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이방(異邦)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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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과 이방(異邦)과의 만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근대 사회에 대한 개관
2. 조선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
1)조선과 서세동점
2)조선 선교의 시도
3)서양인과의 접촉
3.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1)병인양요
(1)배경
(2)진행․경과
(3)프랑스 원정 실패
2)신미양요
(1)배경
(2)진행
(3)경과
4. 윤요호사건과 강화도 조약
1)윤요호 사건
2)강화도 조약
Ⅲ. 결론

본문내용

에서 청나라의 종주권을 배격함으로써 청나라의 간섭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자행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제2 조에서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 정부는 20개월 이내에 부산과 그 밖의 2개 항구를 개항할 것을 규정하고, 2개의 항구의 선정은 일본의 임의에 맡길 것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동해 안에는 원산이 서해안에는 인천이 각각 선정되었으나 다만 인천항으로부터의 미곡 수출만은 금지 되었다. 또한 제4조와 제5조에서는 개항장 내에 조계를 설정하여 그 곳에서의 일본 상인의 자유로운 무역과 가옥의 조영 등 거주의 편의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였다. 제7조에서는 일본이 조선의 연해, 도서, 암초 등을 자유로이 측량하고 해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제8조와 10조에서는 개항장에서의 일본인 범죄자들에 대해 현지에 파견된 일본 영사가 재판한다는 치외법권의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조약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같이 일본은 개항장을 통해서 일본인을 조선에 침투시키고, 여기에 조차지를 확보하여 일본 세력의 전초지로 삼고자 하였다. 아울러 치외법권을 설정하여 일본인 상인들의 불법적이고 방자스런 행동에 대해서 조선의 사법권이 미칠 수 없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불평등한 조약으로 하여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문호 개방하게 되어 서양을 신문명을 수입하게 되었고 열강의 침략을 받는 시발점이 되었다.
Ⅲ. 결론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한 이후 국제관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두 축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도 세력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한 축이 무너진 현재에는 각각의 주권국가들이 세계화라는 탈을 뒤집어쓴 채 자국의 이익과 세계패권의 장악을 위하여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마치 사자가 왕이던 숲에서 사자가 죽자 여우, 늑대,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된 것이다.
그 실례로 먼저 미국은 세계 제1위의 패권국가자리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 모든 국제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의 이른바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각종 경제적 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미국의 영향권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며, 중동지역에는 미국의 독자적 결정에 따는 무력행사도 서슴치 않는 등 그야말로 탈냉전이라는 호기를 미국의 세계패권주의로 이어 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펼쳐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잠자는 호랑이에 비유되던 중국도 탈냉전을 계기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서 국제관계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을 취하고 있다. WTO에 가입한 이후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해나가고 있는 중국은 최근 일본보다도 먼저 유인우주왕복선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일본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긴장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많은 위성국가들을 독립시킴으로써 과거보다도 세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동유럽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천연가스와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발달된 과학기술은 폴란드나, 헝가리, 체코 같은 동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의 부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미국의 세계패권주의에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화폐를 단일화시킨 이후 유로의 가치가 달러의 가치를 앞지름으로써 유럽연합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룩하였다는 판단 하에, 이제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을 점차 늘리면서 국제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일본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태평양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사회내부 문제인 실업과 고령화 사회로 인한 여러 문제들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듯 보이나, 군사적으로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하여 군사대국으로 향한 준비들을 이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외교사, 특히 우리나라의 외교사를 우리나라가 주체가 된 관점에서 바라보고 외교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우리 스스로를 서양의 열강들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제국주의 시대의 단순한 해외 식민지의 하나에 불과한 객체적인 존재로서 인식해왔다. 이러한 관점은 서양 중심의 외교사 접근방법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존재에 대한 독자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리 중심적 사관(史觀)을 가지고 외교사를 연구 할 때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사상과 전략으로 대응하였으며,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이득과 손실을 남겼는지를 분석 할 수 있다.
우리는 중국과 외교를 수립하면서 중국의 요구에 따라 대만과의 수교를 단절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중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즉 다시말하면 우리의 주체적인 외교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탈북자 처리 과정에서 중국이 우리동포를 우리나라와의 협의도 없이 자체적으로 처벌하는 등 우리국민의 기본적 인권인 신체의 자유조차도 중국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부끄러운 현실을 감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들을 되풀이 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을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외교적 힘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 문헌
"Historie de L' Eglise de Coree", Ch. Dallet, Paris, 1874 ; 샤를 달레 원저, 『한국천주교회사』, 안응렬·최석우 역주,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제정 러시아의 고려인』, 박보리스, 모스크바, 1993
『근대한미관계사』, 이민식, 백산자료원, 서울, 2001
『조선왕조사』, 이성무, 동방미디어(주), 서울, 1998
『근대한미관계사 : 한미전쟁편』, 김원모, 철학과 현실사, 서울, 1992
『근대 동양외교사』, 성황용, 명지사, 서울 1992
참고 인터넷사이트
- 강화도 홈페이지 www.kanghwado.net
[그림 1]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침입 경로
[그림 2] 신미양요 당시 미군의 침입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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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5.05.23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8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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