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제작 과정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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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홀여사와 조선훈맹점자

Ⅱ. 3-2점자

Ⅲ. 훈맹정음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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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로학우안(3): 11안 중에서 중성을 キハクサヌノヨユコタ로 고친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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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안에 대한 비교 검토
① 아무리 유서가 깊다 해도 필요한 특색이 없는 한 이를 취하지 아니한다.(제1, 제5안)
② 종성을 따로 만들어 자모수를 늘이는 것은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기억에 곤란을 더할 뿐이라. 이를 취하지 않기로 한다(제 3, 4, 10안)
③ 종성이 초성과 구별이 없으면 난삽하다.(제 1, 2, 5, 7, 9안)
④ 기억에 곤란한 것은 교육에 큰 지장이 온다. 외국 문자를 징검다리로 할밖에 방편이 없는 것은 이를 취하지 않기로 한다. (제 1, 2, 3, 4, 6, 7, 8, 12안)
⑤ 실제로 점수가 많이 찍히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다.
실제로 박두성 선생은 성경 유다서, 조선어독본, 일본의 교육문, 통신부의 주의서를 12가지 안으로 점역하여 비교한 바 2,344자를 기록하는데 제7안이 가장 적어 11,644점이었다. 이에 반해 제8안이 12,249점으로 605점이, 제11안과 12안이 12,452점으로 808점이 많았다. 그 나머지는 모두 1,577점이상으로 5,095점이 많다.
그러나 제7안이 제8안은 초종성이 구별이 없고 기억에 근거가 없었다. 전문 2,344자 5,921자모에서 808점쯤 많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하여 제11안을 쓰기로 하였다.
⑥ 제12안은 제11안 전환식을 중성만을 차례로 바꾸는 것이 더 편리하겠다고 노학우가 주장하였다.
박두성은 맹인들은 물론 정안인 부인 몇 사람과 어린이들까지 시험한 결과 제11안의 자형 전환 순서가 휠씬 편리한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다년간 맹생을 같이 지도하고 있던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인 맹인 네모도(根本內藏), 오오야마(大塚米藏) 양씨도 한 자리에서 제11안과 제12안 두 안의 중성을 설명하여 들려주고 기억을 더듬게 하였는데 제12안보다 제11안이 휠씬 기억이 쉽다고 단언하였다.
3.3 채택
1925년 12월 박두성 선생은 맹아부 2, 3학년 학생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3·2점식 구안을 먼저 설명해주고 다음에 전환식 새 안을 이야기하여 들려주었다 점배당. 기억법, 특색들을 설명한 것이다. 한 주일동안의 말미를 주고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여 가지고 그 어느 것이 보다 편리한가를 지적하라고 했다. 이것도 아주 자유에 맡긴 것이다. 일문 점자는 다들 알고 있었고 3·2점씩을 알거나 말거나는 자유이며 일부터 알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 주일 후에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신 구식안 두가지를 다 알지 않고 따라서 가부발표를 못한 자 2명
신안을 알지 않고 구안을 찬성한 자 3명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으면서 신안을 열렬히 지지한 자 11명
자기가 이미 아는 것이니까 그것을 찬성한다는 것보다는 구안도 알고 신안도 알아 구안에 애착이 더 있었을 것임에 불구하고 신안을 지지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 후 경향에 헤어져있는 40명에게 대하여 이미 3·2점식을 쓰는 사람에게는 3·2점식으로 또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본어로 점자변경통지서를 보낸 후 의견을 청취하였다. 이에 대한 회답은
아무 주장이 없는 것 3명
구안 3·2점식 찬성 1명
신안 전환식 찬성 9명 이었다.
또한 1925년 2월에 한번 조사한 채로 내버려두었던 3년생을 1년이 지난 1926년 10월에 다시 조사하니 8명 중에
어느 정도 못한 자 2명
신안을 지지한 자 6명
2년생에게 7월에 신안을 알려주었고 10월에 와서 3·2점식을 가르쳐준 후에 조사하니 8명중에
아무 주장 없는 자 1명
신안 찬성자 7명
일년생 9명에게 9월에 신안을 가르치고 10월에 와서 3·2점식을 가르치고 조사하니
백지 2명
신안 찬성자 7명
이와 같이 하여 각 학년을 한 차례씩 조사한 후에 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종합하여 조사하니
25인중에 백지 5명
신안이나 구안이나 같다는 자 1명
신안이 낫다는 자 8명
신안이 쉽다는 자 9명
신안이 너무 쉽다는 자 2명
이상과 같은 실험을 거쳐 한글점자를 신안 즉 제11안을 쓰기로 결정하고 명칭을 훈맹정음이라 하기로 하였다.
1926년 11월 4일 원효로 1가 87번지 원정당에서 코엔 선교사, 원한경 박사 부부 및 동인 32명이 참석한 가운데 훈맹정음 반포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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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11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6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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