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생애 북한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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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의 생애 북한학개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Ⅰ. 집안내력과 성장과정
Ⅱ. 빨치산 무장 항일활동
Ⅲ. 해방과 정권수립 과정
Ⅳ. 한국전쟁과 대대적인 정적숙청
Ⅴ. 독자노선의 표방과 주체사상
Ⅵ.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결론

본문내용

의와 제국주의의 주구로 맹비난하던 서방세계와 남한의 도움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주체’와 ‘자주’를 현실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는 그들을 마침내 국제사회에서 완전 고립으로 내몰았다. 북한이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것은 물론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엄청난 악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폐쇄적인 태도에도 기인 한다. 자립경제노선은 해외무역을 둔화시켜 국제경제체제에서 스스로를 이탈시켰고 대미 적대관계는 그들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결국 오늘날 북한의 처절한 실패는 이러한 주체사상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Ⅵ.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오늘날 북한 체제가 결국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실패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의 전후복구는 남한보다 훨씬 빨랐으며 ‘천리마 운동’이나 ‘평양속도 창조운동’은 남한의 ‘새마을 운동’ 못지않게 큰 성과를 거두어 한때 제3세계 국가들의 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적어도 북한은 1960년대까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남한보다 우위에 서있었고 1970년대까지도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북한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후반, 잇따른 테러행위와 외채 상환 불이행 등으로 국제신용이 떨어지면서부터였다. 1968년 청와대 침투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1970년대 초반 땅굴 사건과 1974년 대통령 저격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등 북한의 대외 강경책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혁명역량’을 강화시키기는커녕 국제적으로 ‘테러국가’라는 이미지만 각인시켰다. 거기에다가 북한 외교관들의 밀수행위를 비롯한 불법행위, 외채 불이행 등은 북한이 점차 국제사회에서 소외당하기에 충분한 행위였다.
그들의 이러한 고립은 스스로 ‘주체’를 표방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경제특구 등을 개방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하는 가운데 북한은 ‘합영법’과 같은 소극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었다. ‘자력갱생’을 통한 ‘자립경제’노선은 그들을 국제무역에서 소외시켜 점차 국제경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고립은 몇십년에 걸친 미국의 경제제재에서 비롯된 점도 없지 않다. 세계 경제의 중심국인 미국이 50년 가까이 북한을 ‘적성국가’로 규정해 온갖 경제제재를 가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활동을 막아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한의 몰락은 자신들 스스로의 책임이 가장 크다.
북한을 실질적으로 50년간 통치한 사람이 김일성이니 북한의 몰락은 곧 김일성의 몰락이나 다름없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김일성의 1인체제가 공고해지고 ‘주체사상’이 본격적으로 주창될 시기부터 북한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물론 북한의 몰락이 꼭 전적으로 김일성의 잘못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고 최강대국 미국을 적으로 하면서 사회주의 진영이 한순간에 붕괴해린 상태에서 오늘날까지 북한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김일성이 그만큼 튼튼한 체제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실속 없는 ‘주체’와 ‘자주’를 내세우면서 스스로를 고립화시켰고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우상화&신격화에 몰두했으며 지속적으로 대남 강경책을 고집해 실질적인 통일논의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큰 과오라 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공식적으로 김정일이 후계자로 전면 등장했다. 실질적으로 1980년 후반부터는 김일성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김정일이 국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도 계속 국정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살아생전에 ‘지상낙원’을 이룩한다던 공산주의 진영이 붕괴하는 것을 목도했고 자신이 건설하고 이룩한 ‘주체조선’이 기아상태에 빠져 수백만이 아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죽기 직전까지도 미국과 ‘핵’을 놓고 공방을 벌였으며 전쟁 직전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일성에 의해 건설된 나라였고 김일성에 의해 망한 나라였다. 그는 사망 직전까지도 한반도에서 사회주의체제의 승리를 장담했지만 실제 자신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 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1994년 7월 9일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주하게 활동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 그의 나이 82세, 북한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지는 49년만이었다. 그는 레닌이나 모택동과 같이 미이라의 형태로 사체가 보존되고 있으며 아들 김정일이 집권하지 10년이 되가는 지금도 ‘공화국의 영원한 수령’등으로 추앙 받으며 사후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반도의 북쪽을 반세기동안 통치한 지도자 김일성- 그가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 받을지는 아직 유보상태라 하겠다.
결론
레포트를 쓰면서 객관적으로 김일성의 생애에 대해 써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김일성=북한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남한에 살면서 북한 (김일성)을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찾아보아도 그 사실성이 의심스러운 북한의 선전자료 아니면 반공논리로 가득한 북한폄하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지식이 많지 않은 이상 참고한 자료의 관점을 많이 따르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객관성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해서 북한(김일성)에 대한 연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북한(김일성)의 역사 또한 우리 민족의 역사이며 결국 우리가 껴안아야 할 ‘반 쪽의 역사’이다. 앞으로 다가올 통일 시대에 큰 혼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대한 연구나 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레포트를 작성하느라 김일성에 대해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밖에 없었던 내가 비교적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워낙 중요한 인물이고 그러다보니 기술할 것이 원체 많아 겉 핥기 식으로 다룬거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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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5.06.15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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