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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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모스 세미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문사역

Ⅲ. 본문의 구조

Ⅳ. 주석

Ⅴ. 결론

본문내용

탕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여기에서 이것을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랑하는 신앙에 대하여 예수는 그들이 이미 자기상을 받았노라고 말씀하신다(마6:5).
6-11절)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빛나는 이빨’이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표현에 대한 해석은 바로 뒤에 나타난다(빵의 부족). 과거에 이루어졌던 모든 심판들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돌아옴()이었다. 이 회개의 요구는 성서의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신4:29-31, 30:1-10, 호2:4-17, 14:2, 사10:20-27, 렘32:30-42, 왕하17:22). 볼프는 본문을 요시아 시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6-11절까지에서 반복되는 와 를 당시의 유행하던 어법(usage)으로 생각한다. H.W.Wolff, Ibid., p.220.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역과 언약 파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언약적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함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처방을 내리셔야 했던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극단적인 파멸의 재앙을 입게 될 것임이 선포된다(암 7:1-6; 7:7-9; 8:1-3).
아모스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열심히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 제사는 과거에도 그들의 재앙 가운데서 드려진 것이었다(암4:4-5, 5:21-24). 그러나 이 제사는 참다운 회개를 내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의 실현만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실제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공허한 제사만을 드렸다.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관계가 없었고, 이것은 사회 윤리적 불의와 죄악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충성을 행하지 않은 것이다.
12절) ‘하나님을 만나다’라는 표현과 ‘예비하라’라는 표현은 시내산에서의 신 현현에 나오는 표현들이다(출19장). ‘예비하라’는 명령은 언약 체결을 위한 제의 예식에서 제의적으로 합당하도록 하라는 명령이다(출19:11, 15, 34:2).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라는 것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신현현적 만남을 의미한다. 이제 이스라엘이 새롭게 받게 되는 징벌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징벌은 과거의 것과는 달리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암5:17-20, 7:8, 8:2, 9:1-4). 이번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현현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예비하라’는 표현은 신현현의 준비단계로서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를 언급하는 것이며, 그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옴을 의미하고, 이 징벌을 각오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볼프는 12a절의 ‘이것을 행한다’는 것을 요시아왕의 벧엘 침공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12b절의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된다고 주장한다. Ibid., p.222.
예레미아스는 (이와 같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이 단어가 ‘같게’(same) 또는 ‘유사하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11절과 연결되어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경우에 12절의 의미기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자들이 있으며, 결국 그들은 그들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J.Jeremias, Ibid., p.74-75.
13절) 이 절은 5:8-9절, 9:6절과 내용이 비슷한 송영이다. 이 구절의 형식과 내용을 볼 때, 이 구절이 앞의 내용을 이어 받는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이 예언서를 제의 때에 낭독할 목적으로 삽입한 후대의 첨가구로 보인다.
볼프는 여기에서 ‘바람을 창조하였다’함을 , 즉 영(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것으로, ‘아침을 어둡게 하다’라는 표현을 심판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높은 데를 밟는다’는 것은 벧엘 성소를 밟는 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H.W.Wolff, Ibid., p.223-224.예레미아스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Jeremias, Ibid., p.79.
예레미아스는 이 구절의 기능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왕상8:33절 이하에 나오는 하나님의 특별한 행동을 표현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첫 번째의 기능을 넘어서서 각각의 내용들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J.Jeremias, Ibid., p.75-76.
Ⅴ.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결정적으로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의 진심된 마음이 없는 제사였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회에서 수많은 예배들이 드려지고 있다. 그러나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려 노력하는가는 의문시 된다.
예배학에서 말하는 예배란, “하나님의 계시와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의 응답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이에 대한 응답이 뒤따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계시가 없는 예배란 참된 의미의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예배에는 인간의 응답은 수 없이 많으나 하나님의 계시는 찾기 힘들다. 우리는 이런 계시를 찾아볼 수 없는 예배에 매일 같이 참여하면서 자신은 교회에 나가고 예배에 참석하였기에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만족해한다. 오늘날의 이러한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아모스는 끊임없는 조롱의 말을 전한다.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그리고 이런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결국 우리도 하나님의 이러한 부름심에 응답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같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모스는 경고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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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4.18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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