은 고한내에 낙태되어도 자가 형체를 이루지 못하면 손상죄로 논하지 타태죄는 아니다........ 모두 모로서 정죄하지, 자를 근거로 존비를 정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고한은 다만 모를 보호하는 것이지 자로서 정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자를 해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미 타태는 타인이 구타로 인하여 산모를 해칠 의도로 행위한 결과 태아가 떨어진것만을 예정하고 있으며 태아의 낙태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타태는 예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조로 인하여 보호되는 것은 산모이지 태아가 아니다.
이상과 같이 태아를 떨어뜨리는 것은 목적으로 하는 낙태를 벌하지 않은 이유는 법의식으로부터 찾아볼 수밖에 없는데 특히 태아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나이계산을 0세가 아니라 1세로 함으로써 태아인 동안을 나이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당률의 주석등에서 태아라고 하지 않고 자라고 한 점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태아자체를 떨어뜨리는 낙태는 낙태로서 규율하지 않고 영아살해에 가까운 유형으로 규율하고 있었는지가 의문시되나 거기에 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 있어 형법의 적용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대명률의 조문과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 사건에 대하여서는 대명률의 가장 유사한 조문에 따라 해결하였으며 또한 대명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구체적인 사건에 대명률을 적용할 경우에는 그 조문이 조선의 사정과 인정에 적합한지 또는 이론적으로 타당한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의논하여 중의에 따라 적용여부를 결정하였다. 특히 세종에 이르러서는 흠휼정책을 강조하였으며 가족제도에 관련한 사항은 유교적 사상을 강조하여 이에 따른 해결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 그리하여 낙태에 관한 문제는 바로 이러한 유교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회가 농경사회였었고 또한 출산되어도 사산이거나 혹은 전염병등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본다면 양반사회에 있어서는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유교적 의식과 평민내지는 노비에 있어서는 노동력의 확보라는 사실적인 면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낙태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예외적인 경우 낙태를 한다면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는 이것이 가문의 흥망성쇠 또는 명예에 관련되는 가족 내지는 문중의 문제이고, 따라서 이러한 사항은 주로 관습형법에 일임되어 있어서 이는 문중의 소관으로 다루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태교사상과 관련하여 보아도 이미 형체를 이룬 태아는 독립한 인격체로 다루고 있었고 태아의 보호는 이러한 태교사상 혹은 유교관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명률이 작용할 여지는 없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조선시대의 형률에 태아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낙태규정이 없는 것은 오히려 생명존중의 사상을 기조로 하는 가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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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10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2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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